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영 Oct 11. 2018

런던 백수의 하루  

<철없는 30대의 유학병>

석사 논문을 제출한 뒤 나름대로 바쁜 생활을 했다. 대학 동기가 아일랜드 더블린 출장을 와서 전문 통역도 아닌데 통역으로 써주는 바람에 꽤 괜찮은 용돈벌이를 했다. 영국에 사는 나를 배려해 통역비까지 파운드로 바꿔온 착한 내 동기ㅜㅜ "이 돈이면 한 달 생활비가 되지 않겠냐"며 힘내라고, 백수가 된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번 용돈을 가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세비야, 카디즈 (서핑의 도시, 여긴 꼭 가야한다!!!)를 차례로 돌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했다. 여행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약간 불안했다. 1년짜리 대학원생이었지만 학교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도감이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 사라졌다. 어디 어디 대학교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지고 한국인 황 모씨만 남았다.


신기하게도 돈이 다 떨어갈 때쯤이면 딱 먹고살 만큼의 알바 자리가 들어왔다. 영국에서 알바라도 알아봐야 하나 싶어 고민하고 있을 때, 해외통신원으로 용돈벌이 삼아 글을 쓰고 있는 단체에서 몇십만 원짜리 원고 청탁을 추가로 했고 (당연히 한다고 했다!!!), 예~~~전에 해외통신원으로 지원했던 다른 단체에서 또 다른 원고 의뢰가 들어왔다. 감사합니다ㅠㅠ


런던에 와선 한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가 알바 헌팅(?)을 당하는 경험도 했다. 나와 함께 사는 중국 친구가 데려간 한식당에 밥을 먹고 있는데, 한국 사람임을 알아본 식당 주인님이 와서 말을 걸었다. 간단한 호구 조사가 시작됐다. 영국에는 언제 왔으며,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나는 석사를 공부했고, 이제 끝났으며, 영국에서 장기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마침 식당 입구엔 "홀 스텝 구함"이라는 구인 광고가 붙어 있었다. 사장님은 약간의 반말 투로 내게 물었다. "석사 어려운 거 했네~~ 이건 어려운 일 아니야. 머리 쓸 거 하나도 없어. 시간 될 때까지 여기서 일해볼래요??"


친절한 사장님의 제안에 "아, 네.. 그래요! 한 번 해볼까요?"라고 답했고, 사장님은 "그럼 내일 와서 연습해보자! 5시에 와서 같이 저녁 먹고 시작하는거야!"라며 바로 나를 구두로 고용해버렸다. 뭐야, 런던에서 이렇게 파트타임이 쉽게 구해지는 거였어? 사실, 나의 마지막 식당 알바는 대학교 1학년, 고향집에 내려가 했던 해물탕집 알바가 전부였다. 10년도 훨씬 더 된 일이다. 그때 우리 아빠는 "돈도 힘들게 한 번 벌어봐야 한다"면서 친구들을 데려오셔서 내가 서빙해준 꽃게탕을 먹고 가셨다. 한참 전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몸이 힘들었던 기억은  희미하게 남아있다. 얼떨결에 오케이를 한 뒤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몇 달 남지 않은 영국에서의 시간을 한식당 알바로 보내면서 마무리하면 후회하지 않을까. 서빙 못한다고 혼나면 또 내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지겠지.. 차라리 글을 쓰라고 하면 쓸 텐데, 이건 뭔가 도통 잘 할 자신감이 솟아나지 않는 일이었다. 중국 친구 L에게 "야, 나 알바 헌팅당했어!"라며 곧바로 이야기하자 친구는 "언니,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왕복 3시간이야. 다시 생각해봐"라며 내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줬다. 결국, 사장님껜 "집에서 너무 멀어서 힘들겠다"며 공손하게 거절했고, 그렇게 한식당 알바는 없던 일이 됐다. 글 쓰는 알바나 열심히 하고, 아껴 쓰기로 했다.

영국 날씨가 요즘 참 좋다. 뜀박질하러 가는 동네 공원.



학교 수업이 없고, 일하지 않는 런던 생활은 브리스톨에서보다 훨씬 심심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공원에 감. 달리기 및 스트레칭. 집에 와서 점심 도시락 싸기. 그 도시락을 들고 버스를 타고 다른 공원으로 이동 (이 공원은 훨씬 크고 주변에 대학, 공공 도서관도 있다!), 공원에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고 카페나 도서관으로 이동, 중간에 졸리면 공원에서 가방을 베개 삼아 낮잠. 글 쓰는 알바를 위한 자료 조사 및 원고 작성. 2~3시간 일한 뒤 다시 집으로! 집에 와서 저녁 먹기. 뭐 대충 이런 스케줄이다.


사실 지금은  L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의리파인 내 친구는 두 살짜리 애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방이 하나 남는다면서 갈 곳 없는 나를 기꺼이 받아줬다. 제한된 예산이지만 공짜로 머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 얼마 안 되는 돈을 뽑아 친구에게 줬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지금 백수잖아. 우리애 장난감이나 사줘. 우리 돈 필요 없어. 나중에 취업해서 맛있는 거 사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네 남편한테 진짜 미안한데, 그런데 어쩌겠어... 그래, 내가 빨리 취업해서 너네 아들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ㅠㅠ 고기 좋아하더라. 많이 먹더라...

영국인은 생을 마감하면 자신들이 자주 왔던 공원에 이렇게 흔적을 남기는 전통이 있는 듯하다.


그들이 20년간 즐겼을 그 풍경을 내 눈으로 보았다. 참, 아름답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돈이 없는 백수는 남는 시간과 재능으로 이 가정에 도움을 보태기로 했다. 영국인인 L의 남편은 친구보다 일찍 퇴근했다. 아기를 데리러 어린이집에도 두 번이나 같이 갔다. 여전히 서먹서먹하지만 친구 없이 L의 남편과 나, 두 살짜리 아들이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 날이 생각보다 많았다. 브리스톨 생활 1년이 내게 남긴 것은 한식 요리 실력이었다. 잡채 전문가, 김밥 전문가, 비빔밥 전문가! 잘하는 것, 쉬운 것부터 해서 이 집 식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했다. 비빔밥은 성공적이었고, 떡볶이는 떡이 덜 익어서 실패했으며, 잡채는 '잡채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친구들이 잡채만 맨날 만든다고 지어줌ㅋㅋ)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제 할 수 있는 요리가 점점 바닥나고 있다.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면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부지런히 뭔가를 해야 안정을 느끼는 한국인의 습관이 내 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삶은 내가 부지런히 일할 때, 여유 없이 일에 치여 살았을 때 한없이 갈망하던 삶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고, 이 자유를 즐기지 못하는 것인가. 잠깐이지만 머무를 집이 있고, 아주 조금이지만 알바로 번 돈이 있고, 조금만 걸으면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널리고 널렸는데,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길어봤자 두 달 남짓할 이 자유, 열심히 즐기자. 그리고, 친구네 가족을 감동시킬 한식 레시피를 더 개발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