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의 May 03. 2024

9. 도랑물이나 보다가 바다를 보고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칠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온 조선 사신단은 연경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다. 꼬박꼬박 날짜와 날씨를 기록하던 기행문 열하일기가 8월 1일자에는 더는 기행문이 아니다. 삼천포로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별개의 글이 된다. 연암은 청나라 국경 지역 책문에서 한번 문화충격을 받아 되돌아갈까, 하는 충동을 느꼈었다. 그런데 정작 북경에 도착했어도 중국 선비들을 만나는 것이 여의치 않으니, 자금성의 문, 조양문께에서 한번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도랑물이나 보다가 바다를 보고 넋이 빠진, 서울에 온 촌놈, 우물 안 개구리, 제국 변방의 구석에 웅크려 앉아 말로만 북벌 의지에 불탄다 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아는, 자칭 삼류선비 연암의 기개와 자괴감이, 읽는 이로서는 미안하지만, 그렇지, 이래야 연암이지, 싶다.      


  문자의 역사는 약 6,000년으로 인류 역사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문자가 생기기 이전의 연도와 나라의 도읍지는 살필 수 없다>며 연암은 말을 시작한다. 문자가 생긴 이래, 중국 왕조 스물하나의 임금들은 정밀하고 전일(專一)한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렸다. 예를 들자면 성군인 요, 순 임금과 홍수를 잡은 우임금, 정전법의 주공과 학문의 공자, 그리고 세금을 잘 걷은 관중이 있다. 나도 요, 순, 우 임금은 자주 들어봤다. 하지만 정전법은 주로 한국사에서 들었고 주공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줄은 관심 밖이었다. 소싯적에는 세계사 좀 안다던 내가 이렇게 됐다. 읽고 배울 책은 많고 읽을 시간과 건강은 갈수록 적어지니 어쩔 것이냐. 탄식은 연암만이 아니라 내가 해야할 일이겠다.   

    

  연암에 의하면 궁궐과 누대를 옥으로 꾸민 걸주임금과 만리장성을 쌓은 몽염 장군, 직선도로를 닦은 진시황과 법제도를 통일한 상앙 등은 불명예를 뒤집어썼다는것이다. 그들이 문자가 나온 이후 태어났기 때문이다. 후대 임금들은 겉으로는 그들을 배척하면서 그 업적은 몰래 본받았다. 걸, 주 임금의 옥 장식 궁궐은 왕궁의 본보기가 되어 전국시대 육국(六國)의 왕궁이 되고 진시황 아방궁의 밑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항우가 아방궁을 불태워 없앤 것은, 토목공사의 위험을 경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이 차지할까 봐 염려한 탓이다. 항우를, 좀 어리석은 면이 있으나 그래도 때를 못 만난 비운의 영웅이라고 여겼는데 이 말을 들으니까 확 깬다. 남자가 쪼잔하기는! 백성들 고생 안 하게 놔둬주면 좀 어때서!     


  조양문에 들어온 연암은 ‘알겠다’고 한다. 통치자가 성군이든 폭군이든 그 마음 씀씀이는 똑같더라는 것이다. 성인이 통일시켜놓은 법 제도와 도량형을 걸, 주임금이 따랐으며 주공의 측량법을 진시황이 사용했다. 엄청난 인원을 우임금은 홍수를 다스리느라, 몽염은 만리장성을 짓느라 동원했던 것뿐이다. 뼈를 갈아 넣어 성을 쌓은 민초들의 원한은 온데간데없이 달나라에서도 보인다는 이 어마어마한 장성은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관광사업으로 돈벌이가 되어준다. 내가 굳이 비틀어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임금이 선정(善政)을 베푼 임금으로 추앙받는 것은 우임금 시대에 문자가 발명되지 않아 당시의 불평불만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시대를 잘 만난 것뿐이다.       


  공자가 가르친 통치법을, 후대 임금들은 즉시 실행하고 오랑캐마저도 제 것으로 삼았다. 그러니 부국강병만을 추구했다고 해서 꼭 사리사욕을 지닌 빌런인 것만은 아니지 않느냐, 그들은 오랑캐의 것이라도 가져다 쓰고 유정유일의 마음씨를 스승으로 삼았으니, 걸, 주임금, 몽염과 진시황 그리고 상앙이 지금 중국의 위대함을 만든 거 아니냐, 중국의 왕조 스물하나가 이룩한 법 제도를 그들에게서 볼 수 있다고 성군과 폭군의 경계를 느슨하게 뒤섞어 버린다. 이렇게 중국의 빌런들을 한껏 추켜세우고 나더니 그는 곧장 속내를 털어놓는다. 청나라를 소개한 것이다. 살얼음 위를 용케도 잘 걸어온 자의반 타의반 친청(親淸)파 연암의 말에 의하면,   

   

  청나라 수도 연경의 성 둘레는 40리이고 왼쪽에 바다, 오른쪽에 태항산, 북으로는 거용관, 남으로는 황하와 제수가 있다. 외성에 문이 일곱이고 자금성에 문이 셋이다. 궁성의 둘레는 17리이고 문은 넷이다. 정전 앞 태화전에는 한 사람이 살고 있다. 성은 애신각라이고 종족은 여진족 만주부이다. 직위는 천자이고 호칭은 황제다. 그의 직분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는 4대째 왕이요 연호는 건륭이다. 멸망한 명나라 연호 대신, 건륭 45년(1780)이라고, 청나라 연호를 드러내어 쓴다. 명나라 멸망 백 년 후에도 여전히 명나라의 연호를 쓰던 조선 선비들은 두고두고 연암을 비난한다. 본인도 미리 각오한 바일 것이다. 할 말은 하는 선비, 연암, 좀 멋있다.    

   

  그렇게 연암은 탄식한다. (주로 문루에 올라 탄식을 한다) 천하에 정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여한이 없으리라고. 나는 안타깝게도 여기 내가 있어 그대를 조금이나마 알아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글로나마 김혈조의 『열하일기1』과 한국고전번역원의 『쉽게 읽는 열하일기1』 두 권을 나란히 놔두고 비교하여 읽으며 컴퓨터와 카톡, 그리고 공책에 필사하고 있다. 시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나의 시대도 그대의 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이 어제 떠오른 해가 오늘 다시 뜬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바뀌기를 등 떠밀려 강요당하는 시대요, 행과 동시에 행간까지 읽어야 하고 말한 것과 말 안 한 것을 동시에 파악하며 걸어가야 하는 숨가쁜 시대다.      


  어쨌든 연암은 금방 기분을 바꾼다. MBTI의 E요, 누구라도 여행에 데려가고 싶고 어떤 여행에든 따라나설 법한 유쾌한 길동무인 그의 눈을 나의 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와 어항 안의 금붕어를 자처하는 나도 내 우물 내지는 어항의 지평을 넓히는 모험을 감히 무릅쓰리라. 연암은 여행 내내 벗들을 떠올리고 그 벗들이 여기저기에 벗 삼은 중국인 벗들을 조우하고 노소를 막론하고 한족과 만주족을 막론하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골동품의 짝퉁 감별법까지 배우며 벗을 만드는 수고를 무릅쓴다. 읽으며 따라가고 있던 나도 탄식이 나온다. 18세기 조선이 연암을 담기에 너무 좁았던 것처럼 21세기의 대한민국도 우리 시대의 연암을 담기에 너무 좁지 않으냐고.

작가의 이전글 2. 목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