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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량 Mar 18. 2023

돈 버는 마인드셋은 따로 있다

벨리움 에스테틱 대표 윤현아 인생소개서



33세 젊은 나이에 월수익 1000만원을 가볍게 넘는 에스테틱 매출상승 컨설턴트 윤현아님!


10대에는 여드름 피부에 첫 월급은 200만원도 안 됐다던 현아님은 어떻게 드라마틱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을까요?


돈 버는 이야기 시작합니다.






1인숍 에스테틱 매출상승 컨설턴트

윤현아 인생소개서



에스테틱 원장님 아니고 연예인이세요? ㅋ



2020년 10월, 운영하던 에스테틱 매출이 바닥을 찍었다. 월수익 100만원.


아이가 돌 지나자마자 남편을 어렵사리 설득해 차린 에스테틱은 6개월이 지나도록 월수익 300만원을 넘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이라고 남편과 시댁 모두 반대했건만, 고집을 피워 차린 에스테틱이 완전한 실패로 판명난 것이다.


남편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배우는 데 돈은 돈대로 쓰고, 늘 말만 앞서고, 결과는 없고.

내 자신이 그토록 한심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난 진짜 안 되는 걸까?’


패배감이 나를 휩쌌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내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왔다.

우연히, 아니 지금 생각하면 운명적인 행운처럼 내 가난하고 찌질한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준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1인숍 에스테틱 매출 상승을 위한 열강중!



여드름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10대


지금 매끈한 내 피부를 보는 이들은 깜짝 놀라겠지만, 중고생 시절 나는 지독한 여드름으로 심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두껍게 화장을 해야만 친구들을 만나고, 맨 얼굴로는 동네 수퍼 가기도 꺼릴 정도였다.

이 지긋지긋한 여드름을 벗어나 깨끗한 피부를 가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명한 피부과와 에스테틱은 다 찾아다녔고 여드름에 좋다는 온갖 화장품과 약을 산 것만도 수 백만원치였다.

그러다가 악성여드름 전문 한의원을 다니며 크게 피부가 개선되었다.


‘여기에 취업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대학생인 나에게 피부에 들이는 비용은 큰 부담이었고, 궁여지책으로 직원이 되면 할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마침 운좋게 TO 한 자리가 나면서 손님이었던 나는 막내 직원이 되었다.

피부 관련 자격증 하나 없었기에 힌의원을 청소하고 손님이 사용한 수건을 빨아 개는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지만, 고객들이 실제 피부가 나아지는 과정을 보는 건 큰 배움이었다.

미어터지는 고객으로 예상했던 것처럼 직원이 치료받을 여유 따위 없었지만 눈앞에서 다양한 임상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여드름이 제일 심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훨씬 더 심한 고객들을 만나고 또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올바른 관리만 한다면 누구나 깨끗한 피부를 가질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욕심 많았던 나는 한의원을 다니며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땄고, 잡일하던 막내부터 코디네이터까지 경험하자 이곳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는 판단이 들었다.

새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길 때였다.


마치 퇴사를 기다렸다는 듯 양산에 처음으로 피부전문병원이 들어서자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피부과는 예상과는 딴 판이었다.

철저히 의사 중심으로 피부관리가 이뤄졌다.

의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최신 기기로 시술을 하고, 관리사는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었다.


1년 반만에 피부과를 그만두고 다음에는 어떤 것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실패를 거듭하다


막 결혼했을 무렵이라 혹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걱정되고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집안에 재정적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어 당시 유행중인 반영구 화장을 배워 창업을 했다.

자금이 넉넉치 않아 숍을 차리진 못하고 집에서 시술을 하니 생각보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손님들이 낮잡아보는 경향이 있는 데다, 나의 사생활이 침범 당하는 느낌도 싫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숍을 차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라 덜컥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핑계로 반영구 화장을 접게 되자 자괴감이 들었다.

어쨌든 호기롭게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고서는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접어버렸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축되었다.


태어난 딸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뻤지만, 집에서 아이만 돌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아, 나는 집에만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뭐든 경험해봐야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고 주부 역할만 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돌이 지나자마자 작심하고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여보, 나 에스테틱 차리면 안 될까?”

“뭐? 지금 코로나 시국에 가게마다 손님 다 줄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어떻게 알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우리 둘만 있을 땐 자기 하나만 벌어도 괜찮았는데, 아이가 생기니까 생각이 달라졌어. 월급만으로는 우리 가족 미래 설계가 안 될 것 같아. 이건 자기도 동의하지?”

“뭐… 아무래도 월급만으로는 넉넉하게 살긴 힘들지.”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1인숍으로 열면 비용도 크게 안 드니까 이번 한번만 더 나 믿어줘!”


눈치가 보여 정작 친정에는 말도 못하고 남편과 시댁을 어렵게 설득해 창업했건만, 기존 에스테틱도 매출이 주는 마당에 신규 에스테틱이 고객을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

온라인 광고도 해보고, 전단지도 만들어보고, 이벤트도 열어봤지만 모두 별 효과가 없었다.

백약이 무효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바닥 더 아래로 떨어지다


밤마다 한숨을 쉬며 피부 관련 유튜브를 보는 데 어느 날 이상한 영상이 떴다.


‘에스테틱 마케팅은 쓰레기다’


뭐야, 이거? 순 사기꾼 아냐? 채널명도 ‘에스테틱 매출상승 연구소’라니, 딱 가벼운 장사치들이 돈 벌게 해주겠다고 하는 류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그 이상한 유튜버가 추천영상으로 계속 떴다.

아, 정말 내 피드에 그만 좀 뜨지.

짜증을 내며 다른 영상을 보려다가 실수로 그만 그 유튜버의 영상을 클릭하고 말았다.


그런데 영상을 보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러분, 착한 건 어떤 거죠?
가격이 싼 거죠.

반대로 나쁜 건?
가격이 비싼 거죠.

보통 가격이 비싸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인간 누구나 내면 깊숙이 최고의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서비스는 어떻죠?
비쌉니다. 네, 비싸요.

여러분, 착한 에스테틱 하다가 망합니다.
나쁜 에스테틱이 되셔야 해요.’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찔렀다. 정신없이 빨려들어가 밤새도록 채널에 있는 모든 동영상을 시청했다.

그리고 곧 오프라인 강의가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하루 100만원이 넘는 강의를 신청했다.


사기꾼한테 넘어간 거 아니냐는 남편의 얘기를 뒤로 한 채, 서울까지 가서 강의를 듣고 왔다.


강의 내용은 에스테틱이 매출을 위해 필요한 것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내 가치를 높여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경영, 심리, 최면, 마케팅, 보이스 트레이닝 등 방대한 내용이었고 머리에 지진이 일었다.

그 분은 ‘코나피딜’이라는 코스메슈티컬 화장품을 제조한 분이었고, 에스테틱을 대상으로 그 화장품의 판매방법까지 알려주셨다.


교육을 받고 돌아오자마자 에스테틱에 있는 기존 제품을 싸그리 치워버렸다.

코나피딜 제품으로 물갈이를 하고 선생님이 알려주신대로 완전히 새로운 영업 방식으로 고객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매출은 더 아래로 떨어졌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정신이 부서질 것 같았다.


파메스테틱 제품



월수익 1000만원의 추월차선


남편은 역시나 사기꾼이 맞다고 속을 긁었다.

그러나 나는 그분에 대한 믿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일단 제품을 사용해봤을 때 감탄할만한 효과를 얻었다.

뭔가 내가 선생님의 교육을 다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판매가 안 된 것 같았다.

기존 에스테틱들이 하던 마케팅 방향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새로운 마케팅을 완전히 이해하고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강의를 듣고 오겠다고 했다.

만약 이번에 강의를 듣고도 매출이 오르지 않으면 에스테틱을 접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를 떼어놓고 1박2일 교육을 들으러 갔던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번에 안 되면 피부관리 일은 아예 손을 떼자.’


비장한 결심을 하고 수업을 들었다.

하루짜리 강의가 1박2일로 늘어나면서 커리큘럼은 훨씬 더 심화돼 있었다.

지난번 강의가 머리에 지진이 날 정도의 충격이었다면, 두번째는 충격을 가라앉힌 채 이것을 내 에스테틱에 어떻게 적용할까 쉬지 않고 뇌를 굴리며 듣게 되었다.


‘다음에 고객이 갑작스럽게 예약할 땐 무조건 내 시간을 조율하는 을의 마인드를 버려야겠어’

‘할인을 요구하는 고객은 나의 고객이 아니야’

‘화장품을 소개할 때는 기능을 설명하지 말고 이걸로 얻을 기대효과를 그리게 해야지!’

‘목소리는 좀더 신뢰감이 가도록 톤을 낮춰야겠어’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하나하나 새롭게 다가왔고, 적용할 행동을 메모장에 빽빽이 적었다.


에스테틱으로 돌아와 배운 바를 고객에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피부관리를 받고 나면 늘 추가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자주 컴플레인 하는 고객 20%는 미련없이 포기했다.

조금이라도 매출을 더 올리기 위해 그런 고객들을 대하고 나면 나 역시 에너지를 소진해 오히려 다른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기 힘들었다.


전에는 이런 일이 비윤리적인 게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고객만 응대하는 것이 최고의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하위 20%의 고객을 거절할 수 있었다.


다음달부터 나의 자신감 있는 태도와 제품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수익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매달 200~300만원씩 수익이 오르더니, 3개월 후 기적처럼 월수익 1000만원을 달성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000만원이라는 수익을 얻은 것이다.


마인드를 바꿔준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고, 무엇보다 드디어 남편에게 노력의 결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윤현아님의 인생 멘토 장윤성님과 함께



두번째 비상


이후 꾸준히 월 1000만원 이상을 벌어들이며 여유가 생기자, 과거의 나처럼 고전하는 에스테틱 원장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거나 매출이 박스권에 갇힌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분들도 마인드를 바꾸면 매출 앞자리가 달라질 텐데.’


더 바닥을 찍었던 내가 할 수 있다면 그분들이라고 못할 리가 없었다.

에스테틱 수익이 안정권에 접어들자, 다시 인생 멘토인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분이 경영하는 ‘파메스테틱’ 브랜드를 통해 전국 에스테틱 원장님들에게 제품 유통과 컨설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나에게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듯, 나도 다른 원장님들을 도와드리고 싶었다.

컨설팅을 통해 다른 원장님들이 실제 수익을 올리는 걸 지켜보자 당사자 만큼이나 기쁘고 뿌듯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게다가 컨설팅이 또다른 파이프라인이 되면서 더 많은 원장님을 도와줄수록 더 많은 부를 얻게 되었다.


‘노력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다’


가슴을 때린 내 좌우명이다. 하고재비라 하고 싶은 것만 많았지 뭐 하나 변변히 성과낸 적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연 1억 이상의 수입을 얻고 당당하게 남편에게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결과로 증명할 것이다.


말로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증명을 통해 실질적으로 원장님들을 돕고 그들의 믿음을 사고 그래서 함께 번영할 것이다.



윤현아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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