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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bi Mar 25. 2024

#02. 재빠른 이직, 나도 놀란 나의 추진력

어디로 귀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평생 부모님 그늘을 피하려 애쓰며 살았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그 덕을 보고 싶었다. 자식년놈들은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이 이미 귀촌하신 지역은 남편과 나의 고향과도 가까웠고, 그쪽에 가족, 친척들이 있어 자리잡기에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귀찮은 가족 행사나 모임들이 생기겠지만 아예 낯선 곳으로 가기보다는 인연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모든 면에서 조금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귀농귀촌으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다양한 교육이나 기회도 많을 것 같았다.

종종 달리기하러 찾았던 한강. 이거 하나는 좀 그리울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굳히자 그 다음 일은 이상하리만큼 물흐르듯 술술 흘렀다. 귀농귀촌 지원 정책을 알아보려 접속한 사이트에서 그 지역의 채용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 연락받았다. 멀뚱멀뚱 KTX를 타고 면접을 보고 왔는데, 그날 오후에 바로 일하러 오란다. 연봉은 반토막이 났지만 괜찮았다. 덜 벌고 덜 쓰기로 했다. 돈을 더 많이 벌 생각은 없었다. 어짜피 서울 직장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봤자, 건물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돈을 벌 거면 진즉 다른 일을 해야 했고, 돈을 더 벌 생각이었다면 이런 결정을 하진 않았을 거다.


면접을 보고 오던 날, KTX역에서


당분간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했다. 주말부부는 할 만했지만, 고양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너무 서글펐다. 그래도 더 느긋한 삶을 위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도 필요한 시간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고양이들에게 몇 달의 시간은 너무나 긴 시간일 텐데, 항상 내 옆에 궁둥이 붙이고 자던 노랭이 걱정에 집 떠나는 게 갑자기 서러웠다. 귀촌은 계획에 있었지만 주말부부는 계획에 없었다.


주택에 살아본 적도 없는, 식물이라고는 길러본 적도 없는 딸이 갑자기, 당장 2주 후에 시골집에 살겠다고, 텃밭을 일구며 살려 내려간다고 하니 부모님은 적지 않게 놀랐고 당황해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지낸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은 있고. 부모님 역시 한동안 걱정과 반가움이 뒤섞인 혼란의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결정한 건 누가 말린다고 그만둘 딸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지라, 아마 속으로만 속상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꾹꾹 삼켰겠지.


그렇게 짐을 싸들고 내려왔다. 귀촌을 결심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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