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언니 Jul 12. 2024

포르투갈행 비행기, 할아버지 수첩.







2024년 7월 10일 13시 8분, 인천공항 41번 게이트.



루프트 한자와의 느낌이 영 별로다.


내가 사자마자 항공권 가격이 떨어지질 않나, 체크인 때도 삐그덕 거리더니 아무튼 영 별로다.


이번에는 독일을 들러 포르투갈로 간다. 14시간 비행이라 최대한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넓은 앞 좌석들을 지나 점점 좁아지는 좌석이 나오면 내 자리겠지. 어제 야간 근무 여파로 여행에 대한 떨림보다 피곤함이 몰려온다. 일단 자야지.




















2024년 7월 11일 00시 45분,

리스본 호스텔 공용 거실에 앉아서.



운 좋게 세 자리 중 한 칸이 비었다. 어떤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한 칸이 비어서 예상보다는 여유로운 비행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시더니 빵긋 웃어주신다. 내 뒤에 일행이 계신가. 요즘 세상에 이런 대가 없는 미소가 있나 싶어 의아한데, 일단은 나도 같이 웃는다. 그 순간 어색함을 깨는 승무원의 한마디, “할아버지께서 귀가 안 들리시고, 말을 못 하세요.”
















  할아버지와 나는 그때부터 빈 수첩에 연필로 적어가며 대화했다. 할아버지가 처음 건넨 말은 ‘무었니던 (음식) 선생님께서 주시는대로 저는 먹겟읍니다 감사합니다’였다. 저 글자를 미리 적어두시고는 방해되지 않는 타이밍에 어렵사리 내밀으신 듯했다.














  할아버지는 매 순간 다정하고 친절했다. 75세의 나이에 홀로 북유럽 여행을 떠나신다는 할아버지가 너무 멋져 놀랍다가도, 군데군데 틀린 할아버지의 맞춤법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서 이내 편안해졌다. 동시에 마음이 찡해 눈물이 날 것 같은 건 뭐라고 설명하지 못하겠다. 매 순간 누군가에게 수첩으로 질문하며 여행할 할아버지일 텐데, 누군가 무례하게 굴면 어쩌지 싶고.












  착륙 시간이 다 다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짐을 챙기려는데, 할아버지가 급히 수첩을 꺼내시더니 무언가를 적어주셨다. 가방에 꼭 챙겨가라 하셔서 잘 담아왔다.













'하늘에서 조각구름이 맞나는 인연'.










루프트한자와의 느낌이 영 좋다.















  * 비행기를 내리려는데 루프트한자 승무원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오늘의 베스트 승객이라며 선물을 줬다. 숙소에 앉아 할아버지가 찢어준 종이와 선물을 열어보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는 지금쯤 코펜하겐에 잘 도착하셨을까.















.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이혼 후, 진주는 3일동안 문 앞을 지켰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