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ll Matt Rifed up

맷 라이프에 빠지다

by 수리양

어쩌다 알고리즘을 탔는지 모르겠다. 내 유튜브 쇼츠에 그가 등장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길어야 이주? 하지만 이주의 시간은 충분했다. 내가 그에게 빠져들기에 말이다.


이름이 맷 리프인지 라이프인지도 몰랐던 그는 내 휴대폰 화면 속 짧은 영상에서 스테이지 앞에 자리한 휠체어를 탄 관객에게 개그를 친다. 소아마비 환자인 그녀의 이름을 묻더니 태연하게 ‘약을 해 보았냐 ‘고 묻는다. 빵 터지며 안 해봤다는 그녀에게 한번 해봐라, 네 병을 고칠 수도 있다고 멘트를 날린다. 관객 모두가 박장대소를 한다. 장애를 가진 관객 레이첼은 함께 온 지인의 입을 빌어 말한다. 장애인도 끼워 주어 고맙다고.


내가 맷 라이프에게 빠진 게 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 모든 관객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소아마비를 가진 레이첼이 있고, 머리가 새하얗게 샌 70대 린다가 있고, 흑인 남매와 자녀와 함께 온 백인 아버지 크레이그가 있다. 모두가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맷 라이프는 인종과 성별과 장애여부를 뛰어넘어 그냥 한 명의 관객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삶을 궁금해한다. 민감한 주제라 여기고 터부시당하는 ‘배려’에 익숙한 이들에게 누구나와 똑같이 놀림을 당하고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이 자리는 신선하고 또 고마울지도 모르겠다.


흑인친구가 유난히 많다는 그는 흑인들에 감동한다. 아픈 과거가 있고 현재까지도 알게 또 모르게 차별을 당하는 그들이지만 그것을 다 안고도 흥이 나는 하루를 살 줄 아는 이들이라 했다. 나 역시도 그들은 참 용기 있는 이들이고 강한이 들이란 생각이다.


그는 평등에 대해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갖는 것 같다. 평등이란 무엇일까. 똑같은 자로 재는 것이 평등일까. 똑같은 자로 재지 않는 것이 평등일까. 다수와 달라 불편을 겪는 소수에 대한 우대는 평등일까 불평들일까.


사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비슷한 순간들을 종종 맞닥뜨린다. 사별한 사람 앞에서 돌아가신 분 언급하는 것은 실례일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함께 추억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내 아이 이야기를 조심하는 것은 배려일까 아니면 상대를 오히려 불편하게 할까.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언제나 한 가지는 변함이 없다고 본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

진심은 감출 수도 꾸밀 수도 없다.

언제나 답은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It’s always nice to be nice.


그리고…

그는 잘생겼다. ;)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