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베칸무리야마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by 알랑뽕

[나가시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세 가지를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원자폭탄', '짬뽕', 그리고 '카스텔라'다. 세계에서 원자폭탄을 경험한 유이한 도시 중 하나이며(다른 하나는 히로시마), 짬뽕이라는 단어 자체의 시작으로써의 나가사키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만큼이다. 나가사키 어느 식당에서도 빠지지 않는 메뉴로써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카스텔라는 또 어떤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1624년) 창업한 카스텔라 가게가 있는 도시가 바로 나가사키다. 짬뽕을 메뉴로 내놓는 식당의 숫자만큼 카스텔라를 판매하는 가게가 어떻게 이토록 많을 수 있나 할 정도의 도시다.


여기에 하나를 더 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다. 바로 [야경]이다. 나가사키 야경은 세계 3대 야경이라고 부른다. '나가사키 사람들만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닐까?'라고 여겨질 만큼 그렇게 유명세는 없다. 나가사키의 야경을 보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기보다는 짬뽕이나 카스텔라 그리고 원폭기념관을 찾다가 돌아오는 길에 용기 내어 경험하는 그런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은 말이다. 솔직히 누구나 아는 그런 야경의 도시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가사키 사람들의 야경사랑은 결코 어떤 도시와도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야경을 보러 가는 과정 중에도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근사한 로프웨이(케이블카)를 운영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쉽게 보지 못하는 슬로프카를 설치해 두어 관광객의 마음을 사고 있다. 그래서 나가사키를 알리는 관광팸플릿에는 나가사키의 야경장면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나가사키의 야경은 이나사야마전망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얕은 언덕에 빼곡히 채워진 불빛들, 그 불빛들이 모여 만든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고 그 아래를 길게 가로지르는 바닷길과 어우러져 만들어진 나가사키야경의 장면은 이곳을 오르는 모든 이들에게 '이래서 세계 3대 야경이구나'라고 고백하도록 할 만큼이다.


이나사야마전망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풀어놓기로 하고 오늘은 반대편에 자리 잡은 나베칸무리야마전망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나사야마전망대가 관광맛집이라면 나베칸무리야마전망대는 현지인 맛집이랄까? 아니다. 관광객들의 발길은 물론 현지인들의 발길조차 많지 않은 나만의 맛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베칸무리야마는 접근부터 쉽지 않다. 자가용이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곳까지 인도해 줄 대중교통은 없다. 택시를 탄다고 해도 가파른 길을, 그것도 어두움으로 가득 찬 거의 일차로의 길을 오르는 일이다. 내 경험이지만 전망대에서 콜택시를 부르고 20분이 넘게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 온전히 자기 두 발로 올라야 한다.


전망대를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이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만큼의 좁은 길이며 바로 집과 집 사이에 난 길이기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면서 통과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조명은 또 어떤가? 정말 희미하게 비추는 가로등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일본인만의 독특한 배려로 인해 전혀 집안에서 비치는 불빛들을 기대하는 일은 무리다. 어느 구간에서는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이동할 만큼이다.

KakaoTalk_20250621_101618105_02.jpg

오르막은 쉽지 않다. 거친 숨이 절로 올라온다. 어두움에 적응하기도 역시 쉽지 않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구간도 있다. 과연 계속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 약간의 감정적 오버이겠지만 때로는 무서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끝이 없을 것만 같다. 중간에 끊고 내려가는 편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해 본다. 올라가는 길에 야경은커녕 주위에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흔한 고양이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는다. 외국인에게 텃세를 부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니, 빨리 포기하고 내려가라고 온 주위에서 응원하는 것 같다. 도대체 왜 나는 오르는 것일까? 이런저런 복잡한 심경의 시간을 보내다가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보여줄 게 있다. 오르라. 또 오르라"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들었다. 정신이 바짝 드는 순간이었다. 지금 걷고 있는 오르막은 결코 아무렇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만나는 것이고, 그 끝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싶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기억 혹은 약속이 없는 오르막처럼 힘든 게 또 어디 있을까?


가장 힘든 구간은 주변이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마주했을 때다. 암순응(눈이 갑자기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보이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는 구간이다. 뒤를 돌아봐도 어두움뿐이다. 사실 암순응은 어차피 닦달한다고 해서 빠르게 되는 것이 아닌 자연적인 현상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환경을 인식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나 역시도 순간 멈칫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했지만 기다리는 것 말고는, 멈추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천천히 주변을 인식할만한 수준을 마주했다. 그리고 또 오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는다. "도대체 얼마나 놀라운 것이길래 이렇게 힘들게 하실까?"


아주 전형적인 표현이겠으나 나베칸무리야마전망대가 주는 야경은 이나사야마전망대와는 또 다른 광경을 선물해 준다. 솔직히 뭔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벅차오름을 동반케 하는 야경이었다.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 모습을 보여줄 때는 과감했다고나 할까? 이곳에서 보이는 광경들 하나하나를 천천히 눈으로 담으면서 보내는 시간들은 나가사키의 깊은 면을 마주하는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도 없이 보았던 나가사키야경이었지만 이곳에서의 광경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이곳에서 진짜 나가사키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좋은 것은 그만큼의 자격이 필요한 것일까? 높은 곳을 오르는 수고와 애씀, 답답함과 두려움을 통과하는 시간들이 쌓여서 건네받은 선물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KakaoTalk_20250621_101618105.jpg

하나님은 결코 그냥 오르게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일상에 오르막이 있을 때에, 앞과 뒤를 돌아보아도 막막함과 어두움뿐일 때에 이곳 나베칸무리야마전망대를 떠올린다. 일상은 암순응의 구간이 있으며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조금씩 인식되는 일상의 오르막을 그저 묵묵히 오르면 되는 것이다. 누구 하나 말을 건넬 상대가 없다고 두려워하지 말자. 약속을 의지하며 나아가자. 하나님은 나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 누리도록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 그래서 자꾸 오르막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물은 꼭 받고 싶다.



이보게나, 내가 동쪽으로 가도 그분은 계시지 않고, 서쪽으로 가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네. 그분이 북쪽으로 움직이셔도 내가 눈여겨보지 못하고,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셔도 내가 보지 못하네. 그러나 그분이 내 길을 아신다네. 나를 검증해 보셨다네. 내가 황금 같음이 드러날 것이네. [새한글성경, 욥기 23장 8절-10절]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