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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Mar 12. 2024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된 남자

슈테판 츠바이크 <연민>


남자가 불어넣었던 건 연민인데 여자의 몸에서는 그것을 사랑이라 반응한다. 이 또한 적절한 말이 아니다. 반응이라 함은 어느 정도 자발성을 지녀야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제멋대로 발아하고 성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치를 내릴 때 벌어지는 현상처럼 이전의 세계는 사라지고 잊혀진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다. 진입의 정도로 미루어볼 때 그것은 비자발적 투신이다.


연민은 생활 속 감정의 일부이지만 사랑은 다른 것에 소속되거나 종속됨이 없는 그 자체로 하나뿐인 세계가 된다. 이기적인 줄 모르는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 감정에 지배된다. 오직 그 사랑을 창조한 대상에만 몰입한다. 그 사람만이 숨을 쉬게 하는 공기이고 육체를 살아있게 만드는 혈액이다. 그러나, 단지 연민뿐이었던, 여자의 세계에 진입하지 않은 남자로서는 거대한 세계의 접근에 겁을 먹을 수밖에.


그러면 이런 대치 상황에 대해 남자에게는 죄가 있는가. 현대 사회의 사건들을 보면 연민을 가진 사람 하나가 없어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겨나는 마당에 한 여인을 향한 연민을 실천했다고 해서 그에게 죄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죄는 연민이 아니라, 연민이 사랑으로 확대됐음을 알고서도 그것을 바로잡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저토록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여인이 눈앞에 있을 때 과연 그것을 정정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생명이 걸린 여인에게 공기를 끊고 혈액을 멈출 수 있을까.




연민과 사랑, 그것은 둘 다 지극히 순수한 감정이다.

그녀와 그가 만났다는 것, 그것이 비극의 원천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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