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정과 연암의 대화는 고려공안에 이릅니다. 곡정이 고려공안(公案)을 먼저 언급합니다. 연암은 소동파의 《지림》에서 나왔다고 출처를 듭니다. 동파는 중국 북송 시대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이자 정치가인 소식의 호입니다. 소동파(蘇東坡)라고 흔히들 불렀답니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한 당송팔대가의 하나로 꼽히며 팔방미인 격인 천재 예술가였답니다. 고려의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고 시짓기를 배우기 시작하면 소동파의 시를 무척 즐겼기에 매년 과거 합격자가 나면 또 소동파 서른 명이 났다고들 했다네요. 소동파의 시만을 줄창 배웠다니까요.
내친 김에 연암은 동파가 죄 없는 고려를 미워했다고 대화를 이끕니다. 고려의 김부식과 부철 형제가 소동파 형제의 이름을 딸 정도로 사모했는데도 소동파가 몰라주더라고요. 소동파는 22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는데 1079년에 황주(호북성) 유배 6년, 1094년 혜주(광동성) 유배 3년, 1097년 해남도 유배 7년 모두 합해 16년 유배생활을 하며 유배가 풀려 귀향하는 길에 사망합니다. 그는 현실참여주의자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구제하기를 원하며 다정다감한 성격에 연민과 애정도 유난히 깊었다고 합니다. 뭔들 허투루 스치지 않는 성격에 연암은 조선과 중국의 관계 그리고 소동파에 관해 미리미리 살펴본 듯 합니다.
한번은 소동파가 상소를 올렸습니다. 고려의 중국 서적 매입을 금지하자는 상소였지요. 그래도 고려는 어찌어찌하여《책부원귀(冊府元龜)》를 사 왔나 봅니다. 책부원귀는 천 권짜리 송나라판 대백과사전입니다. 초판이 나온 1013년이면 고려는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의 승리를 거둔 제3차 고려 거란 전쟁(1018년) 시대였습니다. 곡정은, 그 책이 조선에서 널리 인쇄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그 말에 연암은 답변하지 않습니다. 그 애먼 소리를 들으며 사 온 책이 아직 남아 있는지 읽고 있는 나도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본 기억이 없네요. 봤어도 기억에 안 남았겠지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모르는 눈에는 그저 너덜너덜한 종이 묶음이었을 테지요.
고려가 요나라와 금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송나라를 한스럽게 했으며 송나라가 고려 사신을 접대하는 비용만으로도 수만 냥이라 여러 고을이 시끄러웠답니다. 소동파가 주장한 다섯 가지 해로움도 이 때문이었으며 심지어 고려가 송나라 사정을 염탐할 것이라는 의혹도 있었다는 겁니다. 얘기가 이쯤 되면 뒷골을 짚어야 합니다.(싸우자는 거냐!) 당연히 연암의 항변이 이어집니다. 조선은 역사 이래 중국의 국경을 범한 적이 없으며 수, 당과 겨룬 것은 고씨의 고구려이지 왕씨의 고려가 아니고 신라는 중국을 본받아, 오랑캐가 변하여 중화(中和)가 되었으며 고려도 사모하는 정성이 한결같아 중국의 좋은 글은 손을 씻고 받들어 읽으니, 소동파의 고려 공안은 고려의 원안(寃案)이라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비록 말 아닌 글을 주고받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통한 감정이 붓끝에 배어 맹렬하게 써 내려가는 연암을 그립니다. 도대체 붓이 칼보다 강한 건지 칼이 붓보다 강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만 리 뱃길을 왕래하며, 앞 배가 넘어지면 뒷배가 잇달아, 천자에게 걸맞지도 않을 변변치 않은 토산품을 보내던 소국의 심정을 아느냐, 조선이 비록 소국이지만 자급자곡하니, 중국의 재물을 탐낸 건 아니라고 연암은 열변(?)을 토합니다. 그러니 상국인 중국이 외교의 비용을 아끼느니 운운한 소식의 상소문은 당대 조정의 수치가 아니냐고요! 읽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올림픽 검도 경기의 한일 결승전을 보는 기분입니다. 챙챙거리는 금속성이 울리는 진검승부입니다. 아, 이런 똑똑한 놈 하나 어디 없나, 잘 키워서 마음껏 짖어대라고 등 떠밀어 주고 싶어집니다.
웃음 속에 칼이 있습니다. 곡정이 동의하며 후세에 어긋난 일도 당시에는 그럴 법했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면서도 소동파를 엄하게 배척하니, 고려를 위해 분풀이하냐고 웃습니다. 하소연도 못 하냐고 연암도 웃고 곡정은 농담이라며 웃습니다. 연암은 면전(面前)에서 지적질을 하냐고 웃으며 묻고 곡정은 공자의 제자 자로를 자처하며 웃고 연암은 문 앞까지 온 자로를 불러들이자며 웃고 이렇게 화기애매(?)하게 웃으며 한 주먹씩 주고 받다가, 웃음기가 쏙 빠지기 시작합니다. 과거 시험장에 흰 머리로 나타나기가 부끄럽다며 시험을 포기한 거인 곡정과, 과거 시험장에서는 그림이나 그리고 나온 연암은 어쩌면 조선과 중국에서의 도플갱어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격의 없는 담소를 나눈 벗과 어찌 흔연스레 헤어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