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보물이 오고 우리의 아픔이 왔다.
첫째를 낳아 기르기 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눈을 마주치며 세상 그 누구보다 예쁘게 웃고 그 사랑스러운 이름을 크게 부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뒤뚱뒤뚱 걷다가 걷는 게 자연스러워지면 뛰면서 “엄마!”를 부르고, 어느 순간 조잘대며 엄마에게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이 모든 것들이 부모가 특별히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면 나는 그 시절 다 그러했듯 부모의 지극정성 돌봄 대신 tv를 끼고 살았으면서도 언어와 인지 발달이 매우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새야 24개월 이전에는 tv를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걸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나를 닮아 말이 빠르고 곧 재잘재잘 대며 엄마와 이야기하고, 때로는 너무 말이 많아 엄마를 피곤하게 하는 그런 날들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첫째 아이는 아니었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호흡이 안 되어서 바로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나가는 바람에 나는 바로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자연분만 3시간 뒤에 신생아실에서 본 우리 아이는 태어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았음에도 새카만 눈동자가 잘 보이도록 눈을 크게 뜨고 유리창 너머 부모의 눈을 쳐다보는 듯했다. 주변에서는 막 태어난 아기가 어쩜 저렇게 눈을 잘 뜨고 있냐고 했고 우리는 흐뭇해했다.
그렇게 예쁜 눈동자를 가진 첫째 아이는 우리에게 온 보물이었다.
처음 웃었을 때, 처음 뒤집었을 때, 처음 혼자 힘으로 일어섰을 때.. 그 모든 날을 기억하고 있고 그 모든 순간 엄마는 감동을 했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순조롭게 잘 뒤집고 잘 기고 잘 걸었고 벽에 붙여진 포스터 속 사물들의 이름도 곧잘 손가락으로 집어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예쁜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10번 중 한 번 쳐다볼까 말까 했다. 돌이 지나서부터는 눈 맞춤도 잘 안 됐고 아이가 힘이 없고 누워 있기만 했다.
엄마, 아빠는 무지 속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아이의 몸속과 머릿속이 모두 아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가 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차 맑고 큰 눈을 나와 마주쳐주고, 내가 부르면 웃으며 쳐다보고, 내가 물어보는 간단한 말에 대답해 주는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상세불명의 발달지연”
우리 첫째에게 붙은 병명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 슬픔과 고통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