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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언니 Jul 05. 2024

이혼하고 나니 엄마가 보였다 .

엄마나이 서른, 내나이 스물아홉 .





  2023년 7월 20일. 이혼하고 휴대폰을 엎어두고 살았다. 카카오톡에는 빨간색 알람이 쌓여갔지만, 어떤 답장도 하기 싫었다. 잘 지내냐고, 왜 요즘 인스타그램이 뜸하냐는데 이혼해서 죽지 못해 사는 중이라고 말할 순 없으니 그냥 두 달이고 세 달이고 쌓아뒀다.



  이혼을 하고 나니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이혼을 했었다. 성악을 전공하던 예쁜 여학생이 대학 시절 딸아들을 낳아 결혼했고, 자신의 꿈을 내려두고 가정을 지키려 할 즈음 이혼한 것이다. 경제력 없던 엄마는 우리 남매에 대한 양육권을 가져올 수 없었고, 엄마의 엄마아빠는 모두 세상을 떠나 돌아갈 친정도 없었다.







  아마 너희가 열 살 이즘이었나. 네 아빠랑 이혼을 한 거야. 이혼도 이혼인데, 너희를 못 본다는 생각에 죽어버리려던 날도 있었지. 그런데 너희가 다 커서 엄마를 찾아온다고 생각해 봤어. 그럼 엄마가 멋있는 사람이 되어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무작정 이탈리아로 간 거야. 포기했던 엄마 꿈을 위해서라기보다 너희한테 멋진 엄마로 나타나고 싶었어.



  그렇게 엄마 나이 서른에 비행기를 탔어. 너희 사진을 챙겨가려다가 결국 다 포기한 거 있지. 거기 가서 너희 사진 보고 내내 울 것만 같았거든. 그런데 엄마가 딱 하나 챙겨간 게 있어.


 나는 이미 시뻘게진 눈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뭔데?






  지혜 머리띠. 그 머리띠에서 네 냄새가 났거든? 밀라노 가는 비행기 안에서 머리띠 냄새만 맡으면 눈물이 그렇게 나는 거야. 그 머리띠 냄새를 맡으면 꼭 지혜가 엄마 옆에 있는 것 같아서 얼마나 만지작댔는지 몰라.



  그 순간 엄마와 나는 눈물이 쏟아졌는데, 이상하게 우리 둘 다 입은 웃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열어둔 창문으로 새벽 찬 바람이 들어올 때까지 지나간 시절에 대해 조절거리다 잠들었다. 엄마를 친구로 만나 함께 늙어가는 꿈 같았다.













  

  * 2012년 엄마를 보러 밀라노로 여행 갔던 때가 떠올랐다. 첫인상이 너무 아름다운 도시였는데. 그 아름다운 도시가 엄마 홀로 마주한 2001년에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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