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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Aug 21. 2023

다 걸고 뛰자 끝까지 믿을게

2023.8.18 vs. 제주 @수원월드컵경기장


지난 전주 원정에서 뜻밖의 승점 1점을 얻었다. 물론 3점이 될 수도 있었고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금요일에 열리는 제주와의 홈경기. 우리는 어떤 경기도 기대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 기대는 단순히 승점을 챙겨달라는 주문이 아니다. 끝까지 후회 없이 뛰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제주의 경기는 참 재미가 없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제주 홈구장의 구조 때문인지 내가 시청했던 중계진과 현장 음향의 탓인지 어딘지 모르게 활력이 없는 경기였던 거 같다. 빅버드에 왔으니 시종 긴장되고 에너지 넘치는 한판 벌이고 가기를 원한다. 아주 소수의 제주팬들만 보였지만 그들 마음 안에 품은 세상의 크기는 모두가 똑같으리라.


기대의 축적은 그럴듯한 예감을 만들어낸다. 만세삼창을 할 것 같다는 예감이 생기자 N석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E석 중앙좌석으로 골랐다. 매점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옆자리의 수원팬들이 오늘 왠지 이길 것 같다는 얘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다 점쟁이는 아니지. 그래도 마음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은 손금이나 관상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선발 라인업에 카즈키가 있는지를 제일 먼저 본다. 있다. 든든하다. 경기 전 기도를 올리는 김주찬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측면에서 몇 차례의 침투가 있었으나 위협적이지 못했다. 김주찬과 명준재의 돌파력이 좀 아쉬웠다. 미리 경로를 계획하거나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했어야 하는데 수비수가 근접할 때까지 어떤 결단을 내리지 못해 걸리고 만다.


이기제의 레드카드 판독은 이 경기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순간이었다. VAR을 보고 들어온 주심이 이기제를 향해 달려갈 때는 아, 이거 경기 넘어갔구나 싶었다. 다행히 노란색 카드다. 이게 만약 붉은색이었다면... 끔찍하다.


후반전에는 김경중이 투입되면서 오른쪽 공격에 활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고승범의 볼에 대한 집착은 수비를 공격으로 급전환하는 기회를 몇 차례 만들었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날카로운 크로스와 날렵한 슈팅 등 다채로운 공격을 시도하려는 노력들은 긍정적이었다. 아코스티는 많이 아쉽다. 혹시 입금되야 할 돈이 누락된 게 있는 걸까. 하다마는 듯한 무기력이 느껴졌다.


박대원의 부상으로 불투이스가 들어온다. 지난번 퇴장의 기억으로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감정적으로 플레이하는 모습이 팀에 과연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웠다. 어쨌든 그런 점은 자신도 성찰의 시간을 가졌을 거라고 믿고 싶다.


우측에서 찔러준 크로스가 제주 수비를 맞고 나간다. 코너킥 찬스. 시종 밋밋한 플레이를 보였던 이기제가 준비한다. 왜 카즈키가 아니라 이기제가 차는지 의아해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찬다. 높이가 괜찮다. 푸른 유니폼 하나가 제주 수비들 위로 붕 떠오른다. 골망이 흔들린다. N석이 팔을 뻗친다. 불투이스였다.


1:0 수원의 승리. 홈경기 두 번째 승리다. 3점을 챙기며 다시 꼴찌를 벗어난다. 불투이스 욕했던 거 미안하다. 그런데 대부분 내가 욕을 실컷 하고 나면 갑자기 플레이가 좋아지는 현상이 있다. 만세삼창의 시간이 왔다. 불투이스가 인터뷰를 끝낼 때까지 긴 시간을 모두가 묵묵히 기다린다. N석의 찬란한 풍경을 사진기에 담는다.


내 예감이 맞았다. 이 성공률이 일반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건 안다. 그래도 매번 예감은 찾아온다. 믿음은 선수를 뛰게 만들고 다 걸고 뛰는 자들은 믿음을 두텁게 만들어준다. 팬과 선수들 간의 무언의 소통이다. 팀이 어려울수록 그런 소통은 더욱 긴밀해지고 절실해진다. 강등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번 시즌. 잃는 것만큼 얻는 것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잃는 과정에서 얻고 있는 것들만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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