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가를 하는가?
제주살이를 접고 평창으로 돌아온 가수 이효리가 요가 강사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명상부터 요가 동작을 이어가며, 무대에 서 있는 모습보다 매트 위에 있는 자신이 더 '본연의 나'로 느껴진다고 했다.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요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줄곧 다른 사람에게 화려해 보이는 것에만 신경쓰던 성숙하지 못한 나를 버리고 싶어졌다.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진짜의 나를 찾기로 했다. 어느덧 마흔이 훌쩍 지나버린 어느 겨울에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픈 용기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길게 돌아온 느낌이다. 강남역으로 출근하던 시절, 내 모습이 뿌듯하고 마음에 들었다. 실루엣이 그럴싸한 새 옷과 트렌디한 운동화를 신고 높은 빌딩들 사이를 걷는 기분이 좋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기쁨도 신선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구획된 사무실 큐비클에 둘러싸여 소모적인 일을 반복하며 - 특허명세서를 썼다 - 몸이 점점 무너졌다. 목의 통증으로 시작해서, 어깨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마우스를 잡고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그랬는지 손목과 손가락, 팔꿈치를 번갈아가며 아픈 팔은 나의 모든 활동을 제한했다. 여행 중에 드는 가방의 무게가 부담스러워서 내일 아파올지 모를 통증이 미리 걱정되었다. 아침에 사과를 깎다가 칼 쥐는 법에 더 신중해야했고, 몸에서 보내는 신호는 점차 강력해져서 온 몸이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깊어지는 고통과 함께 여름 즈음에는 온몸에 진이 빠져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힘들어졌다. 기립성 빈혈,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들고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서 변리사가 시키는 일을 겨우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숨이 가빠졌다. 번아웃인가, 공황장애인가, 내 안은 텅비고 껍데기만 움직이고 있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혈액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하고, 신경주사도, 전신마사지도 그 때뿐이었다. 경직된 몸은 계속 아픈채로 굳어지고 있었다. 나에게 남은 건 운동밖에 없었다. 누구나 조언하는 운동이지만 효과가 제일 더디고 실천이 어려운 방법. 꾸준히 매일매일 몸을 움직여 혈액순환과 근력을 향상시키고 생활습관을 바꾸고 일상에서 자세를 교정하는 그 방법 말이다. 쉽지 않겠지만 내 몸을 살려줄 운동을 찾아본다. 꼼꼼히 내 몸의 상태를 살피고 몸의 균형을 잡아줄 운동이 필요했다. 정해진 틀에 맞춰가며 쓰이는 나 대신, 진짜 나를 들여다 보고 내가 지닌 힘에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리를 펴고 앉아서, 오른 다리를 왼쪽 무릎 너머로 보내고
왼팔로 오른무릎을 밀며 등뒤를 한껏 바라봅니다.
들이쉬는 숨에 척추를 길게 펴고
내쉬는 숨에 더 깊게 몸통을 비틀어 목까지 이완시킵니다."
조용한 공간에 매트를 펴고 앉아서 자세를 잡는다. 척추를 펴고 몸의 긴장된 부분에 집중을 하다보면 몸이 대답을 한다. 온 몸이 조금씩 개운해지고 서서히 통증있던 부분의 긴장이 사라진다. 에너지도 채워지는 기분, 매트 위에 있는 나는 온전히 '나'였다. 이게 나잖아,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태초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한다. 매트 위에서 내가 어릴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근한 나를 만난다. "I've known you" 내 몸 안에서 홀로 자라고 있던 어린 나를 만나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요가로 돌아왔다. 십수년전 버클리에서 아이들을 육아할 때, 타운하우스 커뮤니티 센터에서 요가를 배웠다. 저녁 설거지를 급히 끝내고 커뮤니티 센터로 종종 걸어가서 넉넉한 인상의 네덜란드인 여자선생님 카알라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정수리 높이까지 묶은 머리에 하와이안 플러머리아 꽃으로 장식하고 하렘 팬츠를 입은 카알라는 여유있는 미소로 나를 맞이해준다. 요가룸은 꽤 소박한 공간이었는데 그 곳에서 몸을 움직이고 호흡하는 시간은 어린 딸과 남편에게서 해방되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 낯선 미국땅에서 갓난 아이를 키우며 내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건 - 살짝 제정신이 아니었던 구간도 있었던 것 같다 - 요가의 역할이 크다.
그 이후로도 때때로 직장을 다니고 요가를 하면서 '요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잠깐 떠올려보곤 했다. 체육시간을 싫어하고 책을 가까이하던 나에게 운동이란 몸을 쓰는 노동일 뿐 진지한 현실 고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내 석사학위를 반짝이게 해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고, 내 이력이 쓰일 수 있는 곳으로 나의 집중력을 제한했다. 자신감이 부족하던 나는 어디에서도 힘들어 매번 체력고갈이 되었다. 그렇게 지칠 무렵,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차근차근 살펴보다가 알았다. 나를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워낙 작은 몸이었지, 다리가 약해서 매번 외출하고 돌아오면 다리가 붓곤했지, 숨이 가쁠 때도 많았는데 호흡기관이 약한가, 숨쉬는 방식이 다른가, 많은 기억과 함께 그 데이터를 담은 나의 몸이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내 몸이 끊임없이 보내는 신호를 더이상 방관하지 말고, 내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내 몸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여야 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내 몸을 살펴보며 나를 살리는 진지한 '요가인'이 되었다.
드라마 미생에 그런말이 나온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때문이라고,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된다고. 마흔이 훌쩍 지난 지금, 구호만 외치다가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허공으로 떠도는 구호를 내면으로 가져와 몸으로 체화시키는 법, 실천을 해야한다.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를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훈련시켜 체력을 길러보자. 체력을 기르는 법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장기간에 걸쳐 수면, 운동, 식단을 관리해 매일매일 꾸준히 건강한 습관을 실천하는 방법밖에 없다.
집순이인 나에게 요가는 최적의 운동이다. 방바닥에 매트를 펼치면 바로 수련을 시작할 수 있다. 고유수용감각을 키워 제대로 관찰하면 나를 수용하고 적절하게 조절하는 법도 알게된다. 지금까지 외부에서 주입된 편견과 지나온 발자국에 내 미래를 발목잡힐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가진 힘을 발견하고 내 안의 나를 믿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다. 아사나 자세를 굳건하게 완성하며 나를 알아차리고 에너지를 채우며 집중한다. 단단한 나를 완성하기 위한 시작은 요가로 새롭게 시작되었다. 매트 위에서 비로소 만나는 자유롭고 건강한 나는 어떤 흐름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