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랑스러웠던 순간
찰리 맥커시라는 영국 작가가 있다. 워낙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그림인지 글씨인지 모르겠는 글씨로 쓴 책이 팬데믹과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5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유명인사들과 각종 미디어에서 소개되며 베스트셀러 타이틀과 함께 현재까지 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그 책은 바로,
<The boy, the mole, the fox and the horse>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은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다.
이 책은 세상에 나오고 약 2년 뒤에 짧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영국의 오스카라 불리는 BAFTA와 Oscar에서 short film 부문에 수상 하기도 했다.
소년, 두더지, 여우와 말 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는 주옥같은 문장과 가슴 울리는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그중에 내가 읽고 또 읽었던 문장 중 하나는 바로 이거다.
“What is the bravest thing you’ve ever said?” asked the boy.
“Help.” said the horse.
“네가 지금까지 한 말 중에 가장 용감한 말은 뭐야? “ 소년이 물었어요.
“도와줘.” 말이 답했어요.
‘네가 자랑스러웠던 때는 언제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려 보았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취업에 성공했을 때?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 언제지?
… 나는 나 자신이 언제 자랑스러웠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그 끝에 결론을 내렸다. 처음 예상과 달리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성공했을 때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때는 내가 ‘용기를 냈을 때’였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도와줘’라는 말을 용기 내어했던 때다. 마치 찰리 맥커시의 책에 나오는 ‘말’처럼.
나는 매우 독립적이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인지라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아니, 우리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서로 얽히고설켜 어우러져 살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중년이 접어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나이를 먹으며 내가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며 훨씬 더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를 갖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저는 지금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습니다. 제가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줄 도움이 필요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이렇게만 이메일을 써서 무작정 집 근처 두 군데 성당에 보냈다.
평소의 나라면 생각지도 못할뿐더러 마지막까지 망설였을 터였다. ‘무리한 부탁이면 어쩌지?’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구심에 두 손 들고 아마도 그만두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도 염치없음도 다 이겨내는 모성애를 휘감고 용감하게 도움을 청했고, 내밀어진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바스라지는 큰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되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너는 어떤 비즈니스를 하니?’
줌에서 소그룹으로 나뉜 방에서 다들 돌아가며 자신의 비즈니스를 소개했다. 라이프 코칭 하는 사람, 럼이 들어간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를 만드는 사람 등등.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아직 비즈니스는 없고 아이디어만 있는데… 아마도… 한국… 음식…?’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비즈니스가 없을뿐더러 비즈니스 아이디어도 없었고, 이 모임이 두 시간짜리 이론 강좌인 줄 알고 참여한 터였다. 이주짜리 스타트업 실무 코스라는 사실을 수업 도중에 알았다. 나만 빼고 모두가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리바리하게 시작된 것이 나의 첫 사업체 ‘Seoul 2 Soul’이다.
이름도 생기고, 로고도 생기고, 웹사이트도 생겼다. 카드 결제 시스템도 준비되었고 시작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으니 우리 앞집 ‘네 가지가 없는 여자’. 론칭을 하자마자 이튿날 아침에 문을 두드리고 찾아와 이 동네는 프라이빗로드라서 장사를 할 수 없다고 웃으면서 지랄을 하고 돌아갔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 수 없으니 장소가 필요했지만 돈이 없다. 남편에게 달라고 하기도 싫었다. 그때 마침 눈에 띈 것이 ‘숍 인 숍’ 형태의 동네 카페. 주말 저녁에 카페 부엌을 대여해 주는 것이었다. 코로나 판데믹을 겪으면서 사람을 대면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수민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에 한국음식 테이크어웨이를 시작했어요. 카페에서 주말에 부엌을 다른 업체들에 대여해 주시던데 나중에 자리가 나면 연락 부탁드려요.”
제발 내 얼굴이 와인 한 모금 마신 뒤의 모습만큼은 빨개지지 않았기를. 속사포처럼 내 할 말만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내 머릿속에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감당하려고 일을 저질러?’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잖아.’
‘가게에서 판매를 하면 정말 공식적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건데, 자신 있어?’
‘일단 시작을 했으니 어떻게든 끌어 가 봐야지.’
‘이미 다른 업체들이 하고 있는데 기회가 있겠어?’
‘안 물어보면 내가 있는지도 모를 거 아니야.’
약 2주 후에 카페 사장님이 정말 연락을 주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나는 준비 기간을 2주 달라고 하고는 메뉴를 만들고, 가격을 정하고, 팸플릿과 로고 스티커, 명함 등등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미팅을 간 자리에서 ‘사실 나 너무 무섭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카페사장님은 나를 대신해서 페이스북과 본인의 카페에서 Seoul 2 Soul 을 광고해 주었고 장사 첫날 부엌에서 같이 도와주기도 했다. 그 후로도 쭉 나보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 주었고 본인의 카페 메뉴에 쓸 김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정말 내가 다 했나 싶을 만큼 나답지 않은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결정들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용감하게 도움을 청했고 모두가 하나같이 기꺼이 도와주었다. 이전에는 몰랐다. 대체로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돕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찰리 맥커시의 <The boy, the mole, the fox and the horse>에서 발췌한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When have you been at your strongest?”asked the boy.
“When I have dared to show my weakness.”
“네가 가장 강했던 때는 언제야? “ 소년이 물었어요.
“과감하게 내 약점을 보여줬을 때야.”
“Asking for help isn’t giving up.” said the horse.
“It’s refusing to give up.”
“도움을 청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야. “ 말이 말했어요.
“그건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