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있는 쌍용의 차고지, 항코를 가다.

문제는 어느 곳에서나 일어난다.

by kseniya

핀란드는 겨울에 시작되는 흑야로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흐려있었다. 마치 해가 구름에 가려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갑갑하고 무거운 날이었다. 거기다가 함박눈이 내리고 있으니, 내가 러시아에 살던 그 느낌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 너무 좋다. 이 차가운 공기가, 이 흐린듯한 알 수 없는 미지의 냄새가, 나는 너무나도 그리웠다. 다시 나의 안에서 무언가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헬싱키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 항코였다.

그곳에서는 쌍용자동차의 유럽 전역으로 나가는 차량을 관리하는 유럽의 차고지였다.

날씨 때문에 이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짐작이 가지는 않았다.

이 도시에 도착하고 나서 호텔에 짐을 풀고 난 후, 창밖으로 보이는 눈 내리는 항구는 마치 한 폭의 사진을 보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 그 장면 하나로도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시차 적응이 힘들어 계속 잠만 잤다. 일어나면 또 어둑해진 날씨 때문에 또 잠이 오는 현상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내 옆에 있는 나의 아버지는 잠을 한숨도 안 잔다. 마치 이 모든 신기한 광경들을 모두 가슴에 담아 가려는 사람처럼...


아버지와 딸은 정반대의 감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에 지친 딸과는 달리 낭만을 즐기는 아버지는 밤이 되면 딸의 일거수일투족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해 놓았다.

아버지는 외국여행을 다닐 때마다 자신의 주특기인 고추장으로 볶은 멸치를 항상 준비해서 가지고 온다. 입맛이 까다로운 딸 때문에 밥만 있으면 간단하게 물에 말아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항상 내 옆에 있어주는 든든한 나의 수호천사!!!

내가 가는 길에는 나의 아버지가 그림자처럼 버티고 있었다. 벅차다! 이런 아버지가 나의 곁에 있어서...

그런 아버지의 딸이라서,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의 아버지가 누릴 수 있는 나의 상황이 꿈만 같아서....


짐을 풀고 나서 미리 와 있던 나의 파트너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만나고 나서 그곳을 책임지고 있는 핀란드 회사를 가야 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그쪽의 대표인듯한 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눈 내리는 항구도시는 앞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차고 같은 분위기의 회사였는데, 사무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북유럽의 깔끔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세련된 가구들을 비롯해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인상적인 사무실이 드러났다. 사실 핀란드에 도착한 첫날에 원목으로 깔려 있는 공항의 마루바닥을 보고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사무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수출 전반적인 업무를 했다는 이 친구가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뭔가가 잘 안 되는 눈치였다.

사실 모든 차량업무는 한국에 있는 그의 동업자가 전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는 한국의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가만히 앉아서 오는 손님 받아서 차만 팔면 되는 게 뭐가 힘드냐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비하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나 같은 길에 가면 흔하디 흔하게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여자아이도 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구멍가게라도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 가게는 살아나기 힘들다.

경제라는 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간단하게 들고 나는 돈의 의미지만 그 안에 돈이 내 손으로 들어오기 까지의 과정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차를 파는 수출업무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차가 한국을 빠져나가 다른 나라로 가는 일에 대한 과정은 수많은 서류들이 오고 간다.

알아야 할 것들이 사실 많다. 그렇게 쉬운 과정이 아닌 것이다. 그 수많은 서류 중에 한 글자의 실수로도 일은 꼬일 수 있다.


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그 남자는 이미 나에게서 그에 대한 신뢰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차를 인계받지 못하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나의 친구들의 돈이 걸려 있는 문제였다.

이미 미샤는 출발을 했을 것이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이 곳에 곧 도착할 것인데... 난감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서류상의 문제인지 좀처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데도 차는 우리 쪽으로 인계가 되질 않았다.

역시나 서류의 문제였다. 시간이 꽤나 흘렀다. 한국에서의 파트너와 이 곳에서의 직원이 통화를 한 후, 드디어 차 열쇠가 우리들에게 인수가 되었다. 피 말리는 순간들이 지나갔다.


살아가면서 문제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아무튼 그는 어떻게든 해결을 했지만 그의 어깨는 더욱 작아져 보였다.

그러나 그는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겠지.. 성공만이 경험은 아니니까..



이번엔 내 차례가 왔다.

미샤는 차를 가지고 운전해 갈 수 있는 차량수만큼 사람들을 태우고 드디어 도착했다.

눈 오는 허하 벌판의 서로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내 사무실에 만나 수다를 떨던 낯익은 미샤가 나타나자 그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미샤는 차를 인수하기 시작했다.

미샤의 일행 중엔 한국에서 본 비탈리도 있었다. 서늘한 이혼남이었던 그는 미샤와 친구였다. 미샤와 차를 사서 부산까지 나와 함께 직접 운전을 하고 갔던 기억이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도 내가 반가웠는지 반가운 악수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오더 받은 달러가 미샤에게서 나에게로 옮겨 왔다. 그들은 이제 그 차를 타고 비교적 이 곳에서 가까운 그들의 나라로 향할 것이다.


미샤는 가기 전에 핀란드는 물가가 비싸니 차라리 여기까지 왔는데 마리나가 있는 곳을 가보라고 조언을 해 준다. 마리나에게는 자기가 전화를 해 놓겠다고.. 그곳이 이 곳보다는 물가도 싸고 호텔비도 싸니 온 김에 마리나도 보고 가라고 다정하게 얘기를 해 준다.

핀란드에서 배를 타고 하룻밤만 지나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발트 3국 중에 한 곳인 에스토니아의 탈린이다. 그곳에 미샤의 연인 마리나가 살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미샤네 일행은 차고지에서 방금 나온 차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샤가 나와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의 차에 올라타자, 그들의 차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샤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서 가라고 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나는 손을 흔들며 꼬리를 물고 서서히 빠져나가는 차들의 행렬이 나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