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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영 Jun 29. 2018

외국인 노동자의 구직 활동  

<철없는 30대의 유학병>

2010년 5월,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취업이 참 어려웠다. 2007년 무렵 시작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구직 시장이 얼어붙었고, 언론사 채용문이 좁아졌다. 한창 구직 활동에 나섰던 2009년엔 안 그래도 기자를 뽑는 언론사가 적은데 나는 그 바늘 문을 뚫고 들어갈 만큼 뛰어난 인재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졸업 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개월의 백수 생활을 거친 뒤 언론사에 취업했고, 꼬박 7년을 다녔다.


회사를 그만둘 땐 내가 얼마나 힘들게 취업했는지 몰랐다. 모든 것이 불투명했던 그 시절 느꼈던 불안감들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새벽같이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필기시험을 친 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던 날, 면접을 보고 '내가 왜 그랬지'라며 이불킥을 찼던 날, 필기시험에서,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낮아졌던 내 자존감. 그땐 그 불안함과 낙방의 경험이 지독하게 싫었는데 7년이 지나니 모든 게 희미해져 버렸다.


졸업이 석 달 남짓 남은 지금 나는 다시 또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남의 나라 말로 석사 공부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원서를 한국에서 취업 준비할 때처럼 뿌리진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뿌렸고, 지금까지 두 번의 면접을 봤다. 난생처음 전화 인터뷰를 끝낸 뒤 "나 같아도 나를 안 뽑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며칠 뒤 고급진 영어 문장이 적힌 낙방 이메일을 받았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쁘지도 않았다. 친절하게 "넌 아니야!"라고 알려줘서 더 고마웠다.


혹시나 싶어서 싸들고온 정장 한 벌. 영국 와서 처음 입었다.


며칠 전 장장 1시간 30분에 걸친 Skpe 면접을 봤다. 내가 준비한 답변은 거의 소용이 없는 면접이었다.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래?"라는 질문이 주를 이뤘다. 스카이프 연결 상태도 안 좋은데, 안 그래도 긴장했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이 쏟아지자 나는 주눅이 들었다. 1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다만 기억이 나는 것은 내가 질문을 못 알아들을 때마다 일그러지는 면접관들의 표정이었다. 면접이 끝난 뒤 희망 연봉을 묻는데 나는 0을 하나 빼버리는 실수를 했고, 면접관은 그래도 대충 알아먹은 듯했다. 나 그래도 한국에서 내 밥그릇 하는 직장인이었는데... 면접이 끝난 뒤 멍하게 있다가 집 근처 해변에 가서 바다를 보며 걸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였는데, 발로 뻥 차 버린 내가 밉고, 부끄러웠다.


시험과 면접은 누군가에게 나를 평가받는 일이다. 영국에 와서 7년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다. 대학원생이 돼 매 학기 에세이를 써내 불안한 마음으로 성적표를 받았고, 구직 활동을 하며 내가 지원한 회사에 월급을 받고 일할 자격이 있는지 평가받는다. 내가 그나마 잘하는 일이 모국어 글쓰기와 말하기였는데, 이 곳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제2외국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그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대충은 알았지만, 와서 겪어보니 더 쉽지 않았다.


영국에 온 지 벌써 9개월이 지났다. 한 번씩 기숙사 침대에서 깰 때면 "어쩌다 내가 여기에 와 있지"하고 놀랄 때가 있다. 어떤 감정이, 어떤 결정이 나를 여기까지 이끈 것일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이며, 전세금과 퇴직금을 털어서 유학자금으로 써버린 무모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어렵게 잡은 면접 기회를 날려버린 다음날,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다가 나도 모르게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서 울어버렸다. '뭐 잘 했다고 울어.' 우는 나를 스스로 채근하다가 더 울어버렸다. 그러다가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보다 철이 더 든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괜찮다. 단번에 인터뷰 잘 보는 게 더 대단한 거지. 그게 욕심이지. 한국말로 해도 어렵겠구먼ㅋㅋ 담에 또 있을 기횐데 적당히 속 쓰려해ㅋㅋ 남의 나라 가서 인터뷰까지 본 것도 용하다ㅋㅋ"


이게 뭐라고. 8년 전 한국에서도 수십 번 낙방하고, 수많은 회사가 나를 거절했지만 한 군데 찾지 않았나. 피붙이의 진심 어린 문자가 큰 위로가 됐다. 기댈 사람 없는 낯선 땅에서 내가 나를 좀 더 아껴줘야겠다. 그래, 나는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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