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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량 Mar 26. 2023

사업하는 아티스트

비디오그래퍼 김성현 인생소개서



이번에 소개할 분은 제가 3년 전부터 알고 지낸 비디오그래퍼 김성현님입니다.

(재작년 함께 사업가들을 인터뷰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ㅎ)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늘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참 멋지고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이분이 가끔 동기부여 영상 링크를 보내줄 때면, ‘아 내가 이렇게 게으르게 살면 안 되지!’ 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는! ㅋ)

또 아티스트로만 남지 않고 사업을 구축하려는 것도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구요 :)


보통 성공에 목말랐다고 하면 주변 사람 개의치 않고 성공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모습을 떠올리는데, 성현님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것이 돋보이는 분이에요.


사업을 하며 절절히 체감한 것이 개인의 능력 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였는데요.

성현님은 사업가를 꿈꾸는 아티스트기에 그걸 진작에 깨달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할 땐 한없이 진지하지만, 만나면 더없이 따뜻한 김성현님의 인생소개서 시작할게요!






사업하는 아티스트

비디오그래퍼 김성현 인생소개서



보는 이에겐
온기를 전하는 비디오그래퍼,
함께 일하는 이에겐
편안함을 주는 사업가
가 되고자 합니다.


제주도 촬영 현장의 하늘 진짜 예술이죠?!
영상이나 사진은 촬영만큼 보정 시간이 길다는~



미치도록 성공하고 싶었다


처음 자기계발 서적을 읽었을 때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성공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성공한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계발 서적을 읽었다고 하니 책부터 찾아 읽었다.


집안이 지지리 가난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배관·시공을 주로 하는 설비업을 차리셨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며 자랐고, 자연스럽게 내가 사업을 한다면 이런 것은 하지 말아야지, 저런 것은 조심해야지 그런 생각들이 몸에 배는 시기였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적당한 수입, 적당한 자유, 적당한 편안함에 만족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부, 1년에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싶었다.

한 마디로, 열렬히 성공하고 싶었다.


안정적 소득 기반부터 마련하자는 생각에 군대를 다녀온 후 독한 마음을 먹고 회계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아침에 해 뜨면 독서실로 가서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3개월만에 우울증이 왔다. 내 자신이 공부에 잘 맞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만나는 사람 하나 없이 하루종일 갇힌 공간에 있는 걸 견디기 힘들었다.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로 친구들과 PC방에 다니기 시작하다가 결국 6개월만에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다.


성공하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당시 나는 스스로에 대한 파악이 안 돼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찾아야 했다.

대학교 도서관과 인터넷에서 자기계발에 관한 서적과 영상을 찾아 엄청나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독서 요약 노트


동시에 여러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편의점, 빵집, 초밥집, 치킨집 등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구미의 프레스 공장에도 다녀보고 음식 판매 코너 호객 행위, 영상 촬영 보조 등 다년간 아르바이트를 하자 그 중에 마음에 훅 꽂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영상 촬영.


하는 내내 신이 나고 힘들어도 질린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아, 나는 뭔가 직접 만들고
그걸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영상을 잘 찍으려면 사진에 대한 감각부터 길러야 한다는 말에 당장 똑딱이 카메라를 사서 이런 저런 풍경들을 찍고 다녔다.


영상 관련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그중 UCC 공모전에서 상을 받자 더욱 신이 났다.


UCC 공모전 발표 모습


이후 눈에 불을 켜고 영상 관련 강의들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안동 MBC 방송아카데미, 경북콘텐츠진흥원을 비롯해 서울에서 하루짜리 강의와 정보가 되는 곳이 있으면 무조건 다녀왔다.


그렇게 계속 사진과 영상 쪽에 시간을 쏟다 보니 전공인 회계 공부에 쏟을 시간이 부족해졌고, 결국 결단을 내렸다.


회계를 포기하고 영상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으로.



밥은 안 굶게 해줄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다음날 서울로 왔다.

2년여간 영상 강의를 쫓아다니다 알게 된 한 감독님이 촬영 보조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밥은 안 굶게 해줄게’ 한 마디에 앞뒤 재지 않고 서울행을 결정했다.

동기들이 면접을 보기 위해 정장을 준비할 때, 나는 27인치 캐리어에 등산복과 생필품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첫 촬영은 MBC 다큐멘터리 스페셜 ‘지상의 별 반딧불이’였다.

다큐멘터리를 잘 몰랐던 나는 60분짜리 다큐멘터리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그렇게 오랜 기간이 걸리는 줄 미처 몰랐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해내야 하는 환경은 힘들었지만 빠르게 나를 성장시켰다.


내가 참여한 작업은 호흡이 길어서 한 편 제작에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곤 했다.

특히 자연 다큐멘터리의 경우 해당 계절에 원하는 장면을 찍지 못하면 다음 해로 넘어가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경외심이 절로 솟아났다.


반딧불이는 야간 촬영을 해야 하니 낮에 쪽잠을 자기 일쑤였고 기가 바짝 들어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총 감독님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 판에 막내인 내가 뭐라고 할 게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전국에 송출되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뿌듯함 덕분인지 힘들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이를 촬영하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깜깜한 숲 속에서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빛 벌레들은 마치 움직이는 은하수를 보는 듯했다.


MBC 다큐멘터리 '지상의 별 반딧불이'


2016년 한 해는 감독님 말대로 딱 밥만 먹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촬영 실력을 높이려면 강의나 책 등 배우는 데 돈을 아낄 수는 없었기에, 생계비를 빼면 잉여 자금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실력을 쌓는 게 우선이었다.

시간을 갈아넣는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자 감독님은 점차 모든 촬영에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뭐든 배울 때는 좀 바보같아야 해.

어떻게 하면 더 편할까 요리조리 계산하면 제대로 배울 수가 없지.

다른 일도 그렇겠지만 촬영이란 게 더 그래. 요령 피우기 시작하면 그 마음 그대로 작품에 묻어나와.

근데 우리 성현이는 참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우직해서 좋아. ㅎㅎ

성현아, 꼭 기억해라.

시간은 절대 배신 안 한다.

네가 쏟은 노력 그 시간만큼 작품에 배어나오고, 그럼 반드시 시청자가 그걸 느낀다.”


감독님과 함께 하던 다음해에 나는 엄청난 기회를 맞게 되었다.

BBC 자연 다큐멘터리 <한국의 숨겨진 자연 South Korea: Earth’s Hidden Wilderness>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 편의 오케스트라 공연 같은 다큐멘터리


BBC 다큐멘터리는 예산 규모부터가 달랐다.

투입 인원은 50명에 달했고, 프로듀서만 Executive Producer, Assistant Producer, Producer, Line Producer 등 10명이 넘었다.

국내에서는 한 사람이 이것저것 하는 경우도 잦은데, 굉장히 역할이 세분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국에서 수석 연출자가 파견되었고, 그들이 한국 실무진과 조율하며 전체 플랜의 얼개를 잡았다.

나는 회의에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일하는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계획을 세우더라도 현장 상황에 따라 유연성 있게 대처하는 게 장점이라면, 영국 BBC의 경우 최대한 변수를 줄이기 위해 꼼꼼하게 플랜을 세우고 각자의 역할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는 것이 장점이었다.


특히 연출자가 스탭과 대화를 나눌 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 하달식이 아니고 ‘What do you think?’라고 의견을 묻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최종 영상물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면 담당 스탭 누구든 의견을 내고 반영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그대로 몸에 배어나왔다.

감독님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했지만, 다른 팀들은 대체로 수직적 소통 체계를 가지고 있어 답답함을 많이 느꼈기에 해외 연출자의 모습이 유난히 가슴에 남았다.


BBC 다큐멘터리 촬영 현장


하나의 매끄러운 이야기가 되도록 영상을 자르고 이어맞추고 추가하는 편집 작업 후, 작곡가의 웅장한 음악과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덧입혀져 완성되는 다큐멘터리 작업.

BBC2 채널에서 완성본을 봤을 때, 촬영할 때와는 또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마치 단원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고 그 소리들이 어우러쳐 장대한 공연을 만드는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 같았다.


BBC 자연 다큐멘터리 <한국의 숨겨진 자연 South Korea: Earth’s Hidden Wilderness>


영상이 종합예술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 만들어낸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크게 느낀 순간이었다.



사람의 매력에 푹 빠져들다


이후에도 여러 감독님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서울시, 국립민속박물관, 문화재재단, 국립무형유산원 등 다수 공공기관의 행사 및 전시 영상을 진행했다.

몇 년간 굵직굵직한 영상 프로젝트를 해나가며 경력을 쌓자, 개인적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 2020년 맡은 한세대학교의 클래식 연주 영상 촬영은 사람을 촬영하는 것의 매력을 알게 해주었다.


클래식을 하다 보면 기량 향상에만 매몰되기 쉬운데, 한세대학교 음대에서는 음악의 본분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고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음악회를 열었다.

단순히 피아노 연주만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과 학생들 하나하나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들으니 연주가 한층 깊이있게 다가왔다.


한세대학교 클래식 연주 영상 촬영


사람과 교감하며 촬영한다는 게
참 따뜻한 일이구나.


기존에 주로 찍던 자연과는 다른 시람만이 줄 수 있는 울림이 있었다.


작년 아티스트 60명의 이야기를 듣는 예술청의 ‘예술거래소’ 작업은 사람을 촬영하는 매력에 푹 빠지게 했다.

예술청은 2021년 11월 서울문화재단이 예술인을 위한 공간으로 표방해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개관하면서 새롭게 시도한 것이 ‘예술거래소’였다.

예술인 누구나 자신의 재능이나 혹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판매‧교환‧나눔할 수 있는 아트마켓으로, 말하자면 예술인들이 셀러인 셈이다.



비디오그래퍼로서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에 대한 호감이 있는 데다, 특히 과거 아티스트처럼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자본주의 시대에 맞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거래하려는 아티스트를 여럿 만난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일반인의 사연으로 노래를 만드는 뮤지션, 비밀 편지를 교환하려는 시인, 시간을 판매하는 행위예술가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면서 나 자신 또한 돌아보게 되었다.


비디오그래퍼로서
나만의 강점은 뭐지?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영상을
촬영하고 싶은 거지?

불안정한 프리랜서가 아니라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근본적인 질문들이 떠올랐다.

주변으로부터 한결같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노력’이었다.


촬영하는 사람은 촬영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좋은 촬영은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본질을 잡아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촬영 의뢰가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의뢰 대상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며 그 사람을 파악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부터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꺼려하는지를 알게 되면 촬영할 때 그런 점들을 반영하게 된다.

그 사람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좋아하는 점은 더 돋보이게 하고 꺼려하는 점은 피해 영상을 찍게 된다.


출연자를 편안하게 하면, 그 출연자의 영상을 보는 이도 편안하게 느낀다.


그 영상은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고 자꾸만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아티스트를 인터뷰하는 매력에 흠뻑 빠지면서, 돈벌이와는 별개로 이 작업을 지속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기도 했고,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아카이빙 하는 동시에 이들과의 연대를 만들면 나중에 신나고도 의미있는 작업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좋은 그림은 여러 영역의 아티스트와 함께 프로젝트에서 발전해 사업까지 이뤄보는 것이었다.



협동조합의 대표가 되다


10대~20대 시절 읽은 수백 권의 자기계발 서적은 한 명의 비디오그래퍼로서가 아니라 사업가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다.

직업 특성상 개인적인 몸값을 올리는 것이 부를 쌓는 첫 단계겠지만, 더 큰 경제적 자유과 안정적 기반을 위해서는 사업으로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영상은 영화 감독이나 인기 유튜버가 되지 않는 한 의뢰를 받아 제작하기에 의뢰 건수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감독님들과 머리를 맞대 생각한 안이 협동조합이었다.


일종의 아티스트 프리랜서 연합체로 영상 감독을 비롯해 전시 전문가, 작가, 디자이너, 가수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기반을 닦는 것이 목표였다.

프로젝트에 따라 가장 적합한 인력들이 뭉쳤다가 흩어졌다 하면서 수주율을 높이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이면 서로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 안정적 수익 외 서로의 발전에도 좋을 것 같았다.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먼저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기업이나 기관에 의뢰하거나 대중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콘텐츠브릭스협동조합’을 브랜딩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감독님들이 주축이다 보니 30대 초반인 내가 막내였지만, 조합원들은 가장 어린 나에게 대표 자리를 권했다.

좀 더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현재의 트렌드에 맞추기에는 어릴수록 더 적합하지 않겠냐고 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언젠가는 사업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기에 더 배우고 성장하는 데는 좋은 기회라고 느꼈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처음이고 자신만의 관점이 강한 아티스트들을 조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동시에 처음이고 존경하는 인물들과 일한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협동조합이 결성되고 조직 내에서 가장 뿌듯했던 프로젝트가 앞서 말한 예술청의 ‘예술거래소’ 프로젝트였다.

아티스트와 소통한다는 것은 특별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그들의 세계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그들의 마음을 얻기 쉽지 않다.


내가 특별히 신경썼던 점은 영상의 퀄리티를 높이겠다고 촬영 현장에서 아티스트들이 장시간 기다리거나 불편한 일이 없도록 하는 이었다.

욕심을 내면 결과물은 잘 나올지 모르겠지만 인간 관계에 금이 가고, 그런 것은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충분한 협의와 소통 덕분에 출연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이들 중 일부는 협동조합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협동조합을 결성한 지 이제 갓 1년이 지나 앞으로도 넘어야 할 단계들이 많겠지만, 올해는 ‘콘텐츠브릭스협동조합’이라는 아티스트 연합체가 있다는 것을 더 널리 알리고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목표이다.



사업하는 아티스트


누군가 내가 어떤 비디오그래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비디오그래퍼’다.

내 영상이나 활동들을 봤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지어졌으면 하는 게 바램이다.

사람마다 어려운 시기가 있고 그때는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마음속에서 자라난다.

나 역시 점점 쪼그라드는 집안을 지켜볼 때, 회계가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서울에 올라와 돈이 없어 하루 한끼를 어렵게 때울 때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다면 부정적인 생각은 사그라들 수 있다.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비디오그래퍼로서 가장 뿌듯할 것 같다.


영상을 보는 시청자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도 마찬가지다.

아티스트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주관이 뚜렷해 종종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나는 이들을 감싸안는 중재자가 되고 싶다.

만나면 언제나 편안한 사람, 어려울 때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늘 성장하고 있어 언제나 배울 점이 있는 대표가 되고 싶다.


동료들과 함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티스트와 사업가는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비밀은 타인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나만의 단단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동시에 타인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면 많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사업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내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두세 가지 영역에서 상위 20% 안에 드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현대에는 한 가지 영역에서 1% 최상위권에 드는 것보다, 두세 가지 영역에서 20% 정도의 상위권에 드는 것이 훨씬 더 경쟁력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비디오그래퍼로서는 상위 1% 안에 들기 쉽지 않고, 사업가로서도 상위 1% 안에 드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각각 20% 안에 들어가면 스콧 애덤스가 <더 시스템>에서 말했듯 ‘사업하는 아티스트’라는 굉장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아직 33살, 성장을 거듭할 시간은 충분하다.




<김성현의 브랜드 철학>


라이트맵은 대학생 때부터 써오던 아이디입니다.

밝음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의미로 지었어요.

수많은 별들은 사람들을 의미하고,

지구본을 들고 있는 것은 편견없이 순수하게 사람을 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움은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정신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가진 재능과 마음으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다면,

제가 추구하는 삶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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