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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사나수

객석과 무대의 좁혀지지 않는 퍼포먼스 퀄리티

2025.3.15. vs. 충남아산 @수원월드컵경기장

by nasanasu


드디어 빅버드로 돌아왔다.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는 깃발이 경기장 주변 곳곳에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따뜻한 기온에 비해서 바람이 너무 매섭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경기 시간에 다가갈수록 더 많아지는 팬들과 그만큼 활기차게 변해가는 빅버드의 풍경이 마음을 따뜻하게 긴장시켜 주었다.

N석의 특별 퍼포먼스가 예고되어 있어서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지 무척 기대됐다. 좌석별로 카드가 놓여 있거나 준비물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증은 더 커져갔다. 그리고 선수입장의 순서에서 N석 중앙에 커다란 천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선 누가 봐도 이건희 회장인 얼굴이 천의 구김을 펴고 드러났다. 이어서 양 옆에서도 커다란 천이 순차적으로 펼쳐졌다. 30년 수원 축구의 증인들이 그 안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감동의 물결이란 그런 것이다. N석의 팬들은 오히려 제대로 보지 못하는 풍경을 그저 밑에서 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수원팬들이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진실이라 말하면 너무 슬프니 불편한 사례라고 하자. 경기 전의 행사가 풍부할수록 경기의 결과는 풍족하지 않았다는 기록들이다. 그래도 이번은 다르니까,라고 매번 새로운 기대를 한다. 오랜만의 빅버드 복귀니까, 최근의 2연패를 만회할 차례니까, 작년에도 홈개막전에서 이긴 상대였으니까, 등등.

슬픈 예감은 맞을 확률이 많다는 게 수원의 특징이다. 전반전 수차례의 찬스에서 역시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산의 수비는 촘촘해서 그걸 뚫고 전진하는 데 애를 먹었고, 어쩌다가 그 선을 넘어 골대 앞까지 도달하면 수비에 걸리거나 골키퍼에 걸리거나 관중석을 향하는 슈팅으로 귀결되었다. 전반전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답답한 탄성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후반전은 더 안타까웠다. 허를 찌르는 패스는 보기가 힘들었고 수비가 예상 가능한 경로에 볼의 궤적이 형성되었다. 후방에서 볼을 잡으면 줄 곳이 없었다. 패스 타이밍이 동기화되지 못했다. 수차례 공격의 진로를 변경하고 여의치 않아 백패스를 하고 시간은 흐르고 어쩔 수 없이 띄운 공은 위력이 없었다.

인져리 타임 때 일류첸코의 침투 과정에서 반칙성 플레이가 나왔으나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뒤늦게 VAR 판독까지 이루어졌지만 주심의 손은 한 곳을 가리키는 모양이 아니라 두 손을 수평으로 그으며 많은 이들의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경기는 그렇게 끝나겠구나 직감했고 그렇게 끝났다. 0:0 무승부.

스포츠를 보는 이유에는 불확실성이 있긴 하지만 최근 수원의 축구는 그 불확실성이 선을 넘어 확실한 경지에까지 이른 듯하다. 전략이라는 것을 가지고 킥오프를 맞이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감독은 언제나 믿음직한 발언으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그 말과 경기의 모양새는 일치하지 않았다.

올시즌 처음으로 관중석에서 야유가 들리기 시작했다. 매우 이른 시점의 불만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에게 골을 보여달라는, 정신 차려 수원!이라는 뼈 있는 응원가를 들으며 선수들은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수원의 선수였던 사람들이 몇 명 안 된다. 새로운 얼굴이 너무 많아 내가 알던 수원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뭔가 흐트러지고 와해될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승점 3점 외의 다른 말은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수원은 지금, 다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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