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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Aug 23. 2024

25. 받느냐 안받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조선 사신단은 서번의 반선을 만납니다. 열하일기의 행재잡록 편에 그 반선이 준 선물 목록이 나옵니다. 조선 사신단의 정사와 부사, 서장관은 각각 구리불상과 서역 융단, 합달과 붉은 양탄자 그리고 서장 향과 계협편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받을 정도라면 빈손으로 가지는 않았을 텐데 드린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후세 사람으로서는 이런 자질구레한 TMI가 더 궁금한데 말이죠!     


구리불상은 키가 한 자인 휴대할 수 있는 호신용 불상입니다. 중국에서는 흔히 선물로 주고받는 물건이랍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이를 지니고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공양합니다. 서장은 조공을 바칠 때 부처 한 좌를 으뜸 토산품으로 여깁니다. 이 구리 불상도 사신이 먼길을 무사히 가도록 빌어주는 폐백입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한번이라도 부처에 관계되면 평생 누가 되는 판인데 하물며 이것을 준 자가 보통의 승려도 아니고 서번의 승려이니 문제이지요.      


합달은 비단 폐백입니다. 폐는 원래 선물로 주고 받는 예이고 백은 비단입니다. 따라서 '폐백'이란 비단을 선물로 올리는 행위입니다. 반선을 만나는 자는 반드시 옥색 비단 한 필을 폐백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반선의 전신이 팔사파이고 팔사파의 어머니가 향내 나는 헝겊을 삼키고 팔사파를 낳았기에 반선을 만나려면 헝겊을 잡아야 예의랍니다. 이건 황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황제도 황족과 부마도 반선 앞에서는 비단 헝겊을 드리는 동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게 됩니다. 비단은 반선에게 바쳤으니 사신들이 챙긴 건 아니지만 청나라 입장에서는 비용이 발생하니 공금 처리를 하느라 목록을 써놓은 듯합니다.      


제독이 사신을 인도하여 반선 앞에 이르자 군기대신이 두 손으로 비단을 받들고 서서 사신에게 건네줍니다. 사신은 비단을 받아 머리를 꼿꼿이 들고 반선에게 줍니다. 반선은 미동도 없이 앉은 채로 비단을 받아 받은 비단을 무릎 앞에 둡니다. 반선이 차례대로 비단을 받아 군기대신에게 주면 군기대신은 공손히 받들고 반선의 오른쪽에 시립합니다. 사신들이 착석하자 제독이, 나눠주고 남은 비단 조각을 얻어 반선에게 나아가 바치고 절합니다. 이 순서로 보면 비단을 바치자마자 곧장 고두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신들은 절을 안 했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서역 융단은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각각 18장, 14장 그리고 10장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도 붉은 양탄자는 각각 2필, 1필,2필을 받았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융단이나 양탄자나 비슷합니다. 둘 다 양털을 표면에 보풀이 일게 짠 두꺼운 모직물입니다. 천의 날실과 씨실 외에, 날실에 색실을 묶어 그 끝을 잘라 보풀이 일게 하며 마루에 깔거나 벽에 거는 물건입니다. 개수로 보아 붉은 양탄자는 방바닥에 까는, 크고 무거운 물건이고 서역 융단은 좀 더 가벼운 벽걸이 장식용일 것 같습니다.      


서장 향은 피우는 향인 듯 합니다.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각각 24묶음, 20묶음, 14묶음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계협편이 있는데 이건 정사에게만 1부대를 줍니다. 일종의 메모지라는 주가 붙었습니다. 사전에는 서류나 문건에 따로 적바림하여 붙인 쪽지가 협편(夾片)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적바림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글로 간단히 적은 것을 말합니다. 이 협편을 인터넷에서는 까탁이라고 부른 데도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어로 까탁(katak)은 정사각형 또는 사각형을 뜻한답니다. 디지털 장서각에서는 ‘목에 둘러 축복해주는 까탁이라고 부릅니다. 메모지라면 가장 먼저 포스트잇이 떠오르는데 종이류라면 연암이 뭔지 모르겠다고 주를 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신들은 이런 걸 지니고 싶지 않아 역관들에게 줍니다. 역관들도 이를 똥이나 오물처럼 자신을 더럽힌다고 여기고 팔아치워 생긴 은자 90냥을 마두들에게 줍니다. 그런데 마두들조차 이 돈으로는 술 한 잔도 안 마셨다네요. 결백하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의 풍속으로 따져 본다면(외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물정이 어두운 촌티(결례)를 면하지 못한 일이라고 연암은 슬쩍 언급합니다. 남 얘기가 아니네요. 나부터라도 우물 안 개구리 티를 좀 벗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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