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대부분 짬뽕이나 카스테라 그리고 26성인 기념관, 평화공원의 커다란 조형물인 '평화기념상'정도를 꼽을 것이다. 나아가 메가네바시, 원폭자료관, 오우라성당, 도루코라이스 등을 나열한다. 먹거리 혹은 유적지 및 건축물들이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얼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일본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사람"을 중심으로 물어보면 메이지시대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카모토 료마'나(료마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공원이 있고_風頭公園展望台 / 료마가 세운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_亀山社中의 기념관이 있다. 또 료마의 얼굴을 라떼아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카페도 있다_ATTIC COFFEE 2nd) 오랜 전 순교의 삶을 살았던 26성인들을 말할 수 있겠다. 이뿐일까? 나가사키를 좀더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잊지 못하고 자랑하고 싶은 한 인물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나가이 다카시"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인물이지만 나가사키를 방문했다면 료마만큼, 26성인들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기에 한 챕터를 만들고 소개하고자 한다.
나가이다카시(永井 隆_이하 나가이박사)는 방사선과 의사다. 어린시절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그의 관심과 기대는 의과대학입학으로 이어졌다. 좋은 성적을 받았고 앞날이 활짝 열려있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만주사변에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처참한 현실에 맞닥드렸고, 뒤 이은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며 그동안의 과학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무신론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나가사키 의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중에 . 당시 나가사키 우라카미 지역의 가톨릭 신자 가정인 모리야마 가문에 하숙하며 독실한 신앙을 가진 미도리와 가족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했고, 1934년 그녀와 결혼하며 자신도 영세자가 되어 새로운 삶을 이어갔다.
이후 방사선과 의사로 연구에 열중하며 복된 날들을 이어가는듯 했지만 당시의 방사선 기술이 사람을 보호하지 못했기에 1945년 만성골수성백혈병진단을 받고 3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과학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격이다. 그리고 병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추수르지도 못한 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이로인해 아내의 죽음이라는 막막한 상황을 마주한다. 원자폭탄 투하로 나가사키는 초토화되었을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는 이 땅에 없고, 자신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며 어린 두 자녀만 남겨진 삶에 과연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나가이박사는 곤란하고 혼란스러우며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그가 가진 신앙은 좌절에서 허우적거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불안과 공포에서 발버둥치는 삶에서 일어나 소망을 보게 해 주었다. 스스로 구호반을 조직하여 의사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수많은 피폭자들을 돌보고 치료했다. 그야말로 헌신이 무엇인지, 희생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와중에 병세는 악화되어갈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까지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냈다.
자신이 피폭자이면서 백혈병으로 이미 몸이 망가졌지만 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결코 자신의 소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폐허가 된 집터에 지은 작은 판잣집인 '여기당'을 세우고 누워있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감당했다. 원폭의 비극을 기록하고 그 속에서 지켜내야하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나아가고 가꾸어야할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글들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그의 글쓰기는 그 어떤 싸움보다도 치열하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며 일부러 여기당의 앞면에 걸터 앉을 수 있는 작은 마루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 누구도 거절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소망" 그리고 "평화"를 말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하얗게 불태웠다.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가이 다카시 기념관이 있고 바로 앞에 여기당이 있다. 한자로 '如己(여기)'는 '자기 자신과 같이'라는 뜻이며 이것은 나가이 박사가 평생 삶의 모토로 삼았던 이웃 사랑의 정신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다다미 두개, 두 사람이 누우면 더이상 공간이 없다고 할만큼의 작은 장소이지만 "평화"를 말하는데, "소망"을 외치는데에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나가사키에 왔다면 일부러라도 여기당을 찾고, 집의 한쪽면, 삐쭉 튀어나온 아주 소박한 마루에 걸터앉아 누워있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며 소망 가득하며 평화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마주했을 나가이박사를 만나는 상상을 해 보는 일은 어떨까?
소명이라는 것은 어쩌면 모든이가 알아보고, 칭찬하는 위대하고도 특별한 일을 해 내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온 힘 다해 감당하는 것은 아닐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여의치 않은대로, 힘들고 괴로우면 그 괴로움을 품은채로 할 수 있는 만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덧입혀질 것이고 소명자의 주변에 감동과 은혜가 펼쳐지지 않을까? 애를 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일을 기꺼이 해내려 발버둥 치는 인생을 위해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시리라 믿는다. 이런의미에서 나는 소명자로 살고싶다. 주변을 감동과 은혜로 채우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온 힘 다해, 주변을 탓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내며 기쁜마음으로 감당하고 싶다. 나가이 박사님의 여기당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큰 어려움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큰 어려움 가운데 견디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요. 또 견디다 보면 굳세지고, 굳세지다 보면 희망이 생긴다는 것을요. 희망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3절-5절_새한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