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은 곡정과 무려 열여섯 시간동안 필담을 나눕니다. 물론 식사 시간이면 밥은 먹었을 것이요, 화장실도 가고 차도 마셨겠지요. 하지만 글씨를 써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답변을 읽은 다음 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집중하여 머리를 계속 써야 하는 대화이니만큼 하룻밤으로 만리장성을 충분히 쌓았겠습니다. 데이트도 아니고 사십대의 연암과 오십대의 곡정, 두 머스매들끼리 아주 징합니다, 이거!
곡정이 조선의 자랑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연암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점 네 가지를 듭니다. 첫째는 유교를 숭상함이요, 둘째는 황하와 같은 큰 강이 없어 수해가 없음이요, 셋째는 물고기와 소금의 자급자족이요, 넷째는 여인이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음이랍니다. 한 나라에 관해 질문을 듣자마자 그 복잡다단한 모습을 간단명료하게 포착하여 대답하는 것이 연암 참 대단하지요. 어떻게 공부하면 이렇게 정곡을 콕 찌르는 대답이 맞춤형으로 나올까요? 민간외교사절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외교사절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나도 해외여행 간다면 로밍보다도 우리나라의 장점을 모범답안으로 가져가야 할까 봐요.
유교를 숭상하는 것이야 당연히 조선의 특징입니다. 둘째로 황하가 없어 수해가 없다는 건 작으니까 오히려 유리하다는 시각입니다. 조선에 수해가 왜 없었겠습니까. 황하 유역의 홍수 피해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뜻이었겠지요. 그래도 작은 것에서부터 작은 것의 장점을 찾아내어 당당하게 말하는 거, 멋있습니다. 오, 이 친구 만만치 않은데, 라는 느낌을 확 주었을 것 같아요. 셋째로 물고기와 소금의 자급자족이 왜 장점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소금이야 동서고금 국가에서 전매를 하는 물품이었으니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고기의 자급자족이 왜 장점이 될까요? 물고기를 못 먹는 나라에 비교하면 장점이 된다는 걸까요? 문제는 넷째입니다. 여자가 재혼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랍니다.
이런 장점을 가지다니 조선은 ‘樂國’이라고 곡정이 반응합니다. 옮긴이는 이것을 '좋은 나라'라고 번역해 놨는데 과연 즐거운(樂) 나라임에 틀림없을까요? 온 나라가 다 그러냐고 곡정은 거듭 묻습니다. 얼핏 생각해도 그럴 법하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법으로 금지하느냐고도 거듭 묻네요. 법이 따로 없지만, 선비 집안이면 삼종(三從)의 덕을 지킨 지 400년이 되었다고 연암은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답은 오답입니다. 법이 왜 없어요? 있고말고요. 연암도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고 이 일을 소재로 다루는 소설도 썼답니다. 조선에서는 재혼한 여자의 아들은 과거 응시자격을 박탈당합니다. 재혼을 막는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법률이 있을까요?
반면에 곡정은 ‘열녀 불경이부’의 폐단을 들고 나섰습니다. 중국에서는 혼인 예물을 보내고 혼례를 안 치렀거나 혼례식을 올리고 초야를 안 치른 경우, 신랑이 죽으면 신부가 평생 수절을 한답니다. 반면에 신부가 죽으면 신랑이 평생 수절했을까요? 택도 없는 소리지요. 심지어 집안끼리 태아를 두고 혼사를 맺었다가 신랑이 죽으면 신부에게 자결을 종용하여 한 무덤에 넣는답니다. 과연 신부가 죽으면 신랑도 자결을 할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황제의 6살배기 공주가 신하의 어린 아들과 약혼을 했는데, 예비신부가 죽으면 예비신랑도 자결을 할까요? 나라에서는 부모에게 책임을 물어 엄벌에 처한다 해도 이 야만적인 일이 풍속으로 정착이 됩니다. 사회와 문화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었지요 .
중국사람인 곡정의 말이지만 과연 이것이 중국만의 일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조선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과부가 자결을 하면 위에서 열녀문을 내려 칭송을 했습니다. 남편을 잃어 기댈 데가 없는 여자는 자결을 하든지 아니면 자결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과부가 되면 그 과부는 온 마을 남자들의 공동 소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연암의 소설 <호질>에 등장하는 과부 동리자는 그 다섯 아들이 다 성이 달랐지요. 나 어렸을 적에는 호질을 이렇게 배웠답니다. 동리자는 명색이 열녀인데 성이 다른 아들이 다섯이니 그 행실이 음탕하며 위선적이라고요. 이제 와보니 자결하여 죽었어야 할 여자가 버젓이 안 죽고 살아 있었던 것이 죄였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