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 자유 그리고 사랑
나가사키에서 짬뽕만큼 자주 눈에 띄는 가게가 있다면 바로 카스텔라를 판매하는 곳이다. 어디에나 쉽게 마주치는 카스텔라는 노점의 매대에서부터 고급스러운 자태를 가진 근사한 가게의 쇼케이스까지 다양한 모습의 카스텔라를 품고 있다. 관광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특정한 장소에서뿐만 아니라 한적한 골목의 가게의 메뉴판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는 품목으로써 카스텔라도 있으니 단순한 관광상품을 뛰어넘는다고 하겠다. 이쯤이면 나가사키의 카스텔라 사랑은 세계 최고가 아닐까? 사실 카스텔라는 나가사키 짬뽕과 함께 나가사키를 원산지로 하는, 나가사키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음식이다. 곧 오늘 우리가 만나는, 알고 있는 카스텔라의 시작이 바로 나가사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카스텔라의 시작 이야기를 나눠본다.
나가사키를 품고 있는 규슈는 1500년 중반부터 유럽(포르투갈) 상인들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시간을 거듭하고 다양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쇄국정책의 그늘 아래에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교류를 끊을 수는 없었고, 서양문물이 유입되는 창구역할이 필요했습니다. 그 필요를 연결하는 도시가 바로바로 나가시키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나가사키는 일본과 서양의 흥미로운 만남이 펼쳐지는 장소로써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카스텔라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 기원에 대한 다양한 설들이 존재합니다. 그중에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즐겨 먹던 간식 "팡 데 로(Pão de Ló)"라는 이름의 스펀지 케이크의 한 종류를 나가사키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밀가루, 달걀, 설탕이라는 소박한 재료로 만들어진 이 음식은 당시 일본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 음식은 카스티야 왕국의 빵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팡 데 카스텔라(Pão de Castella)"로 불리다가 점차 나가사키 사람들에게 카스텔라로 굳어졌습니다. 카스텔라라는 말은 일본에서 만든, 일본말이며 정작 포르투갈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카스텔라를 맛보려면(정확히 카스텔라는 아니고 그와 비슷한) "팡 데 로(Pão de Ló)"라고 말해야 하며 여전히 포르투갈에서는 부활절을 기념하는 특별한 음식으로, 성탄절에도 함께 먹는 전통적인 "팡 데 로(Pão de Ló)"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곧 카스텔라는 일본의 음식이며, 일본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팡(Pão)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팡(パン)이 되었고 이 말이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빵"이라는 단어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카스텔라는 구하기 쉽지 않은 재료, 설탕 때문에 주로 상류층이나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고급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설탕의 대중화와 함께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카스텔라는 포르투갈 사람들로부터 전수받은 레시피를 유지하면서 400년 넘게 나가사키를 비롯한 일본 사람들 그리고 나가사키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삼대 카스텔라로 알려진 가게들이 오늘까지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로 창업 400년을 넘긴 후쿠사야(福砂屋_1624년 창업), 안타깝게 후발주자의 이름을 가졌지만 그 역사 역시 결코 쉽게 여겨서는 안 되는 쇼오켄(松翁軒_1681년 창업), 그리고 현대적 감각을 덧입혀서 카스텔라의 새로운 도약을 보여주는 분메이도(文明堂_1900년 창업)를 비롯한 다양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가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나가사키를 방문했다면 다양한 카스텔라를 맛보는 미식투어도 추천할만합니다.
어떻게 나가사키는 카스텔라는 400년 넘게 이어오고 있을까요? 나가사키 카스텔라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 몇 가지들을 나눠보겠습니다. 첫째는 변하지 않는 바탕재료입니다. 빵이라는 음식으로 분류되지만 우유, 버터 혹은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400년 전에 전수받은 "팡 데 로(Pão de Ló)"의 레시피 곧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달걀만으로 제조하고 있습니다. 핵심이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습니다. 더 좋은 맛을 위해서, 더 괜찮은 식감을 위해서 어떤 변화를 줄 법하지만 끝까지 고수하고 고집하며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달걀이라는 바탕이 되는, 핵심이 되는 것들은 결코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탕재료들의 완벽한 "일치"를 통해 카스텔라 본연의 맛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바탕재료를 변화시키지 않는 고집, 일치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바탕재료를 지키면서 일본, 나가사키의 특징들을 다양하게 담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자라메(ザラメ)라는 씹을 때에 오독오독 씹히는 독특한 식감의 단맛을 경험하게 해 주는 설탕을 카스텔라의 가장 아랫부분에 깔아 두었습니다. 자라메는 높은 온도에도 잘 녹지 않아 독특한 단맛과 식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습기를 머금는 특질로 인해서 카스텔라가 푸석푸석해지지 않도록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설탕에 꿀이나 물엿을 첨가하여 스펀지케이크보다 훨씬 묵직한 느낌의 쫀득함을 보여주어서 다른 것들과의 차별화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각 가게들은 저마다의 미묘하게 다른 바탕재료의 배합비율들을 "자유롭게" 발휘하여 고유한 개성과 풍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나가사키 사람들의 카스텔라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고, 특별한 맛과 식감을 제공한다고 해서 나가사키 카스텔라를 400년 이상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들(나가사키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고, 애정으로 함께 해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가사키 카스텔라, 아니 카스텔라는 없었을 것입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질 유행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드는 이의 정성과 사랑, 소비하고 찾는 이의 관심과 애정이 한 데 모여서 이룬 오늘의 카스텔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400년을 넘게 이어올 수 있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당당히 그 이름이 희미해지지 않았고, 나가사키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환영을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주절주절 풀어놓았습니다. 어쩌다가 400년은 없습니다. 바탕재료에 대한 고집(일치), 이외의 것들에 대한 자유 그리고 정성과 사랑을 품은 마음이 만난 40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카스텔라]가 아닐까요? 일치와 자유 그리고 사랑에는 힘이 있습니다. 커피와 함께 한 입, 나가사키 카스텔라를 먹는 일상을 상상해 봅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
(루페르투스 멜데이우스, Rupertus Meldenius_17세기 독일 루터교 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