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나가사키현(縣)은 일본의 대표적인 섬 네 개 중 가장 남쪽에 있는 큐슈섬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대마도(쓰시마시)를 포함하고 있고, 일본 속의 작은유럽이라 불리우는 하우스텐보스가 조성되어 있는 사세보시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나가사키시(市)가 대표적이다. 또한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나름의 역사와 매력을 품고 있는 오바마시와 운젠시 그리고 시마바라시가 나가사키현 안에 모여살고 있다. 나가사키시는 나가사키현의 행정중심도시, 현청소재지이면서 짬뽕과 카스테라라는 독특한 먹거리의 발상지이면서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그리고 야경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크루즈가 입항할 수 있는 도시로써 변모하면서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보통 나가사키라고 하면 나가사키시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된다. 나가사키시 곧 나가사키를 가는 방법은 비행기를 타고 나가사키 공항에서 차로 50분(40km), 한국사람들이 자주 찾는 큐슈의 중심도시 후쿠오카(하카타)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시 자동차로는 약 2시간 30분정도(160km), 신칸센 기차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나가사키로 오는 사람들은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도착하면 전부 내려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다시 출발해 다른 곳으로 옮겨주지 않는다. 아주 당연한 말을 꺼낸 이유가 있다. 다름아닌 나가사키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는 기차의 종착역, 버스의 종점이기 때문이다. 경유하는 장소, 이런저런 선택이 없는 장소라는 것이다. 열차의 표지판을 보더라도 나가사키는 한쪽 방향의 지역명만 있다. 한쪽은 비어있다. 종착역만 쓰는 표지판의 특징이다. 끝이다. 도착했으면 모두 내려야 한다.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망망대해뿐이다.
그렇다면 종착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떨까? 기차여행의 끝이기에 아쉽고, 어둡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당황하는 표정일까? 모두 다 예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밝다. 활기차다. 어떻게 보면 설렘이 묻어나는 표정이 대부분이다. 왜일까? 분명 끝인데, 끝났는데, 멈췄는데... 나가사키역에는 보통 어떤 것의 끝에서 만나는 부정적이고 불편하고 걱정되며 당황하는 그런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제 비로소, 끝에 왔기에 나가사키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가사키는 분명 종착역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뿐이다.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로소 진짜 나가사키 여행이 시작되는 설렘 가득한 출발점이기에 그곳에서 허둥대지 않는다. 이런저런 염려로 멈춰있지 않는다. 이 끝을 만나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기에 어쩌면 종착역에서의 두려움이란 없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어떤 좌절을 경험한다.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보통 어떤 것의 끝에 서 있을 때에 그렇다. 기대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들을 망쳤다. 조금씩 조심스레 키워온 소망들과 원함이 어느순간 어떤 계기를 통해 무너졌다. 사람들이 나를 속였다. 나를 배제했다. 가족도 나를 외면했다. 사람마다 경험하는 내용과 느끼는 감정의 크기는 달라도 [종착역 앞에 서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 이런 순간과 경험들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좌절이고, 허둥대며, 어둡고, 아쉽고, 염려하며 두려워한다. 끝에 서 있으니 그런게 당연하다. 그리고 그 당연함에 순응하여 우리는 부정적이고 불편하며 답답하고 힘든 시간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발버둥을 친다. "이게 뭐람? 애써서 달려왔는데? 끝인거야?"
나가사키역에서 이런 질문이 나에게 찾아왔다. 같은 종착역인데 나가사키에서 끝을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기분 그리고 경험하는 감정들은 우리가 마주한 끝, 종착역에서와는 왜 다를까? 무엇이 다르게 만들까? 나가사키의 끝에서 설렘이 찾아오고, 기대감을 갖게 된다면 우리 일상의 끝에서는 동일하게 경험될 수는 없는 것일까?
흔히들 끝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다음단계, 새로운 가능성의 발판이 될 때에 그렇다. 끝에서 좌절하는 것은 다음단계가 없기 때문이다. 끝에서 두려움이 허둥대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지 못했기에 때문일 것이다. 다음단계가 없고 새로운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순간 모두가 끝이고 종착역이 되어버린다.
내가 믿는 예수는 끝이라고 말하는 곳, 종착역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다음단계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에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이 바로 그렇다. 우리가 경험하는 두려움, 염려, 좌절, 아쉬움, 안타까움, 외로움은 모두 죽음의 증상들이다. 이런 증상들은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기대와 소망이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생각조차 나지 못하게 한다. 죽음의 증상들은, 아니 죽음은 끝이라는 종착역에서 우리를 사로잡는다.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그저 발버둥치며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며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인다. "넌 끝이야" 세상의 많은 정보, 책 그리고 지혜들은 어떻게 이 죽음의 증상을 이기는지 나름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임시방편이며 결국 끝에 서는 삶으로 돌아가게 하며 더 큰 좌절과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끝에서 그저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일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예수]가 있다. [사망]이라는 끝, 종착역에서 왕의 행세를 하며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들을 완벽하게 깨뜨리고 승리의 증거로써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우리와 함께 한다. 예수는 직접 죽음에서 살아남으로 종착역에서 다음단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온 몸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를 믿는 모든 이들은 예수를 쫓아 누구든지 얼마든지 끝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다음단계라는 사명,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소원을 갖게 하신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은 분명 종착역임에도 그곳에서 웃을 수 있고, 일어설 수 있으며, 설렘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종착역을 경유지로 바꿔주시는 분이시다. 그 예수를 쫓을 때에, 그 예수와 함께 할 때에 우리가 끝이라고 경험되는 종착역을 오늘 마주하는 나가사키역처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경유역으로 경험할 것이다. 두고봐라, 끝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크고 한결같은 사랑을 따라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 있는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통해서요
(베드로전서 1장 3절_새한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