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3) 별빛과 술과 이슬에 붓을 적셔

by 정영의


창대는 8월 5일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말발굽에 밟힌 발이 퉁퉁 부었어요. 열하에 빨리 갈 생각 밖에는, 아니 만리장성에 빨리 갈 생각밖에는 없던 연암입니다. 창대가 아파 죽겠다고 신음을 하니 연암의 첫 반응이 ‘견마잡이가 없어 낭패’라는 겁니다. 연암이 승마를 못하는 게 아니라 말을 탈 줄 압니다. 그래도 양반이란 견마잡이가 없이 말을 타면 안 되는 신분이기 때문에 낭패라는 생각부터 들고,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그 생각부터 들었다고 써둬야 뒤탈이 없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습니다.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는 애를 중도에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기어서 따라오라고 합니다. 중도에 떨어뜨려 놨구만, 뭐. 잔인하기 짝이 없다고 본인도 인정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에 비긴다면 연암도 자기의 말에 창대를 태웠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을 섬기는 일정에 쫓겨 강도 피해자를 그냥 지나쳐 버린제사장처럼,황제의 만수절에 대야 하는 연암도 창대를 돌보느라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아픈 창대가 맨몸으로 이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구나, 라고 의식하며 손수 고삐를 잡는 것이 고작이지요.

오르막길이 많아지고 물결이 더욱 사나워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 맘대로 뭘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연암은 정사와 함께 가마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연암은 더 찾지 않고 창대는 부사의 가마에 매달려 울고 서장관에게도 호소합니다. 그러니 얼마 있지 않아 고북하에 도착한 부사와 서장관이 창대의 딱한 꼴을 이미 도착해있는 연암에게 전합니다. 그 창대가 엉금엉금 기어 나타나는데, 중간에 말을 얻어 탔답니다. 남도 도와주는데 주인된 도리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연암이 지갑을 엽니다. 동전 200냥과 청심환 다섯 알을 주고 나귀를 세내어 태워줍니다. 치유는 역시 금융 치유가 최고입니다.

연암이 서둘렀던 것에는 황제의 생신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만리장성의 성벽에 글씨를 새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글씨를 새기려고 마음먹고 왔어요. 연암은 먼저 칼을 뽑아 벽돌에 낀 이끼를 긁어냅니다. 필통에서 필기도구를 꺼냅니다. 먹을 갈려고 하는데 둘러봐도 물이 안 보이네요. 아까 남겨 놓은 술을 벼루에 쏟아붓습니다. 연암이 먹을 가는 벼루에 반짝이는 별빛이 내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찬 이슬이 이어 내립니다. 술과 이슬, 별빛으로 된 먹물에 연암은 붓을 적셔 글씨를 씁니다. 글씨란 먹물 또는 잉크, 심지어 피(blood)로도 쓰지만, 별빛과 술과 이슬로 쓴 글씨는 과연 어떠했을까요? 한번 따라 해보고픈 멋진 체험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연암이 그 우아한 취미생활을 하는 대신 창대를 좀 더 잘 돌볼 수는 없었을까요? 예컨대, 나의 친정엄마는 우표수집을 하셨어요. 빠듯한 살림에 엄마는 자기만을 위해 돈을 썼습니다. 이 유일한 사치가 공감을 얻었을까요? 천만에요. 돈이 없다면서도 쓰지도 않는 우표는 정성껏 산다고 뒷소리만 들었답니다. 엄마란 존재는 우표가 아니라 자식에게 돈을 써야 했습니다. 만일 연암이 창대를 잘 돌보았더라면 아랫것에게 너그럽게 굴면 버릇이 나빠지느니, 니가 그러면 우리가 뭐가 되냐. 하며 양빈사회에서 뒷담화가 무성했을 거에요. 문화란 이런 겁니다. 때로는 착한 사람도 무참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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