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젠지옥

잊혀지지 않을 사명

by 알랑뽕

나가사키 현영 버스터미널에서(나가사키역 앞 건물) 약 두 시간의 긴 여정끝에 만나는 종점, 운젠정류소에 내리면 메캐한 냄새가 먼저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땅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증기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광경을 선보인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었다면 신비로움과 함께 경험되는 생경함에 약간의 긴장감을 갖게할 만큼이다. 여긴 어딜까?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니겠지? 혼자왔다면 혼자말로, 같이 왔다면 서로의 눈을 보면서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었을께다.

KakaoTalk_20250730_180630008_02.jpg

운젠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흰 색의 뜨거운 수증기와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유황 가스는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고 하여 온천이라는 이름대신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다들 운젠온천을 운젠지옥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30여 개의 크고 작은 '지옥'들이 펼쳐져 있으며 강렬한 유황 냄새와 끓어오르는 늪지가 장관을 이룬다. 일찍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일본의 첫번째 국립공원) 보호와 관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 운젠지역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휴양지로써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품고 있음과 동시에 유황온천이 주는 효능에 대한 매력 그리고 각양각색의 숙박과 레저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편한 대중교통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인기가 많은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사적 장소"라는 사실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7세기 가톨릭이 일본에 그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따르는 이들이 많아지자 정부는 기독교를 엄격하게 탄압했다. 하지만 나가사키 지역의 사람들은 탄압과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고문을 시작했다. 신자들은 실제적으로 자신의 영지 안에 있는 하나의 재산과 같은 것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죽이는 일 대신에 공개적인 고문을 통해 배교하게끔 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파악되지 않은 신자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주어, 신앙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KakaoTalk_20250730_180630008_01.jpg

운젠지옥은 그러한 고문과 처형의 현장이었다. 신자들을 뜨거운 온천수에 반복적으로 담그거나 끓는 온천수를 천천히 머리에서부터 떨어뜨리는 가혹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이에 견디지 못하고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간 이들도 있다. 곧 운젠 지옥에서는 1627년부터 1632년까지 잔혹한 기독교 박해가 이루어졌고,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그 중에는 배교를 거부하여 손가락이 잘리는 고문을 받고 춥고 거센 바다에 던져져 순교를 하는 세 아들을 지켜봐야 했던 바울로 우치보리(Paulo Uchibori)와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오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운젠지옥에서 당한 참담한 고문과 그 속에서 보여준 견고한 신앙심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남긴 조선여인 이사벨라도(Isabella) 있다.


이를 기억하려 후손들은 운젠지옥의 언덕 위에 커다란 십자가와 순교비를 조성해 두었다. 가톨릭 나가사키 대교구는 매년 5월 셋째 주 일요일에 운젠순교제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 때에 신자들은 묵주기도 행렬을 하거나 현양 꽃다발을 봉헌하는 예식 등이 이어진다. 운젠지옥의 순교비는 신앙을 위해 죽음을 경험하게끔 하는 고통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켜낸 신앙의 선배들 그리고 순교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도록 돕고 있으며 시대를 넘어 오늘에까지도 신앙의 가치을 일깨우는 중요한 장소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순교비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지도를 통해 그 위치를 확인하며 찾아갈 수 있겠으나 전혀 친철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 주변에서 몇 번을 헤메야 비로소 찾을 수 있을만큼이다. 그 흔한 표지판 하나 보기 쉽지 않다.(한국어로 되어있는 표지판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일본어로 된 것도 아예 없다) 일반적으로 다니는 길에서 약간 비켜 서 있는 위치이기에 일부러 찾는 이가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장소에 자리잡았다. 왜 그럴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찾지 않는 장소여서가 아닐까?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된 이유는 입구가 정비되지 않아 그 안에 뭐가 있을까? 있다고 한들 굳이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게 한다. 입구에 표지판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표지판의 내용을 보고 호기심이라도 들어 혹시 찾아보기라도 할 텐데 그런 호기심조차 들지 않게 하는 장소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적으니 누구하나 표지판이 없다는 민원을 내지 않는 것이고, 정비하는 일에 소홀함이 생겨 마주한 오늘의 현실이 아닐까?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길 원하는 순교비가 일종의 보물찾기가 되어버려 영영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 홀로 속이 탄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이곳 운젠을 찾고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운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가사키를 온전히 본 것이 아니다"라는 나름의 슬로건을 품고 부지런히 이곳을 소개하고 있다.

KakaoTalk_20250730_180808482.jpg

만약이지만 찾는 이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위치를 묻는 민원들이 자주 발생한다면 순교비 입구에 대한 정비나, 표지판은 언제라도 금방 정리되고 또 세워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호기심에라도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이곳에서 운젠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마침내 생각지도 못한 만남을 통해 "하나님", "기독교 신앙"을 경험하는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신앙유적지들은 나름의 사명을 갖고 조성되었다고 믿는다 그 사명들이 잘 펼쳐질 수 있도록 잘 정비하고, 알리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는다. 귀한 것들이 생기기는 어려워도 잊혀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내가 아는, 내가 마주한 신앙유적지에 대한 애정에 대한 생각들이 이곳 운젠지옥, 운젠순교비를 통해 견고해지면 좋겠다.




그대는 다만 조심하여 자신을 잘 지키십시오. 그래서 그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일들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일들이 그대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그대의 아들딸과 손자녀에게 그 일들을 알려 주십시오.

(신명기4장9절_새한글성경)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8화원폭자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