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4)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by 정영의

열하에 가까워지니 황제에게 바치는 공물들이 줄지어 달리네요. 수레·말·낙타 등이 밤낮으로 달려 바퀴 소리가 비바람 치듯 합니다. 창대는 나귀를 타고 있습니다. 연암이 세 내준 나귀입니다. 주인의 말고삐를 잡고 걸어야 할 처지에 손수 나귀를 몰고 가다니요. 기분이 황홀하고 뿌듯한 한편 견마잡이 없이 말을 타야 하는 연암이 안 잊힙니다. 그런데 노새는 구간이 정해져 있어요. 연암은 정사와 함께 먼저 갔거든요. 추가 요금을 내줄 자가 안 보이니 창대를 내려놓은 노새는 그냥 가버립니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창대는 통곡을 합니다

울어라, 울어.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는 법이란다. 창대의 아픈 눈물에서, 그의 선조 정충신이 떠오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그의 선조인 정충신은 17세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자원입대를 했는데, 병사들 중에서도 왜군의 포위망을 뚫고 임무를 완수하는 일을 자진하여 무릅씁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한 결과 그는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도 고위공직자에까지 신분 상승을 합니다. 그 어르신의 후예인 만큼 창대도 살아남아야지요. 피투성이가 되어 발버둥치면서라도 살아야 합니다.(에스겔서 16:6) 삶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만큼은 그 할아비의 그 손자입니다.

창대의 울음소리는 부사와 서장관의 행렬이 다가오자 더 커집니다. 그들의 마음이 뭉클하니 측은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안쓰러우면서도 누구의 마음에도 자기의 말을 내줄까, 하는 생각은 추호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뭣이 중헌디? 나랏일이 중허지. 황제의 만수절 이전에 열하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수레에나 태워주면 어떨까, 생각하고 “수레에 태울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방 담당자는 ‘아니’라고 칼같이 자릅니다.

출발할 때부터 최소한의 인원과 최소한의 물품으로 딱 맞췄습니다. 여유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없다니 어쩌겠습니까? 그냥 민망하게 여기며 지나갈 뿐입니다. 먹을 거라도 좀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겠지만,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여름 여행입니다. 변변히 줄 게 없어요. 인심이 후하다고 해도, 인심은 곳간에서 나는 법이거든요. 조선에서라면 어떻게라도 했겠지만, 낯선 객지에서는 다들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네요. 장복이라면 창대를 업고라도 갔을까요? 그 장복이도 멀리 있으니 창대는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청나라 제독 일행이 다가오자 창대는 더더욱 서럽게 울부짖습니다. 제독이 보더니 말에서 내려 손수 창대를 위로합니다. 말이 안 통해도 위로인 건 창대도 압니다. 제독은 지나가는 수레를 불러세워 돈을 주고 창대를 태웁니다. 음식을 손수 권하고 수레와 노새를 바꿔 주며 '먼저 타고 가서 공자를 따르라’고 해줍니다. 국경을 넘어선 인간애를 보여준 제독 덕분에, 피투성이가 되었어도 창대는 살아남았습니다. 창대는 전력질주합니다. 드디어 수레 수천 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노새에서 내려 그 행렬의 맨 마지막 수레에 노새를 매니,

연암이 보입니다. 창대는 불쑥 연암의 앞에 나타나 큰절부터 올립니다. 연암은 깜짝 놀라며 반가워합니다. 연암은 창대의 단독 모험을 꼬치꼬치 묻고 제독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낍니다. 예부 관리들이 죄다 일 년 감봉 처분을 받았으니, 제독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원래 제독 자신의 임무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남의 나라 일개 하인을 위한 마음 씀씀이가 극진’하네요.’ 제독은 회동사역관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에 스스럼이 없는 편입니다. 또 중국에서는 조선처럼 엄격하게 신분을 구분하지 않아요. 어쩌면 연암의 열하 여행에 제독도 또 하나의 함께 걷는 동행이었습니다.

창대야 견마잡이를 하겠다지만, 말로야 무슨 말을 못 하나요. 연암은 창대의 발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말고삐를 넘겼을 것입니다. 견마잡이가 견마를 안 잡는 걸 남들이 보면 창대의 면(面)이 안 섭니다. 밥값을 못하는 마음이 불편했겠지요. 그렇게 연암과 창대가 꾸벅꾸벅 졸며 열하 길을 걷습니다. 수역관의 마부도 역시 아팠군요. 연암은 수역관을 설득하여 숙소를 5리쯤 앞두고 각자 하인들을 말에 태웁니다. 한밤중이라 이목을 끌지 않고 살짝 태워줘도 됩니다. 연암은 담요를 꺼내어 창대의 온몸을 감싸고 끈으로 꼭꼭 묶고 당부를 보태어 먼저 보냅니다. 그렇게라도 하니 연암의 착한 마음이 그나마 편해졌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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