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관계

너는 갑 나는 을

by 수리양

우리의 위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였다. 너는 갑. 나는 을.


너의 위치와 상태를 나는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오나? 가나? 혹시 늦어지거나 안 오나? 날씨를 열심히 체크하듯이 나는 요즘 너를 체크한다. 변덕스러운 너이지만 나는 그래도 네가 필요해. 짜증이나도 너는 나를 버려도 나는 너를 버릴 수가 없다. 너는 갑. 나는 을.




아침에 출근준비 중에 꼭 해야 하는 실시간 기차운행상태.

6:56 기차는 온타임, 7:11 기차는 캔슬. 무슨 일이 있어도 6:56 기차를 타야 한다. 급하게 준비를 마치고 달려 나간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전광판에는 7:11 그리고 그다음 열차까지 캔슬. 나는 아슬아슬하게 성공했지만 아침운동 삼아 걸어서 기차역으로 오는 언니는 도착 후에 캔슬 사실을 보게 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는 두 기차를 모두 못 타고 다른 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지하철마저 연착이 되었다고 했다. 진이 다 빠진 모습이다. 출근시간부터 힘을 빼면 하루의 시작이 피곤하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시간이 다 되어 나는 어김없이 기차 상황을 살핀다. 5:24 기차 이상 무.

‘아침엔 고생했는데 저녁 기차는 괜찮네.’ 언니를 위로하는 말이 징크스를 불러올 줄이야…


시간에 맞게 도착해 가장 안쪽의 자리에 편안하게 자리도 잡았다. 사람들이 채워지고 서서 가는 사람들로 기차 통로도 모두 꽉 찼다. 출발을 약 5분 남기고 방송이 나온다. 기차 출입문 작동 테스트를 할 거라고. 문이 닫혀도 아직 출발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이삼 분 걸린다고.


문이 열렸다 닫혔다 몇 분을 하더니 출발시간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테스트 때문에 출발이 다소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온 것은 그때였다. 소소한 지연은 일상적이기에 별 생각이 없던 우리였다. 5:25.. 5:28.. 5:30… 어느새 건너편 승강장에 도착한 기차는 종착역은 다르지만 우리 집을 지나는 우리의 다음 기차. 그리고 방송에서 그 열차를 언급하며 그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 테스트만 하던 24분 기차에 이렇게 깊숙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데 굳이 이 인파를 헤치고 39분 기차에 몸을 싣는다? 노 땡큐. 그냥 일이 분 앉아서 더 기다릴게요.


5:34…5:35…5:36…

‘이러다가 39분 차가 정말 먼저 가는 거 아니야? 옮길까?’

‘근데 사람이 너무 꽉 차서 헤치고 나가기가 좀 그렇네.‘

우리가 고민하는 사이 5:38… 출발 1분 전에 나오는 방송. ‘‘우리 열차는 기계적인 문제로 운행이 어려워 언제 출발할지 모르고….‘

‘이 씨! 뛰어!‘

우리는 벌떡 일어나 안면에 철판을 깔고 주섬주섬 내리려는 사람들을 제치고 열차에서 튀어나와 건너편 기차로 내달렸다. 그 기차는 이미 만석이라 어쩔 수 없이 서서 가야 할 판이지만 지금은 일단 가는 게 목적이다.


24분 기차에서 사람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기차는 왜 이렇게 조용하지?

출발 안내 방송도 없고 조용히 시계는 39분에 도착했다. 뭐지? 이것도 연착?

불안함이 밀려드는 순간 나오는 방송. 우리 열차는 빨간불 대기란다. 그런데 곁눈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이 기차에서 뛰어내려 원래 그 기차로 달려간다. 그러고 보니 원래기차에 여전히 사람들이 앉아있다. 뭐지?

순간 24분 기차의 문 위로 오렌지색 불이 들어오더니 문이 다 닫히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 갈지 모른다더니 우리를 버리고 기차가 갔다…


‘어,,, 어,,, 저거 간다!‘

우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고 39분 기차는 45분이 되도록 꿈쩍도 않고 있다. 기차는 결국 십분 가까이 늦게 출발했고 우리는 집에 다다를 때까지 거의 전 구간을 서서 갔다.

우리는 너무 한국적인가? 왜 사람들이 방송을 안 믿고 그냥 앉아서 기다렸을까? 다시 돌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만 이어졌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연착보상금 신청뿐이다. 얼마나 연착이 많으면 연착보상금 신청 사이트가 따로 있다.


거의 도착할 때가 되어 원래 기차 기준 몇 분이나 연착되었는지 보기 위해 기차앱으로 도착시간을 확인하려는데…

24분에 우릴 버리고 떠난 기차는 우리 집 전 역부터 우리 집역 포함 세 개의 역을 서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뭥미…

가만히 타고 있었으면 전전역에 내려서 지나는 아무 기차를 또 기다려야 했겠지. 새옹지마.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나의 애증의 파트너… 너는 영국 기차.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