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2) 남의 국경에 발을 한번 들여놓고

by 정영의

남북한의 경계는 삼팔선입니다. 땅바닥에 그어놓은 선 이쪽이 남한이고 저쪽이 북한이지요. 『열하일기』의 시대에 조선과 중국과의 경계는 책문이었어요. 나무를 짜개어 대략 만들어놓고 그 나무 위에 이엉을 덮고 널빤지 문짝을 굳게 걸어 잠근 것이 전부인 허술한 국경이었답니다. 저절로 숨이 넘어갈 듯 삼엄하게 경계를 하는 판문점이 낯익은 내 눈에는 국경 같지도 않은 국경이었어요. 텔레비전에서 한번 봤던, 선 하나만 냉큼 넘어오고 넘어가는 날이 얼른 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기나긴 통관 절차를 기다리며 연암의 눈은 책문 안쪽을 더듬고 있어요. 민가의 대들보와 지붕과 등마루, 대문과 창문을 연신 살핍니다. 길거리와 담장, 진열된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촌티가 나지 않는 것이, ‘책문의 규모가 크고 기술은 세밀하네요’(홍대용). 연경을 보기도 전에, 오지 벽지부터 이러냐, 하고 기가 확 꺾입니다. 온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여기서 바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질투심이에요. 평생에 무엇을 시기 질투한 적이 없는데, 얼마나 큰맘 먹고 나선 길인데 돌아가고 싶어져요? 경우의 수를 얼마나 많이 예측하고 상상했지만, 스스로 돌아가고 싶어지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남의 국경에 한번 발을 들여놓고, 본 것은 만분의 일인 터에 왜 이렇게 망령된 생각이 치솟는 걸까요?’ 연암은 스스로 견문이 좁다고 탓하며 반성합니다. 시기 질투의 원인을 즉시 짚어내는 것이 역시 수신에 도가 튼 선비답네요. 한반도의 지역은 죄다 밟아봤을 법한 연암입니다. 서쪽으로 평양과 묘향산, 남쪽으로 속리산과 가야산, 화양동과 단양에 발길이 다 닿았지요. 1765년 가을 스물아홉 살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여행 동무(?)를 급구(急求)한 것도 금강산 유람을 가기 위해서였어요. 어린 여종에게 골목에서 외치도록 했다지요. “우리 집 작은 서방님 이불짐과 책상자를 지고 금강산에 따라갈 사람 없나요?” 라고요.

그렇게 많이 돌아다녔어도, 타 문화와의 조우는 항상 강렬한 충격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버스를 타고 뉴욕 거리를 통과하던 한국인이라면 스스로 묻게 되어 있지요.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건물이 없을까?”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누추한 시골집을 뜯어고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우리 촌사람들에게 이백 년 전에 이렇게 멋진 건물을 지어낸 미국인이 하늘처럼 우러러 보입니다. 단단히 벼르고 섰지만, 어쩔 수 없이 어리바리한 촌사람일 뿐인 자신을 의식하며 연암은 책문 앞에서, 나는 뉴욕 거리에서 시기 질투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자, 어떻게 이 순간을 돌파할까요? 연암은 ‘석가여래의 밝은 눈’을 떠올립니다.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본다면 모두 평등할 것입니다. 모두 평등하니 투기나 부러움도 없겠지요.’ 이렇게 바뀌는 연암의 사유를 따라가다가 말고 나는 피식 웃었어요. 유학의 원조인 중국에 들어가는 마당에, 선비라면서도 유학으로 수신(修身)이 안 되면 어쩐다는 겁니까? 유학으로는 중국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 뭐니 뭐니해도 자기의 눈높이에 맞추는 건 석가의 말씀이라며 연암은 기어이 부처를 들먹입니다. 지성은 유학으로, 감성은 불학(佛學)으로 다스린 조선 선비의 민낯입니다.

드디어 책문이 활짝 열렸어요. 일단 한걸음 들어서면 이제 중국 땅입니다. 연암은 착잡한 심정으로 동쪽을 향해 한참을 서 있습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책문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렇게 숨을 고르고 각오를 다졌어도 책문 안의 민가(民家) 이삼십 호가 저절로 찬탄을 부릅니다. 술집에는 넉 냥짜리 술잔이 있고 점포는 반듯하게 진열되고 짐승의 우리에도 법도가 있고 장작더미나 거름 구덩이도 정밀하고, 벽돌 우물과 두레박, 비석도 근사합니다. 궁벽한 촌구석이 이렇게 화려한데 중국의 집 짓는 제도는 어느 지역이나 다 같다네요. 그러면 수도인 연경도 이보다 더 낫지 않다는 말이지요!

역관-궁벽한 변방 촌구석에 뭐 볼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연암-비록 황성에 가더라도 꼭 이보다 낫지만은 않을 걸요

역관-그렇습니다. 크기나 화려한 정도야 다르겠지만 규모는 대부분 같습니다.

청나라의 문물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봐버리고 말았네요. 되놈의 나라로부터조차 본받을 것을 샅샅이 잡아내는 연암의 예리한 안목과 단단한 의지도 대단합니다만. 그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그 이면의 숨겨진 힘은 얼마나 될까요! 말로만 듣던 그 <이용후생정덕>을 연암은 비로소 실감합니다. 아하, 제도가 이렇게 된 뒤라야만 비로소 이용(利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용을 한 뒤라야 후생(厚生)을 할 수 있고 후생을 한 뒤라야 정덕(定德)을 할 수 있겠다. 쓰임을 능히 이롭게 하지 못하고 삶을 두텁게 하기란 드문 경우이다. 사람이 이미 스스로 두텁게 하기에 부족하다면 또한 어찌 자신의 덕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여행하며 나도 질투를 느꼈습니다. 이 나라는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받아 누리면서도 왜 이렇게밖에 못 하냐고요. 나는 지금 연암의 밝은 눈을 빌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열린 마음이라든가, 낯선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관대한 마음이라든가 불편한 규칙들을 느긋하게 지키는 마음가짐처럼 몇 개는 챙겨 가야겠군요. 큰 나라의 문물은 큰 나라에서나 효율적이라 뱁새는 황새를 쫓아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답니다. 보면 볼수록 허천이 나기 일쑤이지만 우리나라도 예전보다는 수준이 높아졌어요.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많아요. 그러므로 이용후생정덕이란, 남의 국경에 발을 한번 들여놔야 비로소 보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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