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사나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sanasu Oct 02. 2023

피치를 뒤덮은 강등콜

2023.9.30 vs. 인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수원은 연패, 강원은 무패 행진을 이어가면서 강원과의 승점차는 3점으로 벌어진 상태다. 추석 연휴에 벌어지는 인천과의 경기에서도 승점을 얻지 못한다면 실질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강등 가능성이 더욱 짙어지는 상황이다. 수원팬들도 시즌 내내 고개 숙이는 시간이 많아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팀이 진짜 어려울 때 하는 응원이 진정한 응원이라는 생각에 인천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두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도화역에 내렸다. 날씨는 바람이 불어 쌀쌀했지만 축구하기에는 정말 좋은 날씨였다.


염기훈 감독대행의 첫 경기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수순의 대행자가 아닌 상황이라 그 또한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김병수 감독을 그렇게 내보내는 건 시기와 과정을 고려했을 때 적절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그런 결정에 시위하기 위해 원정석의 드레스코드는 상복 색상이었고 결정자들을 비난하는 걸개가 도처에 걸렸다. 안타까운 광경이다. 팬들의 권리이자 의무는 응원인데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에도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게 소모적이고 불합리한 현실 속에 처해있음을 말해준다.


라인업을 보니 그다지 어떤 임팩트를 받진 못했다. 이제는 라인업만 봐도 어떤 식의 축구가 진행될지 예측이 가능해졌고 그런 기억들이 누적되다 보니 라인업에 무관하게 플레이의 양상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전략들이 실패로 귀결되었고 냉정하게 봤을 때 앞으로의 경기도 실패하는 그림일 확률이 높다면 기존에 사용해보지 않았던 파격적인 시도가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다. 악행의 답습에 의한 실패보다는 새로운 시도에 의한 실패 쪽이 실망의 크기를 조금은 줄여주지 않을까.


경기의 뚜껑이 열리자 나는 사실 예상보다는 대등하게 갈 수 있을 거란 인상을 받았다. 전반적인 경기 스타일이 갑자기 바뀔 수는 없는 거지만 패스나 침투가 괜찮은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결정적인 순간의 실수나 비결정적 소극성이 문제였다. 이기제가 요즘 욕을 먹는 이유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오는 실책 때문에 그 외에 잘했던 플레이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기량에서 밀린다면 공을 뺏으려고 하기보다는 길목만 넘겨주지 않고 근접에서 존재하고 있는 게 수비의 정석이다. 무고사에게 PK골을 헌납한 수비의 과정은 그런 정석을 지키지 못한 결과였다.


후반전 막판에 터진 인천의 골도 수원의 백패스 미스가 초래한 결과였다. 앞에도 상대가 있고 뒤에도 상대가 있는데 왜 뒤쪽을 선택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1:1 기량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위축감이 플레이를 소극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백패스를 남발한다. 연습할 때라도 백패스 금지 원칙을 걸어놓고 위축감을 극복하는 훈련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골 점유율이 아무리 높은 들 상대팀 골대에 근접하지 않는 골 터치는 아무런 위협을 주지 못한다.


경기도 0:2 패배로 끝났다. 수원이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도 몇 차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기량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 게임이었다. 수비 두세 명을 끌고 다니며 잉여 공간을 만들어내는 선수가 없다면 이 팀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김주찬, 전진우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사기가 땅에 떨어져 보인다. 그나마 카즈키와 고승범이 있기에 팬들은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고 암울한 상황이다. 고착화된 실패가 사기를 불어넣어 줄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한다. 이제는 전략보다 운에 더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인천의 승리가 확정되자 인천 응원석에는 수원을 조롱하는 무수한 걸개가 걸렸고 수원 강등을 외쳤다. E석, W석에서도 거의 모든 관중들이 강등 콜에 동참했다. 상대팀을 조롱하고 심지어 욕을 하는 행동들은 축구가 가진 특유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보인 조롱의 정도는 보편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그런 행동을 일삼은 소수의 실행자 본인들은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더 큰 자극을 꽂아주기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을 테다. 과거에 수원 서포터에게 당했던 시간들에 대한 복수라고 정당화시키고 있지만 받은 걸 되돌려준다고 해서 그 악행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조롱의 문화는 축구의 맛을 진하게 달궈주는 하나의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로 마지막 선을 넘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건 인천팬이든 수원팬이든 그 어느 팬에게든 마찬가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따위로 축구하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