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아닌 자족 그리고 감사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유이한 도시다. 원자폭탄은 인간이 고안해 낸 대량살상의 현실이 어떠한 것인지를 현실로 보여주는 것으로, 절대 쓰여서는 안 되는 "사용불가"의 영역 안에 두는 무기다. 이것을 사용하는 순간 모든 인류가 한꺼번에 멸절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보유하되 사용하지 않는" 나름의 암묵적 합의를 갖고 있다. 이런 이해를 갖게 만드는 증거를 갖고 있는 도시가 바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다. 이 도시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이 얼마큼의 비극과 끔찍한 현실을 만들어 내는지 절대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원폭자료관"(나가사키), "평화기념자료관"을 설립하고 전시 중이다. 두 자료관은 원폭 피해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를 호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오늘이라는 시점으로부터 출발하여 거꾸로 시간여행을 하는 형식처럼 과거를 향해 원형의 갓길이 내리막으로 펼쳐져있다. 천천히 그 끝을 향해 걸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 8월 9일을 가리키며 길의 종점에 다다른다. 그리고 당시의 시간을 가리키고 멈춰있는 시계(11시 2분)를 통과하며 그날의 참상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얼마큼의 피해와 처참한 현실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에 과감하다. 생략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보여주고 드러낸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사진들도 곳곳에 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눈을 감게 만들기도 한다. 절대 이러한 무기가 사용되는 날이 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로 갖게 만든다.
더불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서로 평화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절절하게 호소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평화에 대한 마지막 방점은 자료관의 끝 부분에 자리 잡은 기념품 가게에는 종이학 관련 제품, 평화의 종 관련 기념품, 평화 관련 문구가 새겨진 제품 등 온갖 평화를 상징하는 품목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의 제목을 오마주해 본다면 "원폭자료관에서 평화를 외치다"정도라고나 할까? 이게 틀리지 않다는 생각은 원폭자료관 부근의 동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폭자료관을 나오면 자연스레 걸으면서 만나는 그라운드제로라고 불리는 폭심지를 거치게 되고 그 앞을 지나치면 어느새 평화공원의 입구를 마주하게 되어 원폭자료관과 평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놓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에서 자주 마주하는 그룹들이 있는데 대부분 초등학생과 청소년들이다. 단체로 소풍을 오거가 견학을 오게 된 것이리라. 친절한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5-10명의 학생들이 메모지를 가득 채우며 무언가를 적고 있는 모습은 원폭자료관의 일상처럼 경험된다. 그런데, 원폭자료관이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시민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로부터, 원자폭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를 통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황, 그 끔찍한 현실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곳을 방문한 일본의 미래세대들에게 어떤 마음의 씨앗이 심기게 될 것인가?
일본이 한때 한국,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지역까지 자원확보와 경제권 확대를 위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정치적 구호 아래에 자행한 일들이 있다. 부인할 수 없는 과거다. 단순히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 침략을 당했던 나라의 후손으로서 불편한 마음에 문제 삼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폭으로 인한 피해를 받게 되기까지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들은 생략하고 "피해를 당했다"에 초점을 맞추어서 전시하는 일들이 혹 그토록 염원하고 바라는 평화보다는 또 다른 적대감과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원자폭탄이 어떤 잘못에 대한 혹독한 대가로 이해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원자폭탄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합리화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이해한다. 다만 원폭자료관이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참상을 불러일으키게 된 원인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시작되는 지점이면 좋겠다. 나약한 인간이라는 이해와 더불어 인간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욕심 그리고 힘에 대한 과신 등 다양한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고민의 탑을 쌓아가며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평화를 위해 서로가 담당해야 하는 몫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일이 경험되는 공간이면 어떨까?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을 갖겠다는 욕심, 그것을 지배하여 얻어내려는 잘못된 기대가 자라나면 슬그머니 죄는 우리를 찾아오게 되고 마침내 우리는 죄에 사로잡혀 사망의 자리에 가게 되는 것이리라. 원폭자료관에서 욕심이 낳은 죄의 결과, 사망의 자리가 얼마나 비참하고 참담한지를 목격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욕심이 아닌 감사와 자족함이 우리를 평화의 자리로 안내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감사와 오늘에 대한 만족함이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주는 일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의 욕망에 이끌리고 욕망의 꼬임에 넘어가서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면 욕망이 새끼를 배어 죄를 낳고, 죄가 완전히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_새한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