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_출산 후, 아픈 몸에서 탈출하고 싶어!

달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다

by 런예지



왜 이제야 왔니?
어디에 있었던 거니?
조금은 늦은 듯 이제야 만났네.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뒀던 날,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오는 정엽의 '왜 이제야 왔니'를 들으며 나는 울컥했다. 어렵게 귀하게 우리 부부에게 와 준 사랑이(첫째 태명)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다. 볼록하게 나온 배를 쓸어내리며 '엄마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라며 어서 만나자고 사랑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2018년 9월 20일 아침 8시 20분, 7시간의 진통 끝에 드디어 피와 태지가 덕지덕지 묻은 채 쿠더덩 뜨거운 덩어리로 사랑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는 울음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파란색 천에 싸인 사랑이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2018년 9월 20일, 사랑이가 태어난 감동적인 순간!






아기라는 존재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처음 초음파로 확인했을 때는 손톱만큼 작은 생명이었는데, 이젠 내 눈앞에서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다니! 조그마한 머리, 반짝이는 눈, 오물거리는 입, 앙증맞은 손과 발을 매일 만지고 느꼈다. 아기 냄새를 마음껏 탐하며 포근함에 젖었다. 쌕쌕 얕은 숨을 쉬며 내 품에 안겨 잠든 아기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이대로 멈춘 것은 평화로움을 느꼈다. 물론 수시로 찡그리고, 울고, 보채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시간은 기쁨이고 감동이었다.



하지만 출산 후 아직 아물지 않은 몸으로 신생아를 돌보면서 나는 평소 겪지 못한 다양한 부위에서 통증을 느꼈다. 먼저 회음부가 너무 뻐근하고 아팠다. 산모들이 대부분 산후조리원을 나올 때쯤이면 회음부 방석을 졸업한다는데, 나는 3주가 넘도록 방석 없이는 아파서 앉아 있지를 못했다. 출산 후 3주가 지나 산부인과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더니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다. “많이 아팠겠어요. 진작 병원에 오지 그랬어요.” 회음부를 자르고 꿰매는 과정에서 근육까지 같이 꿰매 져서 많이 부어있다고 하셨다. 약 먹고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거라며 수유 중에도 먹을 수 있는 진통소염제랑 항생제를 처방해주셨다.


약을 먹고, 매일 좌욕을 하며 지냈는데도 출산 후 50일이 되도록 회음부가 여전히 욱신거리고 쓰렸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니 친정엄마가 도와주러 오셔서 3주간 함께 지냈다. 엄마는 “산후조리 잘못하면 평생 아픈데 어떡하냐.”라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답답해서 나와 비슷한 경우가 있는지 맘 카페에 글을 올렸다. 다양한 사연들을 만났는데 염증이 생겨서 치료를 받은 사람, 4Kg이 넘는 아기를 낳느라 길게 절개해서 100일이 넘게 아팠던 사람, 심지어 상처 부위가 벌어져서 다시 꿰매고 두 달 넘게 고생한 사람도 있었다. 수술한 부위가 잘못된 건지 애써 눌러두었던 불안감과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모유 수유를 하느라 어깨 결림과 가슴 통증도 심했다. 한쪽이 함몰유두라 아기가 잘 빨지를 못해 나도 아기도 고생을 했다. 아기를 안고 40분씩 앉아 젖을 물리고 나면 온 몸이 땀에 젖어 녹초가 되었다. 누워서 수유하는 방법도 시도해봤는데, 아기가 잘 먹지 못해 포기했다. 그렇게 하루 6-7번, 총 4시간 정도를 수유하니 몸이 회복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모유수유를 그만둘 순 없었다. 남편이 아토피가 심해서 아기에게도 아토피가 유전되었을까 봐 알레르기 예방에 좋다는 모유를 최대한 먹이고 싶었다.



각종 관절들도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손목, 손가락, 무릎, 골반. 태어나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는 부위들이라 더 심난했다. 손목은 시큰거렸고, 손가락은 저렸다. 아기를 안고, 내리고, 씻길 때마다 무릎과 골반은 늘 묵직하고 뻐근했다. 아기가 좁은 산도를 빠져나와 세상의 빛을 보려면 엄마 몸의 각종 관절이 느슨해지고 열려야 한다. 그리곤 출산 후 100일까지 서서히 닫힌다. 아기를 낳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관리의 시작은 낳고 난 후부터였다.



산후조리원에서처럼 엄마가 아기 수유만 하고, 차려주는 밥 먹고, 밤에 쭉 자면 정말 빨리 회복될 것 같다. 하지만 현실 속 엄마는 수유뿐만 아니라, 세끼 밥도 직접 차려 먹어야 하고, 아기가 울면 4Kg 정도 되는 아기를 그칠 때까지 안아서 달래야 하고, 수시로 씻기고, 목욕시켜야 한다. 거기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까지 얹어지면 고된 육아와 가사 노동에 회복될 틈이 없었다.






12월 어느 날, 엄마와 아기를 데리고 가까운 건국대학교 안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9월 말에 아기를 낳고, 날이 점점 추워져서 동사무소나 산부인과 검진 외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는데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엄마가 포대기로 아기를 업어 주셨다. 나는 찬바람이 몸에 닿을까 봐 롱 패딩에 목도리까지 꽁꽁 두르고 호숫가를 걸었다. 걷는 걸음걸음마다 가슴이 돌덩이처럼 너무 딱딱하고 아팠다. 몸 관절은 마른 찰흙처럼 굳어 있었다. 어깨는 결렸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근하고 시큰했다. 진심으로 걷는 것도 숨이 찼다.



임신 중에도 임산부 요가를 꾸준히 하고, 이틀에 한 번은 호숫가를 한 시간씩 걸으며 수월한 출산과 건강 유지를 위해 애썼는데, 지금 내 몸 상태가 너무 우울하고 속상했다. 산후조리의 끝은 어디인지 어두운 터널 끝 한 줄기 빛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숨을 크게 들이켜 폐까지 신선한 공기로 채웠다. 할 수 있다면 아픈 내 몸에서 잠시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달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