<철없는 30대의 유학병>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래도 마감이 임박한 에세이의 무게에 짓눌려 꾸역꾸역 지금까지 왔다.
방에 처박혀 울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았다. 1) 방음이 안 되는 기숙사 2) 마감이 코 앞인 에세이 3개 (하나도 못 끝냈음) 3) 영국에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파티는 가야지..). 심리 상태는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일주일 정도 태업하다가 도서관으로 몸을 이끌었다.
에세이를 쓰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도서관 화장실로 달려갔다. 내 맘을 알아주는 것은 도서관 여자 화장실 변기뿐이었다. 도서관에 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멕시코 친구 I를 만났을 때도 "How are you?"라는 질문에 모르고 펑펑 울어버려서 I는 "왜 그래 너ㅠㅠ 내가 뭐 잘못했어?"라며 한참 사과를 했다. 그렇게 며칠, 몇 주를 보내니 감정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끝맺음에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이것은 여러 관계를 통해 여러 번 연습해도 좀체 무뎌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별 것 아닌 것에도 정을 지나치게 주는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었다. 괴상하게 생긴 비버 인형에게 '알베르또'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2년을 같이 살았고, 서울 생활의 동고동락을 함께 한 식물을 잘 키워서 친구들에게 입양 보낼 때도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연애든, 우정이든. 그렇게 쏟아부은 마음을 수거하는 일은 고통스러웠고, 겪을 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애가 항상 어려웠다. '적당히' 마음 주는 게 잘 되지 않아서 관계가 끝날 때마다 상처를 부여 안고 힘들어했다. 마음을 준 만큼 상처도 깊었고, 회복 탄력성이 낮은 내 마음은 아무는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관계가 끝날 때 가장 힘든 일은 상대의 마음이 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나에게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왜 그토록 힘든 것일까.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모든 게 조금 더 쉬워졌다. 우리의 관계는 사랑을 바탕으로 계약된 관계니. 그것이 희미해지면 계약이 끝나는 것이 당연했다.
모든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글쎄, 나는 그 덕분에 좀 더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그의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성격 급한 내가 조금 참는 법을 배웠고, 양보하는 법을 배웠으니 말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남친이 여자사람친구만 만나도 질투하는 철부지였지만, 30대 초반의 나는 마음 터놓을 친구가 별로 없는 그가 남자든 여자든 고양이든 누구를 만나 위로받고 맛있는 밥을 먹고 웃고 떠들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누구나 흠이 있고 약함이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 성격도, 불안정한 것들을 찾아 헤매는 내 성격도 안정을 추구하는 누군가에겐 결정적인 흠이 될지도 모른다. 나를 구속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 사람이 있었기에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부드럽게 넘어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내 삶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인연이라 믿었던 20대 때의 관계들이 끝나지 않았다면 나는 서울로 가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 영국에서 에세이 3개를 쓰느라 날밤을 새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미웠던 그들이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니 내 미래를 활짝 열어준 고마운 존재가 됐다.
또, 그렇게 미래가 열렸다. 마음을 보증금 삼아 제한적으로 열어뒀던 미래의 문이 활짝 열리고 말았다. 퍼줬던 마음은 조금 천천히 찾아오기로 했다. 누구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그립지 않고 그날의 풍경만 남을 테니. 그래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