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의 Aug 30. 2024

26. 망국의 음악-음악이 무슨 죄냐?

    한때 가야에는 우륵이 있었습니다. 가야금 악기의 명인인데 가야가 망한 다음 신라에 망명했지요. 그가 신라왕 앞에서 음악을 연주했을 때, 왕은 크게 기뻐하며 우륵의 음악을 신라의 대악(大樂), 곧 국가 의례악으로 삼으려고 습니다. 신하들은 반대했지요. “망국의 음악을 어찌 우리의 대악으로 삼겠습니까?” 대악이란 한 나라의 혼이 담긴 것이니, 망국의 음악을 혼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겁니다. 왕은 그 말을 물리칩니다. “가야 왕이 음란하여 스스로 망했지 음악이 무슨 죄가 있나. 나라의 잘 다스림과 잘 못 다스림은 음악과 상관이 없다”고.  


우륵은 제자 세 사람에게 음악을 가르칩니다. 재능을 헤아려 하나에게는 가야금을, 다른 이들에게는 노래와 춤을 각각 전수합니다. 우륵 스스로 연주자일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도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겁니다. 나는 어렸을 때 왕이 우륵의 노래 열두 곡 중에서 다섯 곡만 취하고 나머지 일곱 곡은 ‘음란하다’며 버렸다고 배웠습니다. 이것이 야사에는 제자들이 우륵의 곡을 편곡하여 밝고 웅장하게 바꾼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륵은 그 편곡을 듣고는 "너희의 편곡이 슬프나 비통하지 않고 즐거우면서 음란하지 않다."고 원곡자로서 인정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로 나는 무엇이 망국의 음악인가를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우륵 당시의 왕은 진흥왕이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한반도 역사상 3대 악성(樂聖)의 하나인 우륵의 곡을 일곱 곡이나 퇴짜를 놓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라를 잘 다스리고 못 다스리는 것은 음악과 상관이 없다고 짐짓 말했습니다. 정치가 음악과 상관이 없다고요? 진짜로 없다면 왜 정성껏 만든 일곱 곡을 물리칩니까? 세종대왕처럼 음악의 전문가도 탄복하게 만드는 절대음감의 소유자라면 모를까, 기준이 뭡니까? 경성지색, 경국지색이란 말은 있지만 경성지음, 경국지음도 있답디까?     


그러면서 열하일기에서 이 ‘망국의 음악’이 나를 붙잡았습니다. 송나라 위한진의 음악은 슬프고 음란하며 원망스럽고 목에 메어 세상을 어지럽힐 거랍니다. 실제로 그가 음악을 완성했을 때 금나라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고, 황제가 포로로 끌려갑니다. 영가의 난, 토목의 변과 함께 한족 왕조의 3대 굴욕 사건으로 불리는 정강의 변입니다. 위한진은 음악의 천재였으나 악성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 천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걸헌팅(girl hunting)을 일삼으며 쾌락만을 추구하느라 국고를 탕진한 음악 애호가(휘종)가 아니라 음악을 이용하여 부국강병을 만들어내는 현실 정치인(진흥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천보의 난은 곧 안사의 난(756년 8월 12일)입니다. 당 현종은 초기에는 선정을 베푼 성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해지며 직언을 멀리하고 아첨하는 신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을 때 양귀비 일족이 국정을 농단합니다. 현종은 궁정 음악 관리 부서를 신설하고 그곳 악생들을 황제의 이원 제자라고 부르고 손수 악공들과 궁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칩니다. 궁중 연회에서는 이국의 음악을 섞어 베풀고 코끼리와 말의 춤까지 곁들입니다. 천하절색 양귀비를 옆에 끼고 시선 이백의 시를 감상하며 내가 가르친 가인(歌人)과 무희의 예술을 감상하니,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肴 萬姓膏)수준입니다.           


정통 음악이 땅을 쓸어내듯 없어지고 맙니다. 드디어 음악이 진흙과 숲 구덩이에 빠져 난장판이 됩니다. 머지않아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황제는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피신을 합니다. 그러나 피난 길에조차 양귀비는 하루에도 열두 번 목욕을 하는 여자입니다. 양귀비와 그 일행의 횡포는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는 양귀비 일행의 처단을 요구합니다. 후궁에 삼천 명의 미인이 있었건만 삼천 명 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 여인, 양귀비에게 황제가 죽음을 명합니다. 사랑이 죄냐고요? 죄이고 말고요. 음악이 무슨 죄냐구요? 죄이고 말고요. 춤과 노래와 시를 함께 즐기던 임을 죽으라고 하는 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음악은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와 비슷합니다. 반지는 반지를 소유한 자의 욕망에 부응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기를 원하는 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음악을 좋아해야 합니다. 나라를 잘못 다스리는 왕은 나라를 잘못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음악과 예술은 미인과 같습니다. 미인을 사랑하는 기쁨은 기쁨으로 누리되 방문 앞에 고양이처럼 엎드려 너를 원하고 있는 욕망은 스스로 다스려야 합니다.  올바른 다스림만이 음악과 춤, 예술을 무죄방면합니다. 왕이 음란하여 망했지, 음악이 무슨 죄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