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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Oct 23. 2024

10.‘후’하고 숨을 내뿜으며

–가의(BC 200~BC 168)

곡정은 ‘후’하고 숨을 내뿜습니다. 연암과 필담을 하는데도 자주자주 한숨 쉬는 소리를 냅니다. 뱃속이 꽉 막혔답니다. 평생에 글을 읽어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십중팔구라, 속이 막히는 증상이 생겼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매양 세 번씩 탄식을 한다면 가의 보다 육만 번은 더 했을 거요. 천하 일이란, 물 하나를 사이에 건너느냐 못 건너느냐의 싸움인데 공자가 하수를 못 건너고 항우가 오강을 못 건너고 송나라의 충신 종유수가 ‘하수를 건너라, 고 세 번 외친 데에서 각각 세 번씩 무려 아홉 번 탄식을 곡정은 했답니다. 가태부의 여섯 번 탄식보다 더 많네요.      


가태부란 한나라의 인물 가의(賈誼)입니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알려져 18세 때 오공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장창에게서 <좌전>을 배웠습니다. 장창은 순자의 제자고, 오공은 순자의 제자인 이사의 제자이므로 가의는 순자의 학문을 계승한 셈입니다. 순자의 학문은 유가를 자임했으나 학파를 넘나드는 편이었습니다. 가의는 오공의 추천으로 박사로 초빙되니 고작 20세였습니다. 곧 한나라 문제의 신임을 받아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태중대부 직에 오릅니다. 이 해에 가의는 한 문제에게 <논정제도흥예악소(論定制度興禮樂疏)>와 <논적저소(論積貯疏)>를 올려 현실 정치에 대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가의는 <논시정소(論時政疏)>를 올립니다. “현 정세를 살펴보면 통곡할 일이 하나요, 눈물지을 일이 둘이요, 탄식할 일이 여섯입니다.”라고 주장한 이 개혁안은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회자되는 글입니다. 가의는 공자의 사상을 형벌의 집행에 적용했습니다. 법치만 숭상하던 진나라가 멸망했으니, 그 형법에 대신하여 유가적 예치로 질서를 잡자고 했습니다. 진나라의 혹형의 그늘이 아직 채 가시지 않던 시기에, 형벌의 수위를 적절하게 논할 필요가 있긴 했지요. 가의는 주장합니다. 대신에게는 첫째, 예의로 대하여 염치를 차리게 하라. 둘째, 직위 해제 또는 사형으로 처벌할 뿐 치욕은 주지 말라. 셋째, 구체적인 죄목을 열거하여 공개적으로 모욕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또한 한 문제 2년에 <과진론>을 썼습니다. 이는 진나라의 실패를 거울삼아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진나라의 단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 제도를 답습하지 말고 제도와 법을 개정하고 예악을 부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의의 제안은 현실직인 장애물에 부딪칩니다. 그의 주장은 이상적인 만큼 성급하였고 시기질투하는 노회한 공신들의 반대에는 부딪혀 꺾입니다. 가의는 24세에 장사왕 오차의 태부로 갑니다. 일종의 좌천이지요. 암울한 시기를 버텨낸 그를 1년 후 문제가 다시 부릅니다. 그리고 독서를 즐기는 작은 아들인 양 회왕의 태부로 임명하지요.      


가의는 양 회왕을 충성스럽게 보좌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양회왕이 후사도 없이 낙마(落馬)사고로 사망합니다. 가의는 훗날 황실의 갈등을 내다보고는 황태자를 돕기 위해 유무를 양왕으로 삼기를 건의합니다. 유무는 새로운 양왕이 되어 40여 성을 지배하게 됩니다. 훗날 그가 오초7국의 난에서 황제를 도와 큰 활약을 펼치니 가의의 고심이 잘 맞아 떨어진 겁니다. 가의는 1년여 동안, 숨진 양 회왕을 위해 애도하던 끝에 세상을 버립니다. 37세의 이른 죽음이었습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신서≫ 58편과 부 5편 및 ≪한서≫ <굴원가생전>에 있는 <진정사소> 등입니다.     


가의의 기록을 검색하는 건 재미있었어요. 천재란 독한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만듭니다. 푸른 하늘에 둥실 뜬 하얀 구름 한두 점처럼 약간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면 더 매력이 있지요. 금수저로되 불우하고  평생 글을 읽어 뛰어난 재능을 갈고 닦아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십중팔구인 세상을 탄식하는 모습이 좀 멋진가요. 건륭제 시대의 곡정과 정조 시대의 연암은 제 뜻을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였습니다. 한 문제 시대의 가의는 뜻을 폈나요? 연암과 곡정이 가의를 위해 안타까운 심정을 어쩌지 못하는 것은 동병상련입니다. 그래도 가의와 곡정, 연암은 자기 시대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그들이 산 적 없는 내 시대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요? '후'하고 숨을 내뿜을 수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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