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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Oct 18. 2024

7. 그대 걷던 길을 나 지금 걸으며

-익재 이제현

 “삼한 사람으로 이제현만큼 중국 땅을 두루 밟아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가 유람한 지역이 그의 시에 나오는데 정형·예양교·황하·촉도·아미산·공명사당·함곡관·민지·이릉·맹진·비간묘·금산사·초산·다경루·고소대·도량산·호구사·표모묘·탁군·백구·업성·담회·왕상비·효릉·장안·정장공묘·허문정공묘·관룡방묘·망사대·무측천릉·숙종릉·빈주·경주·보타굴·월지국 사신이 말을 바친 곳 등이다. 발자취가 닿은 곳이 모두 위대한 역사의 현장이라 우리나라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다. 그의 시도 우리 동방 2천 년 이래 이름난 사인의 시이다. 화려하고 고우며 밝고도 우아하여, 삼한의 편벽되고 꽉 막힌 누습을 통쾌하게 떨쳐 버렸다. 그런데도 익재가 이제현인 줄도 모르는 사람도 있어, 중국의 어느 문집에고 익재의 시 한 수가 수록되지 않았다.  

   

이덕무가 《청비록》에 쓴 이제현 평론입니다. 이덕무는 “천지 사이의 맑은 기운이 시인들의 비장에 스며든다.”라는 시 구절에서 제목을 끌어온 이  평론집에서 고금의 명시(名詩)를 비평했습니다.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시와 시인을 언급했는데, 이것은 여러 차례 중국에 다녀와 세계정세를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의 소유자인 이덕무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덕무나 되니까 동양 삼국의 문화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덕무는 시와 시인의 독자적인 세계에 주목하여 나를 비롯하여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 당대의 조선 시인과 중국과 일본의 문인에 대해 평가하였습니다.


익재의 무덤은 황해도 금천에 있습니다. 무덤 아래에 그의 옛집이 있지요. 터만 남은 그곳에 서원이 건립되어 그를 기릴뿐입니다. 그곳은 나의 연암협 처소에서 십 리도 안 되게 가깝습니다. 그 서원으로 향할 때마다 나는 익재의 문집-《익재난고》를 읽는데, 이덕무의 정밀한 눈에 새록새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상(路上〉

말 위에 끄덕끄덕 『촉도난』을 읊조리다가

오늘 아침 비로소 진나라 관문에 들어가네

푸른 구름은 저물녁에 어부의 물을 가리고

붉은 나무는 가을이라 조서산으로 이어지네

문자는 여유롭게 천고의 한을 더하고

명리에 지친 한 몸은 언제나 한가할꼬

사람이 가장 생각나는 건 안화사 길을

즉장망혜를 짚고 오고 가던 일이네     


안화사는 고개 하나 건너편에 터만 남아 있습니다. 나는 <노상(路上)>을 읊조리며 지금의 나처럼 죽장망혜로 이 길을 걸는 익재를 그립니다. 그가 말을 탄 채로 읊은 촉도난은 이태백의 시입니다.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어렵다는 험난한 촉나라 길을 갔다가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인지라 이태백의 시를 절로 읊조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에야 진관(원나라의 관문)에 들어서니, 푸른 구름이 어부(=촉땅)의 물을 가리고 붉은 단풍이 조서산으로 이어진다니, 푸름과 붉음의 대비가 절묘하지 않겠습니까?

 문자로는 명예와 이익을 얻었으나 천고의 한을 더할 뿐이요, 안화사 길을 죽장망혜로 한가로이 왕복하던 때가 가장 그립다고 익재는 읊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장 그리워했던 그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걷는 는 정작 그가 가장 힘들어했던 그 길이 오히려 사무치게 그리웠습니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중국의 일을 쓸 때는, 가보지도 않은 곳을 제멋대로 빌려다 썼습니다. 마음은 항상 먼 곳을 향하는 법인지라, 나 역시 중국의 이름을 빌려 빗대어 썼습니다. 오직 익재 한 사람만 제 눈으로 보고 제 발로 밟고 시를 썼던 것이지요. 익재의 시는 그 장소의 날씨와 풍경을 제대로 그려냅니다. 진관은 관중 지방이며 촉도에 비해 길이 닦여 있습니다. 산 많은 감숙성에서는 단풍이 산등성이를 타고 기어올라 조서산을 붉게 물들인이겠거니, 하고  나는 촉도·진관·어부수·조서산을 곱씹으며 우두커니 넋이 나갔었습니다.      


그랬던 내가 지금 그 익재도 못 왔던 열하에 왔습니다. 남들이 못 온 곳을 왔다고, 겨우 장성 밖 고북구를 벗어난 것으로 우쭐거렸습니다. 무박 나흘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목숨을 걸고 달려온 길이니 혼자서는 약간 뽐내도 괜찮으리라, 여겼습니다. 가는 데마다 시를 남긴 익재에 대면 나는 가까스로 호북구 벽에 몇 글자를 남긴 것에 불과한 것을....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것이 익재는 유배(流配)당한 임금을 위해 먼 길을 달렸지만, 나는 만 리를 달려가 뵈올 임금이 없습니다. 오로지 벗만 있습니다. 나에게 벗은, 눈물을 흘리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는 존재입니다. 누구에게나 만 리를 마다 않고 달리게 하는 사무치는 정든 임, 그것이 나에게는 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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