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25. vs. 김포 @수원월드컵경기장
날씨가, 축구를 직관하기에 최적인 날이었다. 긴 겨울 동안 이런 날씨만을 기다려왔고 기다린 만큼 더디게 찾아왔다. 반바지와 반팔을 입은 채로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빅버드를 방문했다. 경기장 주변에 돗자리를 펴놓고 휴식하거나 음식을 먹고 있는 수원팬들의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다. 축구가 있는 날은 휴가이자 소풍인 것이다.
김포와 수원은 순위 차이가 큰 편이어서 수월하게 승리할 거란 생각을 가지고 킥오프를 지켜봤다. 스포츠란 그날의 컨디션과 운세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잠시 간과했던 것 같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김포의 슈팅이 골대를 맞혔다. 긴장감이 확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김포는 기본 5백 수비 진영으로 수원의 공격을 차단했다. 틈을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수비 구조였다.
5백과 미드필더와의 적당한 거리를 두던 김포는 수원의 공격이 끊겼을 경우 재빠르게 역습을 펼쳤다. 순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속도가 놀라웠다. 결국 중앙선 부근에서 수원의 공격을 잘라낸 김포는 매끄럽고 빠른 패스를 이어가다가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강한 헤딩슛이 아니었지만 양형모 골키퍼가 손을 댈 수 없는 위치였다. 승리를 확신했던 마음가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반전에 수원이 했던 공격들은 날카롭지 못했다. 만회골을 넣지 못한 채 전반을 마쳤다. 후반전에도 양상은 동일했다. 김포가 수원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정공으로 김포의 수비를 뚫기는 어려워 보였고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원의 동점골은 코너킥 상황에서 터졌다. 세라핌의 헤딩슛을 김포의 골키퍼가 잡긴 했지만 공이 이미 라인을 넘어간 이후에 잡은 것 같았다. 바로 골 선언이 되지 않아 수원팬들은 이게 골인지 아닌지 인지할 수 없었다. 단지 수원 선수들이 공을 가지고 센터서클로 이동 중이라 골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VAR 판독을 통해서 골이 선언되었다. N석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이날의 가장 핫한 순간이 연출되었다. 수원의 코너킥 찬스에서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일류첸코가 두 손을 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미 양 팀 선수들이 수원 골대 앞까지 이동한 상황인데도 일류첸코는 심판을 찾아가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심판은 VAR을 보러 뛰어갔다. 김포 수비수가 일류첸코의 유니폼을 잡아당겨 PK가 선언되었다. 경기장은 다시 함성으로 달아올랐다.
일류첸코의 PK. 기존에 워낙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한 슈팅을 때렸다. 그런데 골망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이 옆으로 흘러나오는 게 보인다. 함성이 아닌 탄식이 공기를 매웠다. 골키퍼의 선방이었다.
그런데 또 경기장이 술렁거린다. 심판 주변에 몇몇 선수들이 몰려갔고 심판은 귀에 손을 갖다 댄다. 관중석에서는 '한 번 더!'라는 외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기대에 부흥하듯 심판은 다시 PK를 선언했다. 앞선 PK에서 키퍼가 먼저 움직인 것 같았다. 모두가 안도했고 일류첸코에 대한 믿음은 복원되었다. 그리고 더 힘차게 때린 슈팅. 이번엔 첫 번째 방향과 다른 오른쪽 방향이었다. 그런데 키퍼도 그곳으로 몸을 날린다. 공이 다시 튀어나왔고 골망은 평온했다.
경기는 그 점수 그대로 무승부로 끝났다. 승점 3점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일류첸코가 PK를 성공시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경기장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너무 쉽게 낙관했다. 승리도 PK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층에서 바라보니 PK를 성공시키는 것이 실패하는 것보다 오히려 확률이 낮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일류첸코를 비난하지 않았다. 감독과 동료들 모두 그를 안아줬고 N석에서는 그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괜찮다는 뜻이다. 이미 그가 가져다준 기쁨들이 더 많았으니 여전히 고맙다는 의미일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좌절감이 크겠지만 죄책감까지 갖지는 말길 바란다. 더 공격적인 플레이로 여느 때처럼의 일류첸코가 되어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