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리고 누림
나가사키는 서양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한 데 섞인 모양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간판을 보거나, 건물의 모양들 그리고 주위에 심긴 나무나 혹은 조성된 길들을 걷고 있노라면 이곳이 때론 중국의 한 면을 보여주는 듯하고, 어떤 때는 유럽의 한적한 길을 걷는 듯하다. 그럼에도 역시 일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면들을 곳곳에 품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가까운 곳에서 함께 누릴 수 있는 독특함을 지닌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유럽의 한적한 마을을 구현해 놓아 사람들의 발걸음을 부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Glover Garden 일본어로 구라바엔이다. 나가사키 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언덕의 중간 즈음에 자리 잡고 여러 채의 서양식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만큼의 아름다움과 감탄할만한 풍경들을 보여준다. 유럽의 한 마을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사실 이곳은 스코틀랜드 출신 무역상 토머스 블레이크 글로버의 옛집을 중심으로 나가사키 안에 흩어진 서양식 건축물들을 옮겨와 보존해 놓은 곳이다.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이지, 글로버라는 인물이 모든 집들의 주인이고 이곳이 글로버의 정원이라고 이해하면 오산이다)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서양 문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그 의의가 있으며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조성된 이 공간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나가사키에서 경험하는 독특한 이국적 정서를 경험할 수 있다. 전체 9개의 건물들이 있다. 그중에는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 있고(구 글로버의 집_1863년),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를 품고 있다.(구 글로버의 집, 구 올트의 집, 구 링거의 집) 집 하나하나 독특하고, 시대상을 반영하였지만 오늘의 집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의 화려함과 정갈함을 담고 있어서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넓은 마당 안에 있는 연못은 또 어떤가? 나가사키 만을 배경 삼고 펼쳐진 연못 안에 있는 수많은 잉어들은 여유로움과 한적함을 동시에 선물한다. 또한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라 할 수 있는 지유테이(1878년 창업)가 있다. 현재는 2층이 찻집으로 운영되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나가사키 풍의 찻잔에 담긴 커피와 카스텔라를 묶은 스페셜메뉴를 제공하고 있다.(1000엔)
이뿐만 아니다. 맥락이 조금 이상하고 그 시작이 엉뚱하지만 어느샌가 사실처럼 굳어져버린 오페라 나비부인의 영감을 주었다는 곳이라는 설명이나, 글로버의 집이 나비부인의 집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에 확신을 주려는 듯 푸치니의 동상과 일본의 프리마돈나이자 나비부인 역을 가장 많이 연기한 미우라 다마키(三浦環)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가이드의 설명 중에 건네는 나비부인의 노래 한 토막은 그 이야기에 확신에 확신을 더해준다. 그리고 소소한 즐거움이겠지만 넓은 정원 안에 두 개의 하트석이 숨겨져 있다. 모두 찾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니, 주위를 살피며 오다가다 만나는 하트석이라면 반갑지 않을까?
나는 구라바엔에 들어설 때마다 바쁘다. 살펴볼 곳이 너무 많고, 찍고 싶은 광경들이 너무 많다. 커피도 마셔야 하고 푸치니 동상도 만나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하트석도 기어이 찾아내겠다는 마음으로 바쁘게,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또다시 찾았을 때도 지난번에 보지 못한 것, 확인하지 못한 것들은 없었는지 구석구석 살피느라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빠른 걸음으로 여느 때처럼 구라바엔을 샅샅이 뒤지려는 심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그렇게 다녔을까? 그러다가 나가사키 만이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청년을 보았다. 잠깐이지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를 지켜보았다. 큰 움직임 없이 앉아서 바다를 보기도 하고, 수첩을 꺼내어 뭔가를 끄적거리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기에 눈이 마주칠까 나는 다른 곳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한 시간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청년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라바엔을 "찍고" 있었지만 그는 한 곳에 머물러 구라바엔을 "누리고"있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구라바엔에서 멈춤이란 없었다. 그저 보고, 찍고, 맛보고, 확인하는 등 많은 것을 알아내는 일을 목표로 분주하게만 다니고 있었다. 내가 알고, 분석하고, 확인하면 될 일이지 구라바엔이 내게 걸어오는 말이 무엇인지,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많이 방문했어도 구라바엔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뭔지 잘 모른다. 그곳에서만 경험하는 감정의 색깔이 무엇인지, 분위기의 온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곳의 냄새는? 나는 내 편에서만 보고 경험하고 확인했다. 내 언어로 말하면 구라바엔을 찍고 다녔다. 반면 구라바엔 편에서 허락하는 것들은, 그 편에서 준비해 놓은 것들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곧 멈추고 주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살아계신 하나님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분이시다. 하나님 편에서 시작하시는 경험과 누림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내 말을 끊어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발걸음을 멈춰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내 쪽에서만 "찍고"가다가는 결코 하나님 편에서 시작하시는 "누림"은 없지 않을까?
이런 연결이 어쩌면 구라바엔의 나비부인처럼 맥락이 이상하고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구라바엔에서 만난 여름날의 그 청년을 통해 나는 "멈춤"을 배웠다. 그리고 "누림"을 얻었다. 이제는 일부러라도 구라바엔에서 느릿하게 걷는다. 급하지 않게 언제든 멈출 수 있고 또 멈춘다. 분주한 마음이 속에서부터 일렁일 때 그 청년을 기억하며 고백한다. 나는 이제 속지 않겠다. 하나님 편에서 주시는 "누림"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누림"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기꺼이 멈춘다.
(예언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너희는 길에 서서 살펴보아라. 물어보아라, 옛길을,
어디에 좋은 길이 있는지를. 그리고 그 길로 가라.
그러면 너희가 쉴 곳을 찾을 것이다.”
[예레미야 6장 16절_새한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