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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Sep 03. 2023

설마 그렇게 끝날 줄이야

2023.9.2 vs. 서울 @수원월드컵경기장


슈퍼매치라는 단어도 수원의 성적으로 인해 그 긴장도가 많이 희석된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경기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매진된 N석과 추가로 오픈된 구역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예매를 한 사람들은 그날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교통 체증과 날씨를 고려한 뒤 무언가를 가방에 챙기고 적절한 수단을 선택해 빅버드로 출발한다. 나는 주차가 힘들 것 같아서 세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빅버드 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는 더웠지만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하늘이 예쁘게 열려있었다.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시원한 커피도 마실 겸 카페를 찾아봤는데 경기장 앞쪽에는 조그만 규모의 카페밖에 없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이콩이콩이라는 카페가 있었고 안을 들여다보니 빈자리가 있어서 들어갔다. 음..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예쁘고 자리가 편해 보여 좋았다. 수원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심적으로 더 안락함을 느꼈던 것 같다. 읽던 소설책을 끝마치고 몇 가지 메모를 하고 카메라 배터리도 충전했다. 커피맛이 좋았다. 다음에도 내가 앉던 자리가 비어있으면 또 들어가 보리라.


빅버드로 다시 돌아가면서 이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수원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현실은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마음은 이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가득하다. 추락해 버린 팬들의 맨탈을 슈퍼매치 승리 하나로 고양시켜 줄 거라는 믿음이 팬들의 머리 위에 흩뿌려져 있다. 매번 착각이었음에도 응원의 목소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승리의 가능성은 올라갈 것이라 확신하며 일상에서 축구 직관의 우선순위를 높여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N석과 E, W석까지 좌석들이 빽빽이 채워지고 색종이와 비눗방울이 공기를 타고 떠올랐다.


스타팅에 카즈키가 없었다. 어차피 후반전에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기에 카즈키를 그 시간에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전에서 입은 부상이 걱정스러웠던 고승범이 보여서 안도했다. 여전히 튼튼 단단하다. 뮬황은 후반에 투입될 거 같은데 카즈키와의 호흡이 기대된다. 오랜만에 이종성이 선발이다. 전투력을 한 번 믿어 보겠다. 전반적으로 선수 구성이 그다지 나빠보이지 않는다. 진부했던 플레이의 답습과 어이없는 실점만 없다면 해볼 만한 날이다. 온갖 형태의 기대와 걱정이 집약된 함성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건 어떤 종류로 분류해야 할까. 2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일류첸코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선수들은 물론 쳐다보던 관중들도 경기를 위한 시각을 자리잡지 못하고 있던 어수선한 시간이었다. 서울의 패스가 너무 쉽게 페널티박스 안의 공격수에게 전달됐고 김주원의 수비가 불안스러웠고 일류첸코의 터닝슛이 빠르고 정확했다. 골을 먹었는데도 이게 현실이 아닌 것 같고 이건 그냥 해프닝의 일종으로 전체적인 경기의 결과에 큰 영향력은 없을 작은 사건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설마 그 골 하나로 경기가 끝나겠어?


그 골 하나로 경기가 끝났다. 어이가 없다. 하필 그렇게 먹은 골로 승부가 결정 나다니. 그 골 이후의 경기 판세가 나쁘지 않았기에 더욱 아쉬웠다. 특히 후반전에 카즈키가 들어오면서 수원이 거의 경기를 주도했다. 다른 때보다 파이팅 넘치는 카즈키의 움직임이 꽤 인상적이었다. 많은 유효슈팅이 있었지만 골이 터지지 않았다. 서울 골키퍼의 결정적 선방과 골키퍼가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슈팅을 날린 수원의 결점이 혼합되었다. 골망을 흔들었던 고승범의 슈팅은 극적이었으나 그전에 볼을 소유했던 아코스티의 위치가 선을 넘어 있었다.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가 허무하게 종료됐다. 올해 슈퍼매치 3연패를 기록했고 원정석에서는 수원강등을 외치는 소리와 수원이라는 팀과 레전드 선수를 조롱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SNS 댓글에는 수원이 강등되지 않기를 바라는 서울팬도 보였었는데 경기장에는 모두가 한 목소리로 수원의 추락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런 조롱과 쓰라림이 축구의 매력인걸. 원 없이 조롱하고 아파해야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더 어려운 현실 앞에서 증발되지 않을 조롱과 고통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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