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30대의 유학병>
오늘 3주 만에 강의를 들었다. 마지막 강의가 2월 21일 '가난 수업'이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17일 만의 수업이다. 울과 강의가 죄다 자취를 감춘 이유는 지난달부터 영국의 주요 대학의 교수와 강사들이 4주간 파업에 들어가서다. 한국에는 국제면에 기사 몇 개 나는 게 전부였지만, 영국에서는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가는 곳마다 대학 파업 이야기뿐이다. (BBC에서 교수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 잘 정리해놨길래 첨부한다)
http://www.bbc.co.uk/news/education-43140729
교수님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대학의 연금 삭감 정책에 항의해서다. 주요 대학 교수와 강사들이 소속된 노조인 the University and College Union (UCU)에 따르면, 연금 정책이 변경되면 퇴직 후 연간 연금 수령액이 10000파운드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이번 주가 '파업 주간'인데 우리가 강의를 들은 이유는 강사가 UCU 소속이 아닌 박사 과정 4년 차였기 때문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대학 측은 대학 슈퍼에뉴에이션(퇴직연금제도)에 손을 대 교수들의 연금이 이후 주식 시장의 변화에 따라 변경 가능하도록 만들려고 한단다. 즉, 노후를 보장해야 할 연금 정책의 불안정성이 커지자 영국 교수들이 "그렇게 안된다"며 고강도의 파업에 나선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은 퇴직 기한이 많이 남은 젊은 교수진으로 UCC는 최악의 경우 연금의 절반을 잃을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영국 대학의 파업 일정은 이렇다. 2월 마지막 주엔 월화, 그다음 주엔 월화수, 지난주엔 월화수목, 이번 주엔 월화수목금, 매주 하루씩 파업 날짜를 추가해 총 14일이라는 장기 파업으로 서서히 학교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교수, 강사들의 파업은 수업을 취소하는 것뿐 아니라 이메일 회신, 세미나, 토론, 에세이 첨삭 등 학생 티칭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보이콧하는 것이다. 이로써 브리스톨 대학교 공공정책 석사 과정 학생들은 10회 수업으로 구성된 2학기의 절반을 잃었다. 동기들끼리 채팅방에서 "우리는 비싼 돈 주고 지금 영국에서 사이버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며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은 이유다.
# 영국 회사, 노조원에게 파업 전 파업 참여 여부 물어보면 '압력'으로 간주
교수님들의 파업을 지켜보며 조금 놀란 것은 '누가, 언제, 얼마 동안' 파업에 참여할지 사측이 파업의 규모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브리스톨 대학 부총장이 파업 시작 전 전체 학생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개별 교수들의 파업 참여 여부를 학교 측은 알 수 없다. 또한 학교는 교수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파업에 참여하는 것을 존중한다"며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과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파업에 참여할 것을 예상했다. 1학기 수업에서 많은 교수님들이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강하게 설명했으며, 한 교수님께서 "우리 과 대부분 교수들이 파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넌지시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님들은 파업 직전 수업 시간에 파업 참여 유무를 우리에게 알려줬고, 몇 명은 수업 며칠 전날 이메일로 공지했다. 교수들이 수업 보이콧 여부를 우리에게 미리 알릴 의무는 없지만 예의상 그렇게 하신 것 같다.
솔직히 나는 파업이 한 일주일 진행되다가 끝날 줄 알았다. 이렇게 끝까지 교수 노조와 학교가 협상을 못하고 끝까지 갈 줄 몰랐다. '비파업 날'이었던 지난주 금요일 논문 쓰기 수업에서 한 교수님은 "파업이 2~3일 정도 지속되면 학교가 적극적으로 협상해야 하는데 예상외다. 나도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중국 정부도 비판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중국 유학생이 11만 5천 명에 달해 영국 대학 재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파업 장기화가 우려된다"며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정부가 영국 대학 파업에 목소리를 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어메이징 차이나..
http://www.xinhuanet.com/english/2018-03/01/c_137006815.htm
공공정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불안정성이 높아진 연금 정책에 반대하고, 교수들의 파업에 찬성한다. 하지만, 1년밖에 안 되는 짧은 영국 석사 생활 중 2학기 수업의 절반을 놓친 것은 너무나도 속이 상한다. 멕시코 친구 이사벨은 부총장에게 항의 이메일을 썼고, 나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은 '등록금 반환 운동'에 온라인 서명했다. 학생인 우리에게는 '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고 학교는 파업을 최소화해 우리의 권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수업이 사라져 서글픈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친구들이랑 수업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펍에 가고, 점심 먹을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지난주 친구 한 놈이 '공공정책 펍 퀴즈 데이' 이벤트를 만들었다. 첨엔 얘가 공공정책과 관련된 퀴즈를 만들어 같이 푸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기들을 '펍 퀴즈'가 열리는 펍으로 불러 모아 같이 팀을 짜 펍 퀴즈를 푸는 것이었다!!!! 영국인들은 왜 이렇게 펍 퀴즈에 열광하는 것인가... 영드에서 펍 퀴즈에 열광하는 영국인을 보고 그냥 드라마에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그것은 현실을 묘사한 것이었다. 시사와 문화, 스포츠 등 문항으로 구성된 문제가 총 100개, 펍 주인장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 문제를 읽어주면 리스닝을 잘해서 이걸 맞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안 들리는데, 그나마 들리는 문제는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우리 팀엔 영국인 친구가 한 명 있었지만... 27점이라는 최하점을 기록하며 수십 개의 팀 중 꼴찌를 기록했다... 그중 우리가 가장 헷갈렸던 문항은 로고를 보고 그 브랜드나 기관을 맞히는 문제였다. 자, 지금 문제가 나간다.
문제 : 이 로고의 뜻은?
멕시코, 이집트 친구는 "나토"라고 자신감 없게 말했고, 영국 친구는 "이거 아웃도어 브랜드 로고랑 비슷한 것 같아..."라고 흘렸다. 그러자 더 확신이 없던 나는 "이거.. 스톤 아일랜드 아니야? 남자들이 입은 옷 팔에서 이 비슷한 로고 봤어!!"라고 거들면서 우리의 대화는 점점 산으로 갔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꼴찌를 하고 쓸쓸하게 펍을 걸어 나왔다. 아래는, 내가 봤다는 로고다.. 너무 비슷하쟈나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