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미의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다. 한 배에서 나와도, 하나는 가만히 안겨 있고, 또 하나는 곧장 바둥거린다. 둘 다 안는 것과 안기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을 터이지만 안겼다는 포근함을 넉넉히 느껴야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번 안겼으면 됐어, 나 열체질이야’ 라고 말하듯 곧장 빠져나가려는 아이가 있다. 연암은 두번째 아이다. 왕의 품 안에서조차 바둥거리며 벗어나 뺑소니치는 성정의 소유자다. 그렇게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에게도 세 번쯤은 결정 장애가 온 것을 나는 발견했다. (내가 못 본 몇 번이 더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엇이 상남자로 하여금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게 만들었을까?
그 첫 번째가 청나라 국경인 책문에서다. 조선사신단은 책문 앞에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연암은 책문 안쪽을 유심히 관찰한다. 되돌아가고픈 충동이 강렬하게 솟는다. 현대인이라면 핸드폰부터 꺼내 들었겠지만, 연암은 하릴없이 두리번거리고 있어야 한다. 나도 여행하다가 일행이 체험에 참여하는 동안 혼자 있어 본 적이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아무나 붙잡아 말을 건네고 경상도 어디에서 왔느니, 누구랑 무슨 일로 왔느니 등등 담소를 했다. MBTI의 I인 나로서는 견딜만한 일이었지만 E인 연암이라면, 몸부림이 났어도 여러 번 났을 날 법한 일이다.
연암은 홀연히 기가 꺾여 여기서 바로 되돌아 갈까, 하고 온몸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리고 긴 워밍업이 가져온 갑갑증은 자신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 보게 한다. 이 격한 감정은 바로 시기 질투다. 이미 여러 번 부러워하고 시샘하고 질투하는 것을 마음에서 끊었다. 그런데 지금 남의 국경에 한번 발을 들여놓고 본 것이라곤 만분의 일에 지나지 않은 터에 망령된 생각이 솟다니, 견문이 좁은 탓이다. 결국 자신의 단점은 찾아내지만 견문의 부족에서 비롯한 감정은 어떻게 수신(修身)을 하느냐, 방법이 없다. 그는 결국 석가여래의 눈을 빌린다. 석가여래의 밝은 눈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본다면 다 평등할 것이요, 만사가 평등하다면 투기나 부러움도 없으리라. 첫번째 결정장애의 순간은 불교의 가르침으로 돌파한다.
두 번째가 열하로 가느냐 마느냐 이다. 청나라의 황제들은 여름이면 북쪽을 넘나들며 사냥하다가 열하에서 쉬었다. 따라서 열하에 있는 궁전도 이름이 피서산장(避暑山莊)이다. 황제가 열하에 와있으니 1780년 8월에 조선사신단이 도착한 수도 연경에는 있을 리가 없다. 남의 나라 황제가 칠순(七旬)을 맞이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더구나 명도 아닌 청의 황제를 무엇 때문에 축하하고 싶으리. 영명한 우리 임금이 신의 한 수를 두어, 별도의 조공을 보내어 온 걸음이다. 전례가 없느니 만큼 보고서만 달랑 올리고 조선사신단은 시내 관광을 즐긴다. 그동안 황제는 자기 나라의 예부 관리들에게 격노하여 감봉 처분을 명한다. 조선사신단을 열하로 보낼 것인지 여부를 물어봤어야 하짆아! 당장 열하로 보내!
조선사신단은 인원을 줄여 당장 출발해야 한다. 열하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연암의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은 여독이 안 풀렸다. 또 열하에 가면 몇 년을 기다려온 연경 유람을 놓칠 수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여기 있는데, 말도 사람도 기진맥진한 채로 알도 못하는 곳으로 달려야 하다니, 두번째 결정장애의 순간이다. 정사가 설득한다. ‘열하 여행은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이니, 귀국하여 열하가 어떻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터인가? 북경은 아무나 오지만, 열하는 천 년에 한번 만나는 좋은 기회이니 가야 하네.’ 연암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그렇게 간 열하는 연암의 책 제목이자, 평생 쓴 글자 50만 자 중에서 20만 자가 쓰인 '벽돌책'이 된다. 여인들을 위해 한글 버전도 나왔으니, 입소문만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세 번째는 말을 틀 것인가? 열하의 피서산장 궁궐 밖에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연암은 인파를 헤치고 득룡(조선인 통역)에게 다가간다. 득룡은 늙은 몽고왕과 양손을 붙잡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연암은 득룡과 함께 건장한 다른 몽고왕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 몽고왕은 뭘 묻고는 대답도 안 듣고 가버린다. 득룡은 사람들과 두루 인사를 튼다. 득룡이 한번 읍하고 말을 걸면, 모두 읍으로 답례하며 인사를 나눈다. 서양의 파티처럼 와글와글 들뜷는 사람들 틈새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인삿말을 건네고 자기를 소개하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 그 다음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며 더 많은 사람을 접해야 한다. 득룡은 연암에게 몽고어 인삿말과 자기 이름 소개하는 법을 알려주며 해보라고 권한다.
득룡이 늙은 몽고왕에게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인상적이었다. 역시 언어의 능력자다. 노인에게 먼저 말을 걸어줘야 한다. 해외여행을 할 때 영어회화를 연습할 상대가 필요하다고 하자. 공원으로 가면 된다. 노인들은 하루종일 볕 바라기를 하며 자기들끼리 혹은 오롯이 혼자 앉아 있다. 외국인 젊은이가 말을 건네주면 신기해서라도 서너 시간을 함께 해준다. 서로 가족 이야기를 나누며 놀아줘서 고맙다고 자그마한 기념품을 쥐어주면 마무리까지 무난하다. 인파 속에서 무슨 깊은 대화를 나누겠는가. 그냥 인삿말이면 된다. 연암을 보고 득룡은, 이 양반은 다른 양반들과 달리 호기심도 많고 좀 트인 데가 있으니 이것도 시켜보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연암은 실내 모임에 익숙하고 말이 아닌 글로 소통하는 게 훨씬 낫다. 득룡이 알려주는 생활 몽고어 어휘들이 생삽(生澀)하다(=껄끄럽고 어색하다) 세 번째 결정 장애의 순간이다. 한밤중에 초면의 젊은 상인들과는 먹고 마시며 필담을 나누고 애틋한 이별을 했으니 만큼, 더 열 것이 없을 만큼 다 열린 줄 알았던 그 연암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처음 본 몽고왕에게 다가가 손을 맞잡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다. 하인인 득룡은 해도, 양반인 연암은 못 한다. 붓으로는 얼마든지 자웅을 겨룰 채비를 갖추고 심지어 서양선교사도 만날 작정이었건만, 유독 몽고족만은 선택지에 없었다. 아마도 이 순간 연암은 자기가 비판해 마지않던 다른 조선 선비들의 엉거주춤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표정을 지은 채로 숙소로 돌아간다.
연암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그 생삽한 어휘로 몽고왕들과 통성명을 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나라 역사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외교 문제가 터져 속이 터질 때면 생각한다.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더라도 연암의 그 한걸음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우물이 한 뼘은 더 커졌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더 커진 우물은 더 커진 개구리들의 넉넉한 보금자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우리가 그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에 무등을 타고 올라 멀리 바라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그 정신과 사상을 이어받은 후손이기 때문이다. 연암의 키만큼 커진 내가 오늘은 연암의 눈을 빌려 세상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