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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Feb 18. 2024

어디다 몸을 둘 것인가

투르게네프 <둥지도 없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던 한 마리 새는 그대로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 일단 날아오른다.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죽음으로 연결될 것 같은 지금의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를 보니 사막이다. 그곳에서도 죽음의 냄새가 난다. 사막을 벗어나니 바다가 보인다. 생명이 있는 존재가 늘 그러듯이 바다에는 물결이 요동치지만 새가 의지할 안식처는 없다. 죽음의 사막과 다를 바 없다.


이제 새는 아래가 아니라 위로 날아볼까 고민한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끝없는 허공만 가득하다. 여전히 머물 곳이 보이지 않는다. 비로소 새는 날개를 접는다. 능동적인 동력을 포기했을 때 자연이 이끄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맡긴다. 어디에도 안식처가 없다면 바다가 삼키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바다는 새를 삼키고 그것이 생명의 양분인 양 철썩이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새를 바라보던 화자는 자신도 그 새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음을 안다. 역시나 몸을 둘 곳 없는 화자는 새를 따라서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공포를 느낀다. 새가 유일하게 머물러 있을 수 있었던 나뭇가지, 그리고 화자의 육체가 딛고 있는 땅. 함께 있는 존재가 없다면 그곳은 죽음의 장소가 된다. 외로움은 죽음보다도 거대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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