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도 대책없다
거짓말처럼 내눈 앞에 나타난 집은 부모님 동네 안에 있었다. 부모님 옆집 사는 분의 먼 친척 분이 팔겠다 내놓은 집은 아직 부동산 매물로 가기도 전이었다. 어떤 집이냐는 내 물음에 엄마의 첫 표현은 이거였다.
"집이 너무 낮고, 낡았어. 귀신 나올 거 같아."
"그래도 경험 삼아 구경이라도 하지, 뭐"
그렇게 추운 겨울날 아침, 집을 보러 갔다. 정남향의 낡은 시골집, 탁 틔인 넓은 마당, 길가에 있지만 담장 때문에 적당히 오픈된 집, 산의 능선이 보이는 위치,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가리는 것이 없이 온전히 빛을 누릴 수 있는 곳. 그리고 부모님 집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이 동네의 환경적인 이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당에 발을 들이면서, 나는 이 집에서 살겠구나- 생각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한, 엄마의 표현으로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을 보고 대뜸 좋다 하니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꿈꾸고, 그리던 딱 그 집이었다. 많이 고쳐야 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이미 집을 고칠 생각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다른 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부지런히 다른 집도 보러 다녔지만, 이미 다른 집은 이 집을 사기 위한 이유 이상은 되지 않았다. 이 집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집은 내가 고칠 수 있지만, 환경은 내가 바꿀 수 없으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빛이 들어오는 정남향도, 탁 틔인 넓은 마당도, 산세가 보이는 뷰도, 가까운 편의시설과 산책길도 내가 바꾸거나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동안 아침 출근길마다 집을 보러 갔다. 내가 혹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너무 급한 마음에 섣부른 결정을 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 집이었다. 일단, 정말 지대가 낮았다. 지대가 낮다는 건 침수 우려와 습기에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집 경계가 모호했다. 측량이 불가피했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은 '집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용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의미였지만 사실 집 고치는 건 돈이 문제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시골집 고치기가 어떤 일인지...알았으면 그처럼 쉽게 이 집에 반할 수 없었을 텐데...
장단점을 하나하나 적으며 꼼꼼히 고민했다. 혼자서는 불안하니, 짝꿍도 함께 앉아 머리를 맞댔다. 여러차례 집을 본 나보다 집을 한번 본 짝꿍은 오히려 명쾌했다. 이만한 집이 없다는 것. 그래서 결정했다, 이 집을 사기로. 사기로 결정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시골집의 건축물대장, 지번 통합 등 도시에서 집을 살 때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을 새롭게 알아가야 했고, 세금, 자금 융통 문제 등 자잘한 일정을 맞추느라 머리 터지게 고민했다. 서울 집을 세주고 그 돈으로 이 집을 사서 고쳐야 하는 상황. 이 일정을 맞추는 것이 그야말로 테트리스 상급 수준이다. 쉴틈없이 쏟아지는 블럭을 재빠르게 방향 맞춰 챡챡 쌓아가는 그 느낌이다. 숨돌릴 틈 없이 새로운 블럭(문제)이 위에서 쏟아지고, 나는 재빨리 방향을 바꿔 줄맞춰 쌓아가야 했다. 새로 이직한 직장이 연말이어서 사업이 없고 한가했으니 망정이지 일까지 해야 했다면 난 다시 서울로 올라갔을 거다. (사실 다시 서울로 가고 싶었던 순간이 그 이후로 아주아주 많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하고, 집을 샀다. 귀촌을 결심한 지 두 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