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오우라성당은 많은 관광객들이 나가사키를 방문할 때에 꼭 빼먹지 않고 들르는 장소다. 이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날씨와 시간을 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나가사키 여행의 필수코스로 이미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찾을까? 어떤 매력이 있을까? 찾는 이들이 꼭 기독교 신자들만은 아니기에 더욱 궁금함이 더해진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본과 기독교성당이라는 꽤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 주는 흥미로움이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고 이 건물이 일본의 국보로 불리는 서양건축물이라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의 성당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종교적 건축물이 풍기는 아우라가 기독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을 찾게 만들고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아니면 남들 다 가는 곳인데 안 가볼 수 없기에, 그저 유명하다는 곳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곳을 찾아오는 단순한 이유만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성당 안까지 굳이 입장하지 않고(입장료가 천엔이다_2025년) 입구에서 휙 하니 한번 살펴보고 인증샷을 찍은 후에 그냥 언덕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때문이다. 암튼 오우라성당은 나가사키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인 것은 틀림없다. (오우라성당 언덕 아래에 틈도 없이 빽빽하게 자리 잡은 다양한 가게들이 그 증거가 될까나?)
그런데 오우라성당은 인증샷만 찍고 가기엔 너무 아쉬운 곳이다. 입장료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근대 역사 속 한편에 자리 잡은 서양 고딕 양식의 성당 내부를 돌아보면서 만나는 독특함,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조각상들 그리고 그림들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함께 경험하게 되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결코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특별함까지 선물해 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키리시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신학교건물(라텐신학교)과 옛 나가사키 대주교관을 살펴보면서 다양한 생각들과 질문들, 지식들을 얻게 되어 나가사키를 좀 더 깊이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 이 성당을 지은 쁘띠장 신부와 교황 요한바로오 2세의 동상과 순백색의 일본의 마리아라고 불리는 조각상, 한국 순교성인기념비, 신도발견의 부조는 결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살아 숨 쉬는 이야기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오우라성당은 나가사키 여행에서 만나는 종합선물세트라고 말할 만큼 풍성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 내 마음에 가장 깊게 새겨진 신도발견을 형상화해 놓은 부조(浮造)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다. 언덕에 자리 잡은 성당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쌓아둔 돌계단을 하나씩 밟다 보면 어느 순간 왼쪽에 펼쳐진 작은 정원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정원의 입구를 지키는 양, 큰 몸집을 가진 부조가 손님을 맞이해 준다. 이게 뭘까? 하고 올라오는 호기심은 오우라성당이 품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열어주는 손잡이 역할을 해 준다. 이제 그 이야기의 문을 열어보자.
오우라성당은 일본에서 기독교박해가 여전히 진행되는 중에, 외국인을 위한 예배장소로써 허가된 건축물이다. 당시 일본은 250년 전에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사추방령을 시작으로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온갖 박해가 자행된 나라였다. 그 박해의 채찍은 여전히 살아있는 중이었기에 기독교 신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괜히 이곳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잡혀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프랑스절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저 바깥에서 구경할 뿐 그 안에 들어가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곳을 담당한 쁘띠장 신부도 일본인의 방문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건물이 완공되고 한 달 즈음 지나가는 어느 날 한 무리의 여성과 아이들이 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들의 방문에 놀라 뛰쳐나온 신부에게 말을 건넸다. "같은 마음입니까?" 이 말을 들은 신부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이 이어졌다. "성모마리아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쁘띠장 신부는 놀랐다. '어떻게 성모마리아를 알고 있을까? 같은 마음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연유가 궁금해 그들을 성당 안으로 인도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선교사가 추방되고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250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처음 받은 복음의 소식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낸 그룹들이 있었던 것이다.(가쿠레크리스천_숨은그리스도인) 이들은 순교의 각오로 일상을 살아냈고, 실제 많은 이들이 순교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박해의 채찍을 피하며 남들이 결코 찾지 않는 산간벽지를 개간하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거나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절대 붙들고 살아내기 위해 불모지의 땅들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이들은 마을 사람들 속에 살지만 절대 자신들의 신앙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위장하고, 몰래 숨어서 만나 예배하며 믿음의 대를 이어왔던 것이다. 한 순간도 크게 찬양하지 못했다. 기도의 소리도 숨죽이며 올려드렸다. 역전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신앙을 버리지 않고 그렇게 살얼음을 걷는 자들로 자그마치 250년을 이어왔다.
숨은그리스도인들에게 어느 날, 십자가를 높이세운 프랑스절의 등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도록 했다. 정말 우리와 같은 믿음일까? 250년을 간직해 온 빛바랜, 형체조차 희미해진 성모마리아상이 아닌 진짜 성모마리아상을 볼 수 있을까?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용기를 내어 찾아간 오우라성당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조들의 소망이었던 신부님과 함께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쁘띠장 신부는 본부에 알렸다. 그리고 온 세계는 "신도발견"이라는 이름을 붙여 환호했다. 복음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새로운 선교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서방세계에 건네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교의 가능성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오지라고 불리는 곳까지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으며 오늘의 나에게까지 복음이 찾아오는 결과를 주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박해 속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신앙을 이어준 숨은그리스도인들에게 내가 빚을 졌다고 생각하면 너무 오버일까?
오우라성당 앞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중에 가장 강력하게 떠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유통기한"이라는 단어다. 우유나 빵처럼 먹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생각, 열정에도 심지어 신앙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숨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유통기한'이 거의 없는 것처럼, 250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지금, 오늘 붙들고 있는 신앙에는? 짧은 유통기한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박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염려와 두려움이 나를 찾아올 때에 과연 내 신앙은 견고하게 살아있을 수 있을까? 5년 10년이 지나도 내 신앙은 변함없이 이어질 수 있을까? 나의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을만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신앙으로써 붙들고 있는 것일까?
어떤 염려와 두려움, 절망과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는 신앙, 오래되어도 변함없이 생동감을 잃지 않는 신앙, 다음 세대에도 전달될 수 있는 견고한 신앙의 소유자로 살고 싶다. 내 신앙이 매일 자라고, 성숙해지며 튼튼하게 예수에게 뿌리내리길 기도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아니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오우라성당 앞에서는 늘 기도하게 된다.
사도들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우리에게 믿음을 보태 주세요.”
(누가복음 17장 5절_새한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