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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Oct 21. 2024

9. 섭정은 아무나 하나

-주공 단(생몰년 미상)

낙유원이란 중드(중국 드라마)를 보셨나요? 아주 재미있어요. 황위 후계 순위가 한참 낮은 황손 이억이 주인공입니다. 이억은 어린 시절에 변방 뇌란관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십칠랑'이란 애칭을 가진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합니다. 자신의 군대 '진서군'을 지휘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는 황손에서 황태자, 드디어 황위에까지 오릅니다. 태평성세 십 년을 이루고 그는 전 태자의 아들인 이택에게 황위를 넘기고 뇌란관으로 돌아갑니다. 좋은 섭정의 심정을 가지고 후계자가 성년이 때까지 황위를 보존해준 남자, 참 멋진 캐릭터였습니다.  


상나라를 정복한 후에 주나라 무왕은 대규모로 분봉을 시행했습니다. 주로 공신들과 주나라 왕족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멸망한 상나라의 마지막 왕자 무경을 상의 도읍지였던 은에 봉했습니다. 상나라의 유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라 그 주변으로 자신의 세 동생들을 분봉하여, 삼왕자 희선을 관의 제후로, 오왕자 도를 채의 제후로, 팔왕자 처를 곽의 제후로 봉했습니다. 무경과 상나라의 유민을 감시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들을 ‘삼감(三監)‘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왕과 어머니가 같은 형제는 10명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문왕의 정비, 태사였습니다. 맏아들은 백읍고이고, 그 다음이 무왕 발과 관숙 선, 주공 단과 채숙 도, 조숙 탁과 성숙 무, 곽숙 처와 강숙 봉, 그리고 염계 재가 막내였습니다. 형제 중에서 차남인 발과 사남인 단이 유독 어질고 뛰어나 아버지인 문왕을 곁에서 보좌했습니다. 문왕은 장남인 백읍고를 포기하고 발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문왕이 세상을 떠나 발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무왕입니다. 당시 백읍고는 일찍 죽었습니다. 그리고 문왕을 잘 보좌한 이왕자 발이 상나라를 정복한 무왕입니다.      


그 유명한 강태공과 함께 무왕의 오른손과 왼손이 된 것이 바로 사왕자 단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무왕의 군대가 들이닥치자 목야전투에서 은나라 군대는 무기를 거꾸로 돌리며 길을 터주었다고 합니다. 곡정의 탄식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하늘이 폐한 나라를 누가 다시 일으키겠습니까! 그 역성혁명에 성공하고도 무왕은 재위 2년만에 병을 얻습니다. 천자의 지위가 그렇게도 무겁고 무거운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나라가 위태롭다고 여긴 주공 단은 자신을 대신 데려가도 좋으니 무왕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원하고 그 기도문을 금궤에 넣어 보관합니다. 그 기도 덕분이었는지 다음날 무왕은 병으로부터 회복되지만, 이윽고 재위 4년 만에 숨을 거둡니다.      


주공 단은 곡부(曲阜)에 봉해져 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으로 부임하는 대신 아들인 백금(伯禽)을 보냅니다. 장남인 아들 노후 백금은 노나라의 제후가 되고, 차남인 군진이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습니다. 주공 단은 천하가 미처 안정되지 않았으니 어린 조카를  도울 생각이었습니다. 무왕의 아들이 13세에 즉위하여 성왕(成王)이 되었습니다. 삼촌인 주공 단은 이전에 형인 무왕을 돕듯이 성왕을 도왔습니다. 다른 형제와 형수인 성왕의 어머니, 그 유명한 강태공 등 쟁쟁한 인사들과 함께 섭정을 했지요. 그런데도 관숙과 채숙이 주공 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습니다.      


황위를 노린다는 온갖 유언비어에도 주공 단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감시를 받고 있어야할 무경이 오히려 관숙 선과 채숙 도를 꾀어 반란을 일으키고 맙니다. 주공은 성왕의 명을 받들고 군사를 일으켜 삼년 동안 반란을 진압합니다. 무경을 죽이고, 형인 관숙을 베어 죽이고,  동생인 채숙은 채숙의 지위를 그의 아들 중호에게 넘겨준 후 수레 10승과 시종 70명을 주어 내쫓았습니다. 은나라의 유민은 둘로 나누어 송의 일부를 미자 계에게, 위의 일부를 강숙에게, 염 땅을 염계 재에 봉했습니다. 그들이 선하게 행동하성왕을 잘 받드니  주나라는 점차 안정을 얻습니다.     


7년 뒤 주공은 성인이 된 성왕에게 정권을 돌려줍니다. 자신은 제후로 되돌아가 낙읍에 자리를 잡고 주의 부도(副都)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역경>과 《주례》,《의례》를 지어 문치의 이상을 설계하였습니다. 그의 약 500년 후인인 공자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할 정도로 주공을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민초에 불과한 나는 주공의 시 ’치효‘와 금궤의 기원문 때문에 그를 존경합니다.  권력을 자발적으로 넘겨주는 것은 , 그것도 가장 잘 일할 수 있는 무르익은 나이에 하기에는  참 드물고 드문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인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나는 황손 이억의 이야기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훈남훈녀가 등장하여 외모만큼이나 멋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하는 건 드라마 있는 미담이라고요. 그런데 열하일기에서 주공 단의 이야기를 읽고 아하, 낙유원의 작가가 주공 단을 모델로 황손 이억의 이야기를 만들었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도 온고지신하 멋진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역사를 가진 나라, 그 인물을 재생산, 재가공하여 문화를 이어가는 나라, 그리하여 나쁜 놈들이 즐비한 현실에 좋은 놈도 한번씩 내놓는 나라,  중국을 거듭 생각합니다.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도 아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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