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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Oct 06. 2020

나의 1호 친구를 소개합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숨소리 같은 친구입니다

가끔씩 생각나는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모아두었던 글 중의 하나를 친구인 천미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메일을 보내려고 할 때였다.

"천미야! 내가 쓴 글을 한 번 읽어볼래?"

"내가 이멜로 보내줄게"

"알았어 친구야, 그런데 나도 글 하나 쓴 게 있는데 너에 대한 글이야"

쑥스럽게 말은 끝낸 친구는 조용히 메일 하나를 보내왔다. 그냥 한 번 읽어보라며....

"설마 내 욕을 쓴 건 아니겠지?"

"아니야 ㅎㅎㅎㅎ"
친구와의 전화통화를 끊고 나서,  나는 설렘과 궁금증으로 메일을 열어보았다.

문화강좌 시간에 글쓰기 수업인 스토리텔링을 들을 때 어떤 글이라도 괜찮으니 아무런 글이라도 써보라는 강사님의 말에 나를 떠올려 나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친구의 이름으로 온 메일을 열자마자 내 이름으로 시작된 친구의 편지....

그곳엔 열일곱 살의 내가 있었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천미에게 제일 먼저 합격소식을 알렸다.

친구는 나보다 더 흥분하며 구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나의 학창 시절도  같이 보냈던 천미의 친구이면서  여고 동창생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남편과 딸 언니 가능한 사람들을 다 모으기 시작했다. 이런 천미의 노력으로 나는 브런치 생활을 그래도 조금은 남들보다 안정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매거진의 글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친구의 글로 시작할까 생각을 했지만 글이라는 것이 처음에 쓴 글은 아무래도 최신 글에 파묻혀 잊히기가 쉬워 보였다. 지금까지 참아오다 이제 끝무렵에 친구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만큼 소중한 친구다. 내 곁에 아직까지도 있는 듯 없는 듯 숨 쉬고 있는 듯한 그런 친구이다.

내가 바쁠 때는 잊고 있다가 내가 힘들어지면 언제든 내 옆에 있었던 친구,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삶의 흐름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친구의 글이 내 마음을 울렸다.

메일함에 있는 친구의 글을 열어보는 순간 갑자기 울컥해져서 눈물이 글썽해지는 바람에 글이 눈으로 들어오질 않았다.


글 속에 조용하고 말 없는 친구와 여전히 활발한 내가 있었다.

봉천동에 살았던 친구는 지하철 2호선의 개통으로 우리 학교로 배정이 되어 전혀 낯선 동네에서 익숙한 친구들이 없는 곳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였다. 1학년 중에 우리 학교는 특별하게 합숙훈련을 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혼자서 외톨이 마냥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처럼 여기저기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둘만 사귀는 그런 친구였던 것 같았다.


나는 이 친구가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나에게는 오랜 친구들도 있었고, 같은 반에서도 무리 지어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 친구를 우리 속으로 끌어들이기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하굣길에 혼자서 외롭게 가는 걸 보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친구들을 무리 지어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 주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나의 무리들을 기다리게 해 놓고 지하철역까지 바래 주었다고 글에 쓰여있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방학이 돌아올 때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내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사이가 되어 그 이후로 같은 반이 되지는 못 했지만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글 속의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로 묘사되어 있었다. 아! 나의 십 대는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었다는 걸 천미의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긴 방황은 시작이 되었고, 재수를 하면서도 나는 천미가 일하는 봉천동으로  놀러 가 나의 힘듦을 이야기했고, 친구는 그런 나의 고민거리를 참을성 있게 잘 들어주었다.

천미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뒤늦은 꿈을 위해 러시아로 가야 해서 친구의 결혼식에는 아쉽게도 참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러시아로 떠날 때 약혼자와 함께 한걸음에 공항으로 달려와 우정의 징표로 금반지를 손에 들려주었던 친구였다.


그 이후에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 때에도 친구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그런 나는 친구를 잊은 채 내 일에만 몰두하였다. 거침없이 일에 빠져 살다 돌아보니 내 주변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져 다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도 천미는 좋은 남편과 함께 조용히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항상 내 안에 있었다.

성실한 남편과 똑똑하고 이쁜 아이들을 두고  행복하게 사는 천미가 내 친구 중의 유일하게 평탄하게 사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늦은 나이에 결혼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할 때도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던 친구였다.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말없이 필요할 때에 곁을 내어주는 친구

나의 십대를 회상하게 해 주고 꽤 괜찮은 친구로 기억해 주는 친구로 인해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어서 가슴이 뿌듯하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친구를 두고 살아간다는 것도 큰 복중의 복이 아닐까 생각된다.

별 기복 없이 남은 인생도 무난하게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친구사이가 되자고 다짐해 본다.

천미야!!! 고마워...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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