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사냥

by 수리송선

목이 메듯 숨이 줄다리기를 한다.

구역질이 날 듯하고, 머릿속이 부푼다.

나의 지금 상태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벽면에 비친 나를 보면서 혼자 겪어내야 하는 시간임을 절감한다.

불현듯 찾아온 불안은 나를 좀먹는다.

수업을 하는 도중 찾아온 증상에 몰래 비상약을 입에 넣고 삼킨다. 민화수업이 있는 화요일엔 아무 약속도 잡지 않는다는 수강생의 말이 들려온다. 나는 그저 느릿하게 그 옆으로 가서 슬며시 포옹을 한다. 붓을 잠시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어보이며 어깨에 두른 나의 팔을 토닥토닥한다. 유난히 흰 피부에 장난끼어린 눈매가 잔뜩 휘어져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이뻐죽겠다'가 쓰여 있다. '화요일은 행복한 날'이라고 말한 것을 잊는 것인지 매번 말하신다.

화기애애.

이런 조합은 언제나 흐믓하다. 그래서 보고 싶어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내가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슬며시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과 조용히 지켜보는 정도의 나의 행동은 어느순간 주저앉을 수 있겠다는 경고등에 대한 최선의 행동이다.

눈알도 빼놓고, 머리통도 뽑아 옆에 놓고 싶다.

공황진단을 받고

불시에 다가오는 유령을 마주한다. 격지 않기를, 그리고 자주 오지 않기를 빌 뿐이다. 그리고 일상은 진행해야한다.

증상이 오면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을 외롭게 견뎌야한다. 의사와의 상담과 복용하는 약의 조절은 당연하다. 티나지 않음은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을 포기하게 한다.


어느새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계절이 불분명해지고, 일교차가 10도가 넘는 날이 일상이 되었다. 가을의 청아한 하늘빛을 하고 불볕인 낮과 매미처럼 울어대는 귀뚜라미들이 밤을 점령하고 서늘한 새벽공기는 이불을 끌어당기게 한다.

수업이 없는 수요일.

며칠동안 쨍쨍하더니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그래도 가을비답다. 온도가 높지 않으니 끈적임이 아닌 산뜻함으로 다가온다. 이른 아침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가 줄었다.

기운없이 집안일을 한다.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고, 빨래를 갠다. 움직임에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졸립다. 잠은 오지 않는다. 집안을 여기 저기 움직이는 모습에 고양이녀석은 책장 위 펜트하우스로 출근해서 나오지 않는다. 혼자인 것이 문득 확 다가온다. 오전이 지나가버린 시간, 우산을 쓰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물에 젖지 않은 곳이 없다. 특히 틈에는 있으라고 한 적없는 초록색들이 통통하게 물기를 덕지덕지 부풀어있다. 양지쪽 틈에는 키가 제법 큰 풀들이 자리하고, 음지쪽에는 키작은 것들이 틈틈이 초록 줄을 긋고 있다.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

건물과 도로 의 경계.

인도와 경계석 사이.

건물벽의 갈라진 틈.

시멘트바닥이 가라지고 터진 자리.

매끈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에 틈이 생기고 그곳에는 살고자 하는 것이 자리를 잡는다.

특히나 비오는 날에는 통통하게 물오른 것이 너무나 귀엽고 탐스러운 이끼가 볼 만하다. 초록색 노루궁댕이 버섯 같고, 짧은 다리로 씰룩대며 사방을 휘젖는 코코스파니에의 엉덩이를 닮은 비단이끼가 있다.

흔하디 흔한지만, 싱그러운 초록의 색감과 봉긋하게 자라는 그 자태로 이끼 마니아들은 다 아는 그것이다.

나는 오늘 이끼 사냥을 결심했다.

원하는 물건은 다 있다는 다이소에서 단돈 2천원에 지름 15센티의 원형 유리컵과 디저트용 유리그릇을 샀다.

작업실로 가서 작은 화분의 물받침용 햇반 플라스틱 용기와 작은 스푼을 하나 들고 골목으로 나왔다. 음지에 속하는 담벼락과 경계석 등을 살핀다. 어제 내린 비로 토실해진 이끼를 찾아서...

서너 종류의 형태의 이끼가 보인다.

보도블럭의 사이사이에 볼록하게 올라온 초록색 줄눈을 조금 채집한다.

조금 더 가다보니 담벼락 아랫단에 아이의 손바닥만한 이끼들이 벽을 타고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여기서도 채집한다. 가장자리에 얇은 스푼의 날을 살살 집어 넣어 틈을 만들면서 옆으로옆으로 이동한다. 틈에서 떨어진 이끼는 검은 배를 속절없이 내놓는다. 그리고 이끼가 떨어져나온 자리는 깨끗한 틈이 드러난다.

어느 빌라의 하수관의 빗물받이 옆에서도 ,

건물의 주자장 입구에 여러 갈래로 갈라진 틈에서도 채집을 한다.

20여분만에 채집이 완료되었다.

작업실로 간다.

유리용기에 묵은 화분흙들을 넣고 분무한다. 흙놀이는 나이를 분문하고 재미있다. 흙먼지가 날리지 않게 분무기를 사용하는데 여간 감질맛 난다. 작은 물병에 물을 담아 아예 조금씩 물을 붙고 부침개 반죽하듯이 저어댄다. 치덕해진 흙덩이를 봉긋하게 하고 화분장식용 돌을 몇개 배치한다. 이제 이끼를 넣는다.

이끼 사이에서 기어나온 좁쌀보다 작은 벌레가 출현했지만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버리고 열중한다. 멸균상태에서 재배한 이끼가 아니므로 분명히 벌레나 알이 있을 수도 있고, 빗물에 바람에 실려온 작은 씨앗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

다른 화분에 병이나 해충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야생에서 채취한 이끼는 이틀 이상 과산화수소에 담갔다가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들었다. 뭐 나는 그런 정성을 들이기 텄고, 가정용 화분 살충제를 좀 뿌려두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기분전환이 되었다. 시간을 보냈고, 3시간의 집중으로 불안에서 벗어났다. 내일은 좀 더 안정될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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