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으로 인생 바라보기
‘살아오며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은 언제였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즉각적인 대답을 내놓는 사람인가? 아니면 나처럼 ‘밀도’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금 찾아보는 사람인가?
‘밀도’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서라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그 ’ 밀도‘의 의미가 ’ 시간‘이라는 단어를 만나서 어떤 깊이와 채도로 나타나게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밀도 있는 시간이 가장 바쁘게 살았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시간이거나, 혹은 가장 큰 내적 성장을 이룬 때일 수도 있다.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거나 기뻤거나, 아니면 그 사이를 가장 역동적으로 널뛰기하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의 성향상 나는 ‘밀도’를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고 그곳에서 이렇게 정의를 내려주었다.
밀도 (密度)
[밀또]
명사
1. 빽빽이 들어선 정도.
밀도가 높다.
2.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의 정도.
밀도 높은 강의.
3. 어떤 물질의 단위 부피만큼의 질량. 물의 밀도는 1g/㎤이다. 단위는 kg/㎥ 또는 g/㎤
결국 나는 1번과 2번 정의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이다. 가장 빽빽하게 채워진 시간을 밀도 있는 시간으로 생각할지, 가장 내용이 충실했던 시간을 밀도 있는 시간으로 생각할지는… 내 맘이다.
그럼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장 밀도 있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필름 슬라이드가 돌아가듯이 나의 십 대, 이십 대와 삼십 대가 감은 눈꺼풀 위로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고민에 빠진다. 나의 답은 1번 정의인가, 2번 정의인가.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에게 밀도 있는 시간이란 다이어리 빼곡하게 오전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투두 리스트로 채워진, 해 낸 일들 옆에는 초록색 체크 표시가 붙는 그런 시간이 아니다. 나의 밀도는 2번이다. 얼마나 충실한가. 얼마나 충만한가. 그것이 나의 밀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번 정의라고는 정했는데, 인생을 되짚어보니 십 대에도 이십 대에도, 심지어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삼십 대에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다 추억이라’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에 대하여 누군가는 말한다. 당시에는 죽을 것같이 힘들었을지언정 그 시간을 살아내고 나면 그 힘듦은 어느새 미니어처 사이즈로 줄어있고, 그때는 보이지도 않았던 고난의 아름다움마저 찾을 수 있게 된다. 그 시간이 다 지난 다음에는 말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허무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은데도 줌아웃을 해서 십 년 단위로 내려다보니 구멍은 안 보이고 ‘밀도 있게 열심히 살았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체평가가 남은 게 아닌가. 이래서 또 살아지는가 보다.
나의 십 대는 우울과 불안과 생존본능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힘이 없는 아이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어른이 될 때까지 견디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치열하게 살아남아 성인의 조건을 얻어냈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우울했던 어린 시절조차도 그 어떤 의미로는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죽고 싶다는 것은 실은 너무나 살고 싶다는 뜻이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의 어린 시절은 생존본능으로 꽉 채워진, 어둠 속에서 한줄기 옅은 불빛이라도 찾아내려 애썼던, 힘은 없었지만 힘이 가득했던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
이십 대는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시간이었다. 수능을 보고 나서 갑자기 나타난 친엄마는 내 유아기 언젠가에 일시 정지 해 두었던 모성애를 경제적, 정서적 지원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우중충한 막장 드라마 세트장에서 갑자기 파스텔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로코드라마 세트장으로 옮겨간 느낌이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나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밝고, 자신감 넘치는 유쾌한 인물로 이십 대를 살았다. 이 구간은 말하자면 ‘꿈과 희망의 ㅇㅇ 월드’ 같기도 하고 정신없이 빠져든 낮잠에서 본 달콤한 꿈의 세상 같기도 한, ‘살면서 그래도 한 번쯤은 느껴보거라’ 창조주께서 특별히 선사하신 스핀오프 같은 시간이었다. 이때를 요약하면 ‘가능성, 주체성, 그리고 행복감‘으로 충만한 시간이다.
나의 삼십 대는 육아. 육아가 전부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둘째는 생각도 않았다가 갑자기 한국에서 살게 되는 바람에 한국의 산후조리원을 믿고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첫 아이를 영국에서 사 년 동안 열심히 키우고 이어서 둘째 아이를 한국에서 열심히 키우면서 두 아이의 엄마로 나의 삼십 대는 그렇게 가버렸다.
마흔이 넘어 둘째도 어느 정도 크고 보니 어느새 내 ‘경력단절의 경력’이 어마어마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간에 간혹 프리랜스 통역을 하거나 파트타임 강사를 잠시 하기는 했지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이후로 십오 년이 넘는 시간을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하는 데에 집중하며 보냈다.
‘삼십 대=육아=Gone=순삭’
이게 그렇게나 억울하고 우울했는데 내 잃어버린 삼십 대를 되찾아준 것이 나의 사십대다.
‘살면서 가장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은 언제였나?’
나는 결코 삼십 대를 허비하지 않았다고, 전업주부가 된 것은 상황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내 선택이었다는 것을 마흔셋의 내가 일깨워줬다.
다시 사회로 돌아가고자 구직사이트에서 알림을 매일 받는 수개월동안 관찰하고 생각한 결과 나는 알고 보니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목적의식이 사회적 성공이나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보다 월등하게 높았던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보니, 아니 절대. 나는 여전히 모든 마음과 에너지를 아이에게 집중했을 거였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육아에 집중한 삼십 대는 사라진 십 년이 아니었다. 참으로 밀도 있는 시간이었던 거다.
‘나는 지금 나이가 너무 좋아. 나는 사십 대가 되어서 너무 좋아.’
정말로 너무 좋아서 아주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왜, 뭐가 그렇게 좋은가 생각을 해 보니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게 어느 정도 컸고, 아이들에게 다 내어 주었던 나의 에너지를 이제는 나 자신을 돌보는 데에도 많은 부분 쓰고 있어서인 것 같다. 아이들이 많이 커서 돌봄이 덜 필요하고, 어쩔 때는 오히려 관심을 덜 갖아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 나이에 다다랐기 때문에 나는 이제 마음 놓고 나를 챙겨도 된다.
한편으론 내가 아이들에게 ‘집착’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큰 아이에게 음식을 가르쳐주며 ’ 내 의무는 너희들이 잘 독립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했었다.
나의 삼십 대가 나도 모르는 새 지난 밀도 있는 시간이었다면 나의 사십 대. 지금이 아마 나를 탐구하는 일로 보람과 의미를 채워가는 밀도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사십 년이 넘게 데리고 산 나인데도 처음 보는 모습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잘못 알았던 모습들도 발견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인생의 중턱에서 답보다 많은 질문들을 마주한다.
새삼스레 알아가는 나, 아직도 변화무쌍한 나. 이러저러한 나를 만나며 충만해질 나의 사십 대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