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곰 Jun 21. 2022

인생의 선택은 옷을 고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액션!"

레코드 버튼을 누르며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컷을 외치기 전까지 몰입하는 시간이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을 바라보는 순간에 찾아오는 묘한 뿌듯함도 영상이라는 분야에 처음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액션을 외치기 직전에는 모든 사람이 나의 신호에 집중하고, 외치는 순간에는 내가 대단한 리드를 하고 있는 양 착각하게 만들었다. 간혹 이것에 취해 한순간에 거장이 된 듯 행동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분야인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그렇게 전공을 살려 사회에 나왔지만 나는 현실적인 이유로 영화나 드라마 현장 쪽으로 취업하지 않았다. '액션' 소리가 그토록 좋았다면 영화감독이 되길 바랐겠지만 꿈의 크기가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불안정하고 낮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그 소리가 좋게 들릴지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분야는 살리고 필드는 바꾸는 전략으로 방송국을 내 첫 직장으로 택했다.

하지만 방송국에 들어가 보니 영화와는 다르게 '액션'을 외칠 일이 많지 않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영상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새롭게 접하는 방송국 일은 또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특히 출근하면서 출입증을 찍는 순간만큼은 앞선 그 두 가지 경험보다 더 짜릿했다. 물론 방송국 공채에서 떨어지고 크게 미련이 남지 않은 걸 보니 그 마저도 내 꿈이 되어주지는 못한 것 같다.


이토록 뿌듯함, 짜릿함, 설렘 등의 감정들은 그 순간을 빛나게 해 주지만 그게 내 진짜 꿈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학창 시절 공을 차다 우연히 아주 멋진 골을 넣게 된 사람이 순간 느낀 짜릿함에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졌을 때, 그것을 업으로 택할지 말지는 본인이 판단할 몫이 된다. 단순히 그 순간에 심취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닌, 그 분야의 정상에 오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찾아보고 나를 투영해봐야 한다.    


이제는 월드스타라 해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아버지 손웅정 씨만 빼고) 손흥민 선수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7년간 슈팅 연습 없이 기본기 훈련만 했다. 이후에는 슈팅 1,000개와 리프팅만으로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훈련을 매일 해왔다고 한다. 이렇듯 손흥민 선수가 이룬 성공 뒤에는 수많은 눈물의 시간들이 있다. 이런 고난의 과정이 있음을 인지하고도 주저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가도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고난의 과정이나 기나긴 무명의 시기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하고 좋은 면만 보고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직업을 택한다. 내가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꿈을 정했다면 아마 영화 현장에서 밤을 새웠을 것이다. 그리고 열정 페이를 받으며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뛰쳐나가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이 조건들은 너무 불합리해." 



정확히 꿈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써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대로 꿈을 꾸기 위해선 난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꿈을 설정할 때 마치 옷을 고르는 것처럼 어떤 걸 입어야 나한테 잘 어울리고 멋있을까를 고민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인생은 옷을 고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물론 어려서부터 이유 없이 어떤 일에 꽂혀서 열정을 불태우는 몇몇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한 끌림에 선택했더라도 이해한다. 앞뒤 재지 않고도 꽂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열심히 그 꿈에 닿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나처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하는 말만 듣고 인생을 선택하는 실수는 없어야 한다.


어떤 일에 흥미가 생겼을 때는 일단 그 일을 시작해보고 내 적성과 맞는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인지 따져보자. 상상만으로는 당신이 꿈꾸던 일인지 판단할 수 없다. 적성에도 맞고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면 비로소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이 그 일을 하면서 새로운 열정이 생겨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점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하면 할수록 보람이나 열정은 줄어들고 지루함에 다른 일을 기웃기웃하게 된다면 그건 당신이 꿈꾸던 일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때는 최대한 빠르고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망설일수록 당신의 시간은 흐르고, 눈을 떠보면 열정과 보람 없이 껍데기만 남은 당신의 모습이 꺼진 노트북 화면에 비칠 것이다. 뭘 더 망설이는가? 사람들이 죽기 전 가장 후회하는 건, 못 써버린 돈이 아니라 망설이기만 하고 끝내 도전하지 못한 꿈이다.


이전 06화 꿈의 크기가 모두 같은 건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