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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Aug 02. 2024

22.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열하에 가까워지니 수레··낙타 등이 밤낮으로 달려 바퀴 소리가 비바람 치듯 합니다. 창대는 나귀를 타고 있습니. 연암이 200닢과 청심환 다섯 알로 세 내주었어요. 얼마나 황홀하고 뿌듯한 시간이었겠어요. 하지만 노새는 구간이 정해져 있어요. 연암은  정사와 함께 움직였을 테니, 노새의 마부(?)가 아무리 둘러봐야 추가 요금을 내줄 사람이 안 보입니다. 그는 창대를 그냥 내려놓고 가버립니다. 고개 위에서 또 다시 혼자 뒤쳐진 창대는 통곡을 합니다.     

그렇지, 울어라, 울어.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는 법이라. 창대의 아픈 눈물로부터, 천것에서 고위공직자까지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던 그의 선조 정충신이 겹쳐 떠오릅니다. 아무렴. 살아야지. 피투성이가 되어 발버둥치면서라도 살아라. 악착같이 살아 있으라((에스겔서 16:6) 삶을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치는 불굴의 의지만큼은 창대는 확실히 물려받았습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요, 그 조상에 그 자손입니다.    

  


부사와 서장관의 행열이 다가옵니다. 그 모습에 창대는 더 크게 웁니다. 그들의 마음에 뭉클 측은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럼게 안쓰러우면서도 누구의 마음에도 자기의 말을 내줄까, 하는 생각은 추호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뭣이 중헌디? 나랏일이지. 황제의 만수절 이전에 열하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수레에나 태워주면 어떨까 생각한 모양입니다. 주방에게, “수레에 태울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방은 ‘아니’라고 칼같이 자릅니다.      

연경에서 출발할 때부터 최소한의 인원과 최소한의 물품으로 깔맞춤했습니다. 여유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없다니 어쩌겠습니까? 그냥 민망하게 여기며 지나갈 뿐입니다. 먹을 거라도 좀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여름 여행입니다. 변변히 줄 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인후하다고 해도, 인곳간에서 나는 법이니까요. 장복이라면 창대를 업고라도 갔을까요? 하지만 그 장복이 여기 없으니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청나라 제독의 일행이 다가옵니다. 창대는 더욱 서럽게 울부짖습니다. 제독이 말에서 내립니다. 창대를 위로합니다. 중국말 제대로 다 알아들는지는 못하지만 위로는 것만은 알아차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독은 지나가는 수레를 불러세워 돈을 내줍니다. 창대를 거기에 태웁니다. 어제는 입맛이 써서 먹지 못하니까 먹으라고 손수 권하더니 오늘은 손수 수레와 노새를 바꿉니다.  창대더러 노새를  타고 합니다. '먼저 타고 가서 공자를 따르되 길에서 내리고 싶거든 지나가는 수레 뒤에 노새를 매어 두어라. 그러면 내가 뒤에 가면서 찾을 것이다’라고. 창대는 전력질주합니다. 청나라의 나귀를 타고   달리는 창대의 귓가에 바람 소리가 입니다. 드디어 수레 수천 대 눈에 들어 옵니다.  다 왔습니다. 창대는 노새에서 내립니다. 그 행열의 맨 나중 수레 뒤에 노새를 맵니다. 매고 고개 남쪽 길을 가리키니 차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런 일이사 노상 있는 일인 게지요.      




그리고 연암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창대는 불쑥 연암의 앞에 나타나 보자마자 절부터 올립니다. 연암은 깜짝 반가워 합니다. 대충 묻지 않고 꼬치꼬치 물어 파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가 바로 연암 아닙니까? 창대의 단독 모험을 아주 디테일하게 청나라의 제도 하나를 알아냅니다. 그리고 제독에게는 마음으로 감사를 느낍니다. 예부 관리들이 일년 감봉 처분을 받았으렷다. 제독 역시 감봉 처분을 받았겠지.  무슨 트집이 잡힐지 몰라 전전긍긍할 만도 합니다.


하지만 제독은  남의 나라 일개 천한 하인을 위해서조차 마음씀씀이가 빈틈이 없고 극진합니다.  마음씨가 참 아름답습니다.  제독은  이민족의 문자 번역을 하며 연회 의식 및 제사 음식을 맡은 회동사역관입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스스럼이 없습니다. 60 나이에 접어들도록 관직에 머물러 있으니 그만큼 매사에 원만하다는 뜻이지요.  

조선 사신단을 보호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긴 합니다만, 자신에 대해서는 수더분하고 임무에는 성실 근면하니 큰나라의 풍모를 보여주는 모범이라고 하겠습니다. 감동 포인트를 잘 아네요. 그의 관직 생활이 길 수밖에 없요.       



연암이라면 그냥 말로만 아니라 창대의 발을 직접 확인했을 것 같습니다. 창대야 견마잡이 할 수 있다고 했겠지만, 말로야 무슨 말을 못 하나요. 연암은 눈으로 보고서야 안심하고 말고삐를 넘겼을 것니다. 연암이야 견마잡이 없이도 잘 달릴 수 있지만, 견마잡이 창대가 견마를 안 잡으면 남들 보는 데 면이 안 섭니다. 빕값을 못하는 마음이 불편할 게 빤하거든요. 그렇게 말을 탄 연암과 말고삐를 잡은 창대가 행군하는 군인들처럼 꾸벅꾸벅 졸면서 갑니다.      

수역관의 마부도 역시 아팠어요. 제독에게 감명을 받아 좋은 건 곧장 베끼는 순발력 갑인 우리의 연암이 아마도 수역관을 설득했겠습니다. 숙소참을 5리쯤 앞두고 각자 말에서 내려 병든 하인 두 명을 태운 겁니다.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남의 이목을 끌지 않 살짝 태워줄 수 있습니다. 연암은 흰 담요를 꺼내어 손수 창대의 온몸을 감싸고 끈으로 꼭꼭 묶고 보살펴 달라는 당부를 보태어 먼저 보냅니다. 착한 마음씨에 드디어 창대를 위해 한 건 해마음이 날아오를 듯 뿌듯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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