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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Nov 13. 2020

핀란드에서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북유럽의 크루즈인 실자라인을 타고 마리나에게로 간다

미샤가 떠나고 난 후, 내 파트너와 우리는 다시 헬싱키로 돌아가야 했다. 거의 원금이나 건졌으려나 모르게 싶게 그의 얼굴빛은 좋지가 않았다. 엄청난 전화비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은 그가 나온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내 옆에서 그런 그가 안쓰러워 계속 그를 쳐다보는 아버지는 자꾸 내 이득금에서 조금 더 챙겨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그 정도로 그는 안쓰러워 보이긴 했다.

열차가 헬싱키에 도착하자, 그는 그곳에서 바로 열차를 갈아타고  자신의 친구가 있는 프랑스로 간다고 하였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마리나에게 가기 위해서 시내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갔다.

북유럽의 크루즈 회사인 실자라인의 표를 파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오늘 밤 안에 떠나는 표를 구입하고 나서 남은 시간을 헬싱키 시내를 이 곳 저곳 돌아다녔다.  배를 탈 시간이 까워지자, 배가 정박해 있는 터미널로 이동하기 위해서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택시가 나에게로 오질 않는다. 나도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참을 기다려도 꿈적도 하지 않는 택시를 향해 걸어가 니, 운전기사 그제야 문을 열어주며 차의 트렁크를 열어 나의 짐을 실어준다.

왜 나를 보고도 오지 않았냐고 하니,  그곳은 택시가 서는 곳이 아니란다. 시민정신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편법에 익숙해진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마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할 시간을 가르쳐 주었다. 이미 미샤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나가 있겠다고 했다.

유람선인 배안은 여느 크루즈 안이나 비슷했다. 밤이 되면 춤을 추고 뷔페식 음식이 놓여 있었다. 신기한 것보다는 나에게는 어수선해서 일단 객실에서 주로 있었다. 단지 마리나에게 가져갈 술을 사려고 면세점을 들리려고 나가보았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의 물가 차이로 인해  배 안의 면세점에서 술이나 사려고 하는 손님들로 줄이 길게 늘어 선 것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물건이라도 물가 차이가 꽤 나긴 했었다.


날이 밝자 각자의 짐을 챙기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로 이 곳 저곳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배가 에스토니아에 도착을 하자, 사람들이 입구에 늘어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럽의 각 나라 간의 입국심사는 비교적 간단하게 끝났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긴 통로를 따라 드디어 마리나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통로의 끝이 나오자 눈에 익은 마리나가 나를 보자마자, 남들이 보면  오버할 정도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동양인을 만나기란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다. 마리나의 손짓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쳐다보고 있었다. 그 감정이 마리나의 진심일 정도로 그녀는 정이 많은 친구였다. 그런데 그 옆에 또 한 남자가 우리를 보고 웃고 있다.

알렉세이! 그녀의 남편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고, 마리나를 보자마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속으로 삼켜야 했다.

저런 남편을 두고!!!!

알렉세이는 사람 좋게 생긴 아주 진중한 미남이었다.


터미널 밖을 나가자 더욱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리나와 남편이 각자 따로 나를 마중 나왔는데, 서로가 내가 팔았던 차를 나누어 타고 왔던 것이다.

마리나는 현대차 악센트를,  알렉세이는 소나타를 타고 각자 나에게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내가 팔은 차가 다른 나라에서 달리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는 신기한 광경은 나에게 또 다른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이런 일은 후에 모스크바에서도 일어난다.

아무튼 그 차를 함께 타고 그가 알고 있는 호텔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마리나는 집으로 직접 갈 거라고 했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호텔 직원은 북유럽 특유의 백발머리를 한 여성으로 찬바람이 불정도로 차가웠다.

우리를 보고 한 번을 웃지를 않고 사무적으로만 자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아마 이 모습이 에스토니아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오싹했다. 방값은 핀란드보다 훨씬 저렴하긴 했다.

알렉세이는  에스토니아인들은 러시아인인 자기들과는 틀린 민족이며 ,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 집에서 이야기해 주었다. 호텔방을 배정받고 짐을 들여놓고 우리는 마리나의 집으로 했다.


아까 보았던 마리나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집에 들어서려고 하니 마리나가 살짝 나에게 귓속말을 .

미샤 이야기는  비밀이라고.. ㅎㅎㅎ

나는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두 아이들인 아들과 이 나와 인사를 했다. 마리나의 딸!!!

이제까지 숱하게 많은 러시아 사람들을 봐 왔지만 이렇게 이쁘게 생긴 미소녀를 본 적이 없었다.

긴 금발을 길게 땋은 머리를 한 소녀는  내가 본 여자아이들 중 최고로 이뻤다. 처음 본 동양사람들을 조금은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수줍은 듯 인사를 하는 그들의 단란한 모습에 나는 한참이나 부러웠다.

이미 술자리를 마련해 놓은 마리나 덕분에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리나는 정말 반가워했다. 알렉세이 역시 나의 말을 많이 들었는지,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제 본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알렉세이는 그 당시에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처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독립을 한 에스토니아에는 그전부터 살고 있던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러시아어와 에스토니아어 두 가지 공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서방 유럽 쪽으로 가고 싶어 했던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례로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데 두 가지 공용어를 써야 하는 데 일방적으로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게 해서 러시아 사람들의 불만이 많아졌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했지만 사실 독립이라는 완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러시아 위성국가였던 나라들은 러시아의 원조를 받고 있었다.

에스토니아 역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공급받고 있는 나라였다.

열 받은 러시아 정부에서 계속 그런 식으로 한다면 천연가스공급을 중단한다고 겁을 주자,  그들은 그들의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바뀌었어도 그들의 러시아 사람들과의 갈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하는 알렉세이를 통해서 그들의 입지가 보여서 나 마저도 안타까웠다. 살아있는 그들의 역사를 직접 그들의 입으로 듣는 시간이었다. 책에서도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를 말이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마리나는 내일 우리를 데리고 에스토니아의 구시가지를 보여주기로 했다. 에스토니아에서의 잊을 수 없는 첫날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추억 하나를 가슴에 새기면서.....


탈린의 구시가지는 유럽에서도 오래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유럽 특유의 골목길을 돌고 돌면서 눈 오는 날의 여유를 즐겼다.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구시가지를 도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마리나가 찾은 동양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헬싱키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를 터미널로 데려다주었다.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우리는 좋은 기억으로 이별을 할 것이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알렉세이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카드였다. 자신들을 방문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고, 좋은 추억으로 남는 만남이었다는 진심으로 마음을 담은 카드였다. 이렇게 세심하고 좋은 남편을....

마리나는 옆에서 멋도 모르고 나의 아버지를 챙긴다. 둘은 서로 아는 사이다. 사무실에서 나의 아버지와 자주 마주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두르고 온 모자와 머플러를 딸에게 주라고 벗어주었다. 그 날 딸이 몹시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더라고, 나보다는 딸에게 더 잘 어울리 것 같다고 하면서 알렉세이 손에 들려주었다.

내 목과 머리에  휑하니 겨울바람이 불어왔지만. 내 마음은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마음속에 많은 것을 담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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